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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Jul 19. 2020

관계를 정리하는 연습

버리는 것이 아닌 비우는 연습


시간이 지나면서 무르익어가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보내줘야 하는 인연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인연을 보내줄 줄 몰랐다. 나와 연결되어있던 모든 인연들이 나와 평생을 함께할 줄 알았으며, 함께해야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예전에는 함께 웃었으나 지금은 함께 웃지 못하는 관계를 마주할 때면 많이 서글퍼지곤 했다. 나의 언행이 때로는 그들을 힘들게 하였고, 아프게 만들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나로 인해 누군가 힘들어졌다면 그것은 나의 책임이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지 못한 관계도 있었다. 합리적인 이유들이 언제나 존재했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내가 너무 지쳐서, 이 정도만 해도 되지 않을까? 등등. 나는 늘 내가 우선이었다. 결심과 다르게 나는 모든 관계에 최선을 다하지는 않았다.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연락처를 보면서, 예전에는 내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알고 지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기도 했다. 마치 세상 사람들의 연락처를 다 수집할 것처럼 많은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기도 했었다. 하지만 얕은 관계가 얼마나 유지될 것인가. 그저 우리는 연락처를 주고받았을 뿐이다. 


때론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관계도 있다. 사는 곳이 달라져서, 관심사가 달라져서, 직업이 달라져서, 환경이 달라져서 등등. 그때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가 달라져서 멀어지는 관계도 있다. 우린 이미 너무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그때의 우리를 기억하는 건 우리밖에 없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때의 우리를 기억할 낭만도 여유도 없다. 그저 그때의 우리가 있었고, 지금의 우리가 있을 뿐이다. 


아주 많은 오해들이 우리 사이를 방해하기도 했다. 아주 많은 사건들이 우리의 관계를 갈라놓기도 한다. 아무리 '오해야!'라고 외쳐도, 오해는 사실이 되고, 사실이 된 오해는 관계를 망쳐버리고 만다. 시간이 지나 그 오해가 풀리더라도 이미 관계는 식어버린 지 오래다.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반갑게는 인사하지 못하는 그런 사이가 되어 버리고 만다. 


형식적인 관계도 있다. 365일 같은 온도를 유지하는 관계. 언제 만나도 웃을 수 있는 관계. 하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지는 않는 관계.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지는 않는 관계. 필요하면 만나지만 필요하지 않으면 만나지 않는 관계. 예전엔 이런 형식적인 관계가 좋다고 생각했다. 감정적으로 부딪힐 일도 없고,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일만 하면 되니까 얼마나 편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관계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삶은 무미건조해졌다.


나 홀로 붙잡고 있는 인연도 있다. 오래도록 홀로 붙잡고 있었던 인연. 소중했던 인연이었기에 놓치고 싶지 않았던 인연.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었고, 오래도록 보고 싶었던 인연. 하지만 그 인연의 끈을 나 홀로 붙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모든 것이 허망해졌다. 상대방이 놓아버린 끈을 홀로 붙잡고 있다고 한들 우리의 관계가 이어지지는 않는다. 


나는 요즘 내가 놓지 못했던 관계들을 놓는 연습을 한다. 채우기만 했던 관계를 비우는 중이다. 아주 오래전 그때의 나를 있게 만들었던 소중한 인연임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그때의 소중함만 간직할 뿐이다. 우리가 멀어진 것이 환경의 변화였든, 오해였든 또는 알지 못하는 다른 이유였든, 우리는 지금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고 다른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지금 관계를 정리하는 중이다. 버리는 것이 아닌 비우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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