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 더 세상을 들여다보는 삶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제일 먼저 알아챈 건, 국민건강보험공단이었다. 뒤이어 국민연금공단에서도 알아챘다. 뒤늦게 고용노동부에서도 우편물을 보내왔다. 아직 누가 더 남은 것인지, 아니면 고용노동부를 끝으로 더 이상 우편물을 안 받아도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직장을 다닐 때는, 직장에서 알아서 세금을 착실하게 대신 납부해주었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장기요양보험료, 소득세, 지방소득세까지, 대략 월급의 11%를 세금으로 납부했다. 세금을 내는 것이 억울하지는 않았으나, 세금을 제하고 나자 내 월급이 조금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초라하게 느껴질 만한 월급도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세금은 변함없이 내야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첫 번째 우편물은, 직장가입자의 자격이 상실되어 지역가입자로 자격변동이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조금 웃음이 나왔다. 이런 거 모르고 멍 때리고 있다가, 세금 납부하는 거 잊어버리면 안 된다, 이런 느낌의 우편물이었다. 물론,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나에게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바란다며 우편물 가장 첫 줄에 적어 놓았다. 일 년 전, 독립을 하게 되면서 세대원에서 세대주로 변경되었다. 1인 가정으로 살아가는 나는, 1인 가정이 내야 하는 세금의 몫이 있었다.
여행을 간 사이에,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두 번째 우편물이 도착했다. 고지서다. 소득이 없기 때문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납부했던 금액보다는 적었다. 하지만,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세금을 납부하는 것은 금액과 상관없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처음으로, 내가 내는 건강/장기요양보험료 산정 기준과 금액을 따져보기 시작했다. 알아서 다 해주던 직장은 나에게 이제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전화를 걸어 문의를 했다.
세금이 부과되는 항목은 여러 가지가 있다. 소득, 재산, 자동차, 성연령 등이 있고, 농어업인일 경우 추가 경감해주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고지서를 살펴보니, 내게 재산이 있다는 것이다. 대출을 받아서 얻은 집이라, 한 번도 내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작은 원룸이 재산이라는 것이다. 빚도 재산이라는 것을, 하마터면 잊고 살 뻔했다.
1. 재산
재산 항목에는, 건물, 토지, 전월세 항목이 포함되는데, 나의 경우에는 전월세 부분이 해당되었다. 재산 항목에 부과되는 점수는, 보증금의 30%에 해당하는 점수로 변환된다. 예를 들면, 전세 보증금이 8천만 원이라고 하였을 때,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보증금의 30%를 (2천4백만 원) 재산으로 책정한다. 책정된 금액은 등급으로 한 번 더 분류가 되는데, 2천4백만 원은 6등급에 해당되어, 146점을 부과받게 된다.
보증금: 8천만 원
전/월세 금액의 30% 적용: 2천4백만 원
재산금액 등급: 6등급
등급별 점수 적용: 146점
2. 성연령 등 (경제활동 등)
재산은 비교적 이해하기 쉬웠지만, 성연령 등으로 표시된 항목은 이해하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홈페이지에 보면, 생활수준 및 경제활동 참가율 구간별 점수표라는 이름도 길고 이해하기 어려운 표가 하나 나온다. 제일 먼저 봐야 하는 구간은, 가입자의 성 및 연령별 구간이었다.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20세 미만 & 60세 이상을 제외하면, 성별로 부과되는 점수가 다르다. 부과되는 점수가 다르다는 것은, 내야 되는 세금이 다르다는 것이다. 남자가 더 높은 점수를 부과받는다. 연령 중에서는 30세 이상 & 50세 미만이 가장 높은 점수를 부과받는다. 예를 들어, 29세의 여성은 3구간에 속하게 된다. 부과받게 되는 점수는 4.3.
성별: 여자
나이: 29세
구간: 3구간
구간별 점수: 4.3
그리고 아까 재산 항목으로 이미 점수를 부과했는데, 다시 한 번 재산 항목 점수를 추가로 부과한다. 고지서에는 성연령 등으로만 나와 있어서 혼란이 있었는데, 온라인 상에서는 경제활동 등이라는 항목으로 분류되어 성연령, 재산, 자동차, 소득금액 가산점수로 등급을 나누고 점수를 부과한다. 예시로 들었던 2천4백만 원의 경우, 4구간에 속하게 되어 총 7.2점을 부과받게 된다.
보증금: 8천만 원
전/월세 금액의 30% 적용: 2천4백만 원
구간: 4구간
구간별 점수: 7.2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면, 자동차에 대한 부분도 점수에 합산시킨다.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가정하에, 총 부과받은 점수는 11.5 (= 4.3 + 7.2)이며, 이에 따른 등급은 9등급으로, 최종 117점을 부과한다.
3. 건강보험료 합계
재산과 성연령 등에 부과된 점수를 합산하면 총 263점이 된다. 건강보험료는 적용 점수에 179.6원을 곱하여 산정하게 되며, 원 단위는 절사 한다. 2016년부터 건강보험료 인상으로 인하여 지역가입자의 경우 부과점수당 금액이 178원(2015년)에서 179.6원으로 올랐다.
재산: 146점
성연령 등: 117점
합계: 263점
건강보험료: 47,234.8 → 47,230원 (= 적용 점수 x 179.6원)
4. 장기요양보험료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장기요양보험료도 내야 한다. 건강보험료에 6.55%에 해당하는 금액을 장기요양보험료로 납부하게 된다. 농어업인이거나 경감되는 항목이 있을 경우에는 부과되는 금액은 줄어든다. 2016년에 장기요양보험료는 인상되지 않았다.
장기요양보험료: 3,093.5 → 3,090원 (= 건강보험료 x 6.55%)
5. 총 납부할 보험료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를 합산하여 매월 보험료를 납부하게 된다. 전세 8천만 원 집에서 사는 29세의 여성은 소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월 50,320원의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는 것이다.
건강보험료: 47,230원
장기요양보험료: 3,090원
총 납부할 보험료: 50,320원
똑같은 조건에서, 60세 이상의 아버지(세대주)와 단 둘이 산다고 가정하면 총 납부해야 하는 보험료는 월 59,500원이다. 나 역시 어렵게 은행 대출을 받아서 독립에 성공하였지만,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1인 가구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유지하기 힘든 구조라는 것을 깨달았다. 단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남의 집에 살아도, 집세가 올라가면 재산이 늘어난 것으로 간주되어 건강/장기요양보험료 역시 인상된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때는, 아무리 유리지갑이라고 하더라도 건강/장기요양보험료를 내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 적이 없었다. 보험료가 제대로 책정된 것인 지에 대해서도, 나는 사실 관심이 없었다. 세금 떼고 나니, 남는 게 얼마 없네라면서 월급통장에 찍힌 금액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내가 내는 세금이었는데, 나는 그것에 대해서 무지했다. 부모님 밑에서 세대원으로 지냈을 때에도 몰랐고, 직장에 다니는 동안에도 몰랐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부끄럽기는 하지만, 나는 앞으로 더 꼼꼼히 살펴보기로 했다. 상담사에게 자동이체 및 이메일 고지서로 변경 요청을 하여 200원을 감액받았다. 그 외에 내가 추가로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없었다.
건강/장기요양보험료에 대해서 조사를 하면서 확인해보니, OECD 회원국 중에서 건강보험료를 소득이 아닌 성연령과 자동차에 부과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며, 재산에 부과하는 나라도 한국과 일본 두 나라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또한, 실직이나 은퇴 등의 사유로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서, 소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 소득이 있을 때보다 훨씬 많은 보험료를 납부하는 부과체계 때문에, 매년 보험료 관련 민원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2016년 건강보험료가 인상된 배경에 대해서는, 건강보험 등 보장성 확대와 의료수가 확대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모르고 살았어도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직장에 계속 다녔으면, 나는 계속 모르는 채로 살았을 것이다. 많이 내면 많이 내는 대로, 적게 내면 적게 내는 대로, 월급통장에 찍히는 금액만 바라보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 삶도 나쁘지는 않다. 그런 삶이 나빠서 회사를 나온 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좀 더 세상을 들여다보는 삶도 좋을 것 같다.
참고사이트 & 자료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