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도 생각이 많이 떠오른다.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데 정작 나는 다른 것을 하고 있는 것을 관찰한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이리저리 무의식에 끌려다닌다. 하루 24시간 중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의식하고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게다가 망각이라는 녀석이 기억의 여기저기를 물어뜯어서 남아있는 기억도 많지 않다. 살아가는 시간 중 대부분이 무의식이라면 나는 내 삶에서 있었던걸까?
다행인 것은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고 있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무의식이라는 사슬을 끊어내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 '왜' 하는 줄도 모르고 무엇인가를 하고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도 모르고 감정을 느끼고 살아간다. 참 답답할 지경이다. 하지만 '어떤 삶이 안 좋은 삶이다'라고 정의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어떤 대상을 나쁘다고 정의할 때부터 그 대상은 천사가 아닌 악마로서 내 삶을 망가트릴 때가 많다. 무의식에 끌려다니는 삶이 나쁘다고 말하면,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부정하게 된다. 우리는 살아있다. 그리고 살아가고 있다. 그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의식적으로 살지는 못하더라도 살아있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만족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야속하게도 우리는 무의식에 끌려다니면서 유용하고 쓸모있는 사람이 되라는 채찍을 맞으며 살아간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인가를 증명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과 세상에게 내가 유용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시간을 '나는 유용하다'라는 명제를 증명하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투자할 시간이라는 자원을 무의식이 먹어치우고 있으니 속상하지 않겠는가. 가만히 있어도 돈이 줄고 있다면 조급해지고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나 자신의 삶을 시간의 연속이라고 생각하고 시간을 각기 쪼개서 돈으로 환산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마치 돈이 사라져버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시간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돈이라는 것으로 바꿔버린 우리의 삶은 더 나아졌을까?
앞으로도 많은 생각이 나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뇌 속을 헤엄쳐다닐 것이다. 이 상황을 불안하게 느끼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소중한 것은 맞다. 하지만 나의 삶은 시간으로 쪼개져서 미래를 위한 투자금이 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나의 삶은 전체로서 의미를 가진다. 현재를 살아가는 나는 그 전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1분 = 100원과 같은 가치 환산은 삶 그 자체에 집중 못하게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