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웅사이다 Mar 11. 2024

[배움] 세상에 대해 배우다

우리는 종종 편견에 사로잡혀서 이미 세상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편견에 빠질 수 있으며, 반대로 누구나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지 깨달을 수도 있다. 잠시 시간을 내서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얼마나 모르는 것들로 가득한지 알게 된다. 우리가 매일 내다버리는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화장실에서 물을 내리면 그 물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고 있는가? 아침에 지나친 다리가 왜 무너지지 않는지 궁금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의 일상은 이미 구축된 인프라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 인프라가 없다면, 현대인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삶은 하루도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삶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함 속에 있는 반면 놀라울 만큼 안정적이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밤에 잠을 설칠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배우려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의 삶이 어떻게 지속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을 때, 나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세상에 대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배울 기회를 잃는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믿는 사람은 새로운 지식의 문을 닫고 말지만, 스스로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이들은 끊임없이 배움의 길을 걸어간다. 완성된 지도에는 탐험할 공간이 없지만, 빈 공간을 남겨둔 지도는 새로운 발견으로 우리를 이끈다. 완성된 지도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현재가 계속 유지될 것으로 예측한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온 흐름이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직선 본능'이라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예상은 보란듯이 뒤엎어진다. 우리는 알고 있지 않나. 역사는 항상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전개되며, 오랜 시간 동안 영원할 것 같던 체계나 방식도 결국은 변화의 흐름 속에 사라진다는 것을. 로마라는 천년의 제국도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앞서 우리는 세상과의 분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여러 방식을 통해 세상과 나 사이의 공간을 확보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편견을 내려놓은 채 세상에 대해 깊이 배우는 것이다. 우리가 채워갈 세상에 대한 지도는 넓고 광활하지만, 빈 공간과 오류로 가득하다. 우리가 배운 지식 중에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진리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면 좋다. 역사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역사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새로 발견된 유물은 과거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완전히 뒤바꾸곤 한다.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의 세계에서조차, 과학자들은 확신을 피하며 항상 의문을 품는다. 과거에 확고하다 여겨졌던 법칙들이 변할 수 있음을 역사가 증명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과학자의 태도를 본받아 유연하게 세상을 배워야 한다. 지식을 쌓는 목적은 변하지 않는 사실들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변화하고 발전하는 넓은 시야를 유지하는 것이다. 결국, 진정으로 배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고정된 틀에 박힌 존재가 되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고자 할 때, 배움 없이 이루려는 시도는 종종 현실과 동떨어진 허황된 세상을 만들어 그 안에 갇히게 할 수 있다. 왜 그럴까?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물리적인 세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토대로 한 이해가 부재하다면, 우리가 만들어내는 철학은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과 그닥 관련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만의 철학을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심지어 미래의 AI조차도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지식을 완전히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배움을 통해 자신만의 철학을 세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가 충분한지 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자신만의 철학을 가질 만큼의 균형 잡힌 지식과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삶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학습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의문과 유연성이다. '과연 그럴까?'라는 살짝 비틀어진 관점과 '그럴지도 모르지'라는 개방적인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이 의문을 때때로 의심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안에 부정적인 감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의문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의문은 인류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만약 '과연 그럴까?'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개인 컴퓨터나 딥러닝 같은 혁신적인 기술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변화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진 분야에서조차, 의문은 새로운 혁신을 촉발한다. 우리가 단단하다고 생각하는 세계는 실제로는 취약한 껍데기로 덮여 있을 수 있으며, 그 껍데기를 두드리는 것은 우리에게 텅 빈 공간을 발견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 공간을 어떻게 채울지는 우리의 선택과 자유에 달려 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의문을 가지게 만들까? 그것은 우리가 보고 느끼는 '단순한' 것들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세상을 보고 느끼지만, 보고 느낀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여러 해석을 듣게 되고, 그 해석들이 하나의 사고 체계를 우리 머리 속에 만들어낸다. 바로 그 사고 체계가 순수한 해석을 방해한다. 만약 우리의 마음이 백지와 같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지 않을까? 아이들의 순수한 의문은 종종 우리의 굳어진 생각을 깨뜨린다는 것을 알 것이다. 아이들의 순수한 시선에서는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것들은 종종 굳어진 사고 체계를 가진 어른들에게는 자연스러워 보인다. 예를 들어, 부모가 결혼하여 서로 사랑한다고 하는데 한 사람만이 집안일을 한다면 그것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생각해 보자. 단순함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여러 가지에 대해 순수한 의문을 가질 수 있으며, 그 의문이 우리의 세계관을 풍부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의문을 가진다는 것이 항상 학습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의문에 고집이 섞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유연성을 잃기 시작한다. 그러면 의문은 더 이상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열린 마음이 아니라, 방어적인 태도로 변질되어 타인을 공격하는 수단이 된다. 지금까지 알아온 것들을 나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의견을 마주할 때 자신을 공격받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의문이 그 본연의 기능을 잃는다. 의문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유연성이 필요하다.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마음을 열 때, 우리는 진정으로 배우기 시작한다.


유연함을 지닌 사람은 인생을 도착점이 아니라 연속된 여정으로 바라본다. 어디에 정착했다고 느끼게 되면, 새로운 변화에 대한 제안조차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인생을 여정으로 생각한다면, 인생을 끊임없이 새로운 곳을 탐험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인류의 역사 또한 하나의 거대한 여정일지 모른다. 배움을 통해 내가 깨닫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관점이다. 인생은 여정이며, 인류의 역사는 흐름이고, 나 자신의 삶은 그 흐름 속에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이 흐름에 몸을 맡기고 유연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배움의 길에서 얻는 지식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유연하게 사고하며,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내면의 세계를 변화시킨다. 만약 이러한 변화가 불편하다면, 언젠가 배움은 그 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세상을 경이롭게 생각하며, 배움을 나눌 수 있는 인간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 많은 사람들과 생각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며, 오늘도 깊이 있는 학습을 이어가고 있다.


세상을 배우고자 하는 여정에서 출발점을 찾지 못했다면, 과학, 역사, 철학이 당신의 학문적 기초를 마련해 줄 것이다. 과학을 통해서는 매일 마주하는 자연 현상의 원리를 파악할 수 있고, 역사는 우리가 속한 사회의 근원과 발전 과정을 깊이 있게 탐색하게 해 준다. 철학은 현대 사회의 사고방식과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우리의 세계관을 확장시킨다. 이 세 분야를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변화하는 인식의 흐름으로 접근하면 좋다. 시대가 변하면서 어떻게 인간의 인식이 변화해 왔는지, 과거에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어떻게 부정되어 왔는지를 이해하면, 현대의 복잡한 시대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다리와 같으며, 지금까지 세계는 계속해서 변화해 왔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과학, 역사, 철학의 학습은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고 자신의 위치를 찾는 데 귀중한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전 04화 [분리] 죽음을 인식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