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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G Sep 24. 2015

가장 대만스러웠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영화 속 한 장면,  풍등 날리기

이야기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여덟 번째

_가장 대만스러웠던 영화


응답하라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90년대를 추억하는 것이 전 세계적인 유행인지, 아니면 그 시절을 배경으로 한 세계 각국의 작품들이 우리나라에서 흥행한 것인지 모를 정도로 근래에 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지금 바로 생각나는 것만 해도, 한국의 <응답하라 시리즈>와 <건축학개론>, 대만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영국의 드라마 <마이매드팻다이어리> 등이다. 영화의 개봉 당시 우리나라에서 <건축학개론>이 큰 인기를 끌었던 터라 대만판 건축학개론이라고 불렸었다. 그러나 90년대의 첫사랑이라는 소재만 빼면 결이 꽤 다르다. 오히려  그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응답하라 1997>의 분위기와 플롯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첫사랑 못지 않게 학창 시절의 친구관계를 그리고, 서서히 흐르는 시간을 보여주는 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응답하라 1997>을 볼 땐 과거의 이야기라는 사실이 느껴졌으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과거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조금은 잊고 감상하게 된다. 분명 영화 속에는 90년대의 감성을 녹여내려는 음악, 소품, 대만 대지진으로 인해 겪게 되는 에피소드 등이 녹아있었다. 그러나 대만의 90년대를 알 길 없는 내게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과거의 배경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대만 여행에서의 느낌과 더욱 맞닿아 있었다. 정작 이 곳의 촬영 배경은 가보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비교적 최근의 대만을 담아낸 <아가능불회애니>는 실내 촬영이 주였고, <말할 수 없는 비밀>은 판타지적인 연출로 인위적인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진 것 같았다.

영화 속 장면, 스펀에서 풍등 날리기

영화 속에서 핑시에서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는 주인공들. 둘이 함께 풍등을 날리는 장면이 있다.


- 내 대답 듣고 싶어?

- 제발 지금 얘기하지 마. 계속 널 좋아하게 해줘.


눈치 없는 커징텅 때문에 마음먹고 고백에 대답하려던 여주인공이 또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이 무슨 고백으로 고백을 막는 이상한 상황이란 말인가. 날아가는 풍등에는 천옌시의 대답 '좋아해.'가 적혀 있었다. 그렇게 그들의 엇갈린 소망은 풍등에 담겨 날아간다. 

여행 당시에는 이런 블로그를 연재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촬영지인 핑시를 가지는 않았지만 스펀은 바로 이 '풍등 날리기'로 유명한 명소였다. 그래도 그 분위기 만큼은 영화 속과 꽤 흡사하다.

우리도 각각 소원을 적어서 풍등을 날렸다. 대만 여행에서 가장 대만스러운 체험은 바로 이 풍등이 아닐까 생각한다.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니까 아직 못 이루어진 소원이 대부분이었다. 언젠가는 꼭 이뤄지길 바라며. 

풍등을 날리는 골목은 좁고 복잡하다. 좁은 기찻길 양 옆으로 풍등 상점이 늘어나 있는데, 온갖 나라의 말로 소원을 적고 있는 여행객들을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을 수용해야 하는 터라 스피드가 생명이다. 그래서 좀 더 제대로 된 소원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던 게 아쉬웠다. 직원들 역시 기계적으로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빠른 스피드로 불을 붙여 날린다. 그래도 불을 붙인 풍등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 모습은 꽤 예쁘다. 다른 사람들의 풍등과 어우러져 있는 모습. 이 날은 하늘도 참 예뻤다.

과거로  시간여행하는 듯한 스펀의 풍경
찌는 듯한 더위,
거리의 촉촉함

더위와 촉촉함. 얼핏 보면 전혀 연관성 없는 단어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대만의 느낌이 딱 그랬다. 겨울에 갔지만 맑은 날의 햇볕은 따사로웠고, 긴팔 한 겹을 입고 있어도 걷다 보면 땀이 날 정도였다. 첫 해외 배낭여행이었던 도쿄의 날씨가 한여름이었어서 그런지, 여행지에서의 따사로운 햇빛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때, 여행은 힘들지만 일본의 느낌을 가장 잘 느끼게 만드는 날씨는 역시 찌는 듯한 한여름이라고 생각했었다. 영화를 보면 대만도 역시 한여름의 더위가 가장 대만스러운 풍경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 날씨는 보는 것만으로도 덥다. 상상 이상의 시원한 모습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도 그렇고, 한국과 비교해서 더욱 더워 보이는 날씨는 익숙한 전개 속에서 영화의 분위기를 독특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런데 이렇게 더운데, 거리의 분위기는 이상하게 촉촉하게만 느껴진다. 비가 오지 않아도, 거리의 건물은 늘 젖어 있는 듯한 색깔을 띠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비가 자주 오기 때문이다. 더운 만큼 습기도 많은 나라라서 여행  중간중간에도 참 많은 비가 왔다. 비가 오는 순간, 거리의 야자수와 함께 어울리던 쨍쨍한 햇볕 아래의 대만과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영화에서도  비가 많이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도 여행 도중 한 번 엄청난 소나기를 만났었다. 이 곳은 진과스였는데, 문 닫는 시간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근처의 다른 여행객도 아예 없었다. 우산을 써도 비를  온몸으로 맞을 정도로 바람과 함께 세찬 비가 내렸다. 비에 젖지 않은 의자를 찾아 골라 앉느라 우리는 꽤 떨어져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 친구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여행 중 혼자만의 시간이었으며, 가장 멍하니 앉아있었던 시간이었다. 비는 언제 그칠까 하고.

대만의 발음,
영화의 OST
Finding You In A Sea Of People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88669&mid=18519#tab

Those bygone years

대만의 버스기사 아저씨를 비롯하여 식당에서 들리는 중국어는 왠지 화난 느낌을 준다. 그 때마다 언어를 못  알아듣는 우리는 괜히 위축되곤 했다. 물론 중국에서 들리는 중국어 보다는 덜하지만. 대만 영화 속에서 들리는 중국어는 높낮이가 더 심한 것 같고, 조금 더 부드러운 것 같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다. 난 중국어와 대만어를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여행 중 들린 언어가 어떤 언어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영화 속 중국어 대사와 노랫말은 생각보다 더 낭만적이라는 점이다. 높낮이가 심하지 않은 우리나라 언어와는 확실히 다른 매력이다. 이 영화의 가장 좋은 점을 꼽자면 바로 음악인데, 가사를 전혀 알아듣지 못해도 영화의 감성이 풍부하게 느껴지는데는 바로 이 특유의 대만 발음 덕분인 것 같다. 


영화를 다시 뒤적이다 보니 문득 한여름의 대만이 궁금해졌다. 

물론 진짜 간다면 쪄 죽겠지만.


글. Storytraveller

사진. Storytrav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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