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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Oct 24. 2020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남편을 사랑한다


남편과 싸우는 날이면 남편을 사랑하는 것을 멈춘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상상을 한다. 그 프로세스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나서 그것을 일어나지 말게 해야지!라고 생각할 틈도 없다. 마치 내 머릿속에 이미 입력된 컴퓨터 언어와 같다. 


남편과 싸운다 -> 헤어지는 상상을 한다. 


이미 상상 속에서는 남편과 헤어져서 각자 따로 사는 것까지 생각한다. 그리고 헤어지면 지금 신혼집에 있는 가구들은 어떻게 청산할 것인지를 떠올린다. 이미 너무 먼 미래로 나를 갖다 놓고 슬퍼하고, 분노한다. 그런데 나는 싸우는 순간 내가 아주 자동적으로 남편을 탓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의 싸움의 모든 원인은 남편에게 있다는 것을 자동적으로 머리에 입력해버린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싸움 끝에 나는 너무나 자동적으로 헤어지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나에게 빠져 있었던 것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남편을 사랑한다'라는 입지가 없었다. 그 어떤 순간에도,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남편을 사랑한다, 라는 입지가 나에게는 없었다. 그래서 매번 싸우거나 다툼이 있으면, 그 끝에 이별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혼자만의 상상이든, 우리 둘의 머릿속의 상상이든 나에게는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로서의 입지가 없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남편을 사랑하는 일.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남편을 견지하고, 신뢰하는 일. 

그리고 온전하게 우리의 가정을 돌보는 일. 


그 입지에 서서 남편과 '지금'을 만들어 가려한다. 

우리에게 있는 건 '지금'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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