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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Feb 19. 2016

나는 분명 그 시절 오만했다.

- 내가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 




나는 분명 그 시절 오만했다. 누군가 내게 오만 해지라고 시켜서 하루아침에 오만해진 것은 아니었다. 내가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자기 회사처럼 생각하고 일해야 한다는 말은 나의 뇌 회로에 잘못 전달되었다. 내가 곧 회사였고, 회사가 곧 나였다. 나는 루이 14세를 기억했어야 했다. 잘하려는 것도, 권력이라는 것도, 그 어떤 것도, 어느 순간 의미 없이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물며, 내 회사도 아니었는데, 나는 어째서 그런 생각에 빠져 힘들게 살았을까. 그렇게 힘없이 추락했을까. 


어느 회사나 인재를 부르짖는다. 취업준비생들은 갈 곳이 없고, 회사는 뽑을 인재가 없다는 말이 있다. 사실, 회사 규모가 작으면  작을수록 신입을 뽑아서 키우겠다는 목표를 가지기가 어렵다. 누군가 잘 키웠거나 또는 자기 혼자 잘 컸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고르고, 고른다. 하지만, 누군가 잘 키워준 사람은 다른 사람도 탐내고, 자기 혼자 잘 컸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는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다. 


나는 운이 좋은 케이스 중에 하나였다. 인턴으로 시작하여 정직원이 되었고, 매년 자연스럽게 연봉과 직위가 올라갔다. 대리를 단지 얼마 되지 않아, 영업팀장직까지 맡게 되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내가 잘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는 걸,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고 있었어야 했다.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줄줄이 직원들이 사표를 냈다. 그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회사를 그만둘 정도의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들이 사표를 낼 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퇴사의 이유는 여러 가지였고, 그들은 수많은 이유와 함께 사라졌다. 그들의 빈자리가 나를 돋보이게 했다. 그들이 하던 일들이 자연스럽게 나에게 넘어오기 시작했고, 나는 정신없이 일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고,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배우기보다 가르치려 했고, 많은 사람들이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나가버리는 현상을  지켜보며, 나의 존재가 중요해지고 있다고 느꼈다. 


어느 날, 대표가 나에게 몇 년 후 회사를  맡아볼 생각이 없냐고 제안했을 때 나는 흔들렸다. 주주가 되지 않겠냐는 말을 들었을 때도 흔들렸다. 내 것이 아니었음에도, 빨간 독사과를 먹어보라는 말에, 결국 입을 벌리고 마는 백설공주 같았다. 어디선가 달려와 키스로 구원해줄 왕자 따위 데리고 있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나는 직원들이 나갈 때마다 휘청거렸던 회사를 지키려 애썼다. 일곱 난쟁이가 밖으로 나가 버려도, 나는 집에서 그들이 자던 이불도 개고,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는 내가 청소하고 있는 그 집이 내 집이라고 착각하게 되었다. 명백하게  얹혀살고 있던 신분이었음에도, 너도 이 집의 주인처럼 일하라는 말을, 네가 이제 이 집의 주인이라는 말로 알아들었다. 


주인이었기 때문에, 아니 주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밤낮없이 일에 매진했다. 한 편으로는 분명 긍정적이었고 성과가 있었다. 실력이 부족하다고 늘 느꼈기 때문에, 남들보다 일을 더 하는 것에 대해서 당연하게 생각했다. 당연하게 야근했고, 당연하게 휴가 가서도 일을 했고, 당연하게 모든 책임을 다 지려고 했다. 물론, 당연하게 나는 지쳐갔다. 팀장직을 맡고 나서 나는 너무 힘이 들었다. 내 업무를 하기도 벅찬데 밑의 직원까지 가르치고 챙기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들도 나 같은 팀장이 힘들었겠지만, 나 역시 태어나 처음 해보는 팀장 노릇을 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다.  


동료가 아니라 내 밑에 직원이 있다고 생각하고 살았던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일하던 직원에게 그의 근무태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는 나에게 자신이 일을 제대로 못할 경우 자신이 회사를 계속 다닐지 말지에 대한 여부가 내 손에 달려있는 지를 물었다. 한 마디로, 너에게 그런 권력이  있어?라는 물음이었다. 나는 머리를  얻어맞은 듯, 나의 오만함을 깨달았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권력을 내 멋대로 휘두르고 있었다. 나의 오만함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 지를 마침내 보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거울을 들여다봤다. 내 모습은 변해있었다. 책임감이라는 돌덩이를  부둥켜안고, 아무도 건들지 말라는 표정과 굳어져 버린 어깨가 저 너머에 있었다. 


그 후로, 나는 한 동안 많은 생각을 하며 보냈다. 회사생활을 하는 내내 나의 성실함을 의심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잘해보고 싶었고, 잘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연구했고, 사회생활을 배우고, 직장생활을 익히며, 커리어우먼을 꿈꿨다. 개인 시간을 줄여가며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는 날도 많았고, 집에서도 컴퓨터를 꺼두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일을 해야 하는 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회사밖에 생각하지 않던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방향으로 성장하고 만 것일까. 나의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고, 나는 비참한 기분에 잠겼다. 하루하루가 바빠 나를 돌보는 일이 사치스러웠던 삶이었는데, 나는 어느 새 남을 돌보는 일도 사치스럽게 여기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밀물처럼 들어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어느 순간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봐도 얼마 못 버티고 나갈 거라며 단정 지어 버린 건 아니었을까. 


내가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생각이, 나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없어도 회사는 돌아간다. 내가 있음으로 해서 회사가 더 잘 돌아가면 좋겠지만, 내가 조직에서 빠진다고 하여 회사가 멈추는 일은 없다. 내가 회사일 수 없고, 회사가 나일 수 없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있을 뿐이지, 내 밑으로 직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일을 하면서도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고, 남을 돌볼 줄도 알아야 한다. 직책을  맡는다는 것은, 책임감이 늘어나는 것이지 권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팀장은 매년 돌아가면서 맡기 시작했고, 나는 무거웠던 감투를 벗었다. 새로 입사를 한 사람들은 해가 넘어가도 나와 같이 일을 해주었고, 동료라는 이름으로 서로 보살펴주었다. 서로 힘든 부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의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친구들과는 쉽게 공유할 수 없는 회사의 일들을 동료들과 나누면서 나는 점점 더 편해졌다. 언젠가 동료들이, 너무 선을 긋고 살지 말라는 이야기를 내게 해 준 적이 있다. 나는 어쩌면, 의지할 곳 없이 외로이 전투를 하느라, 나 자신을 섬으로 내몬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퇴사를 결심하였을 때, 옆에서 가장 많이 위로해주고 응원해준 것이 바로 동료들이었다. 마지막 퇴근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동료들에게  하나하나 메시지를 보냈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고, 나와 같이 일하느라 고생 많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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