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작가 : 이기호
펴낸 곳 :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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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앞 페이지에서 히죽히죽 웃으면서 눈으로 슥슥 그의 이야기를 읽고 있었는데, 뒤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나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하고 말았어. 아마도 작가가 이야기해주는 그 이야기가 너무 서툴러서, 그 모습이 너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 같아서 더 그랬는지도 몰라. 너무 완벽해서 마치 락스 냄새가 날 것 같은 그런 류의 이야기가 아니라, 방금 세탁기에서 나와 건조대에 널려지기를 기다리는 빨래 냄새가 나는 이야기였어. 그래서 나는 그가 이야기하는 이야기를 건조대에 잘 말리고 싶었지. 잘 말려서 뽀송뽀송하게 다시 누군가에게 입혀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어.
이 책에 '가족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이유는, 여기에 쓴 이야기보다 쓰지 못한 일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p.7
이기호 작가가 이야기하는 가족소설에는 정말 말 그대로 그의 가족들이 나와. 이기호 작가의 시선으로 가족들은 그려지지. 그는 서툴고 또 서툴러서 제발 조금만 아내 맘을 알아주면 안 되겠냐고 이야기하고 싶어 져. 하지만 어느새 그 서툼은 누군가에게 또 따뜻하게 다가가. 그래서 그는 자주 같이 등장하는 사람들을 안아주고, 그들이 보고 싶어 또 울기도 해.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우왕좌왕하면서 힘들게 대처하기도 하고,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에 반성하기도 하지. 바로 우리가 그러는 것처럼 말이야.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에서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보고,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것에서 어른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봐. 그 세상은 다른 듯 하지만, 결국 같이 살아가는 세상이거든.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그것대로, 어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또 그것대로 잘 어우러져. 내가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건,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잘 못해보고 살았다는 거야. 나는 각자의 세상이 있다고만 생각했거든. 그래서 그 각자의 세상을 존중하고 침범하지 않는 게 더 낫지 않을까?라고까지 생각했지. 물론, 침범해서 누군가를 괴롭히라는 뜻은 아냐. 하지만 서로가 가진 틈을 타인이, 타인 중에서도 가족이 메꿀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게 그가 하는 오해와 착각과 실수가 히죽히죽 나를 웃게 만들다가도, 그가 마주하는 가족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울컥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 그의 오해는 나의 오해였고, 그의 깨달음은 곧 나의 깨달음이 되었지. 아, 나도 오해했구나. 아, 나 역시 같은 시선으로 그 행동을 바라봤구나.
"작은 아빠, 동생들이 내가 말이 많다고 싫어하죠?"
나는 조카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그렇지 않다고 동생들은 누나를 좋아한다고 동생들이 삐치는 게 더 문제라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조카딸의 입에선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제가요, 우리 오빠 때문에 말이 많아졌거든요. 우리 오빠가 많이 아프잖아요. 제가 말을 많이 해야 우리 오빠가 다치지 않거든요." p. 157
잠시 그의 집에 머물게 된 그의 조카딸은 사사건건 가족들에게 잔소리를 해. 잔소리를 듣다 못한 그의 둘째 아이는 '잔소리 대마왕'이라고 표현할 정도지. 잔소리를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당연히 없고, 슬슬 다들 거리를 두려던 찰나, 그 낌새를 알아차린 조카딸은 그에게 작게 이야기해. 자기가 말을 많이 해야, 자신의 오빠가 다치지 않는다고. 다운증후군 장애를 겪는 오빠를 바라보는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는, 자신의 오빠가 다치지 않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왔고, 그것이 몸에 배어버린 거였지.
나는 문득 우리 주변에서 때로는 성가시고, 때로는 귀찮고, 때로는 왜 저렇게 말이 많을까, 싶었던 주변 사람들이 떠올랐어. 나는 그들을 제대로 본 것일까? 나는 정말 그들을 제대로 봤을까?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에 눈이 가리고, 귀가 닫힌 걸까? 생각하는 대로 보기도 하고, 앞서 경험한 다른 것에 섣불리 판단하기도 하지. 혹은 너무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그것을 전부라고 여기기도 하고 말이야. 당연한 것은 없는데도,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그래서 왈칵 눈물이 났어. 그 모습이 내 모습 같아서, 미안해서, 안타까워서, 그리고 안아주고 싶어서 말이야.
나는 아이가 없고, 아직 내가 꾸린 가정도 없지만, 만약 아이가 있다면...이라는 생각을 책을 읽으며 종종했어. 나도 아이가 있다며 저런 고민을 하겠지?부터 나도 아이가 있다면 아이가 이야기하는 말 한마디에도 웃음이 나겠지? 하는 생각까지, 그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읽을 때마다 많은 생각이 들었어.
그가 아이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아내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 부모님께 더 신경 써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 하나하나가 글자로 모였고, 그 글자가 문장이 되어 결국 한 권의 책이 되었어. 아주 오랜만에 가족 이야기를 읽으니 좋았어. 제일 가깝지만 또 제일 멀어지기 쉬운 게 가족인데, 나는 가족과 같이 살면서도 가족 이야기를 들어본 지가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남의 집 가족 이야기지만, 책장을 덮었을 때는 우리집 가족 이야기도 듣고 싶어 지게 만드는 책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