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에 대한 고찰

by 웅사이다

우리 가족은 소화가 잘 안되는 편이다. 아빠도 항상 먹을 것을 소화가 잘 못해서 잠을 못 자곤 하신다. 나도 한살 한살 나이가 들어가니 아빠를 닮아간다는 것을 느낀다. 소화가 잘 안 되는 날이 늘어나면서 잠을 잘 자는 날은 줄어든다. 이전과 같은 생활 습관을 계속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차츰 나의 소화기관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이게 하락의 시작일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돈을 많이 벌면, 나중이 되면, 시간이 생기면 맛있는 것을 많이 먹어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던 지난 날이 부끄러워진다. 시간이 흐르면 맛있는 것보다는 소화가 잘 되는 것을 찾게 될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고통이 그 맛의 즐거움을 덮어버린다.


현실과 객관은 거기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사람에게는 위와 장이 있다. 그것은 현실이자 객관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지한 적이 많지 않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위와 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무엇인가는 먹는다는 행위는 항상 소화라는 운동과 연결되지만, 나는 그것이 마치 없는 것처럼 인식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에게 위와 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한 음식을 먹고 드러누웠을 때, 과한 스트레스로 위가 아파올 때, 변비나 설사로 고생할 때, 고통이 나의 상념들을 쫒아내고 내 머리속을 지배할 때 나는 위와 장의 존재를 새삼 깨닫는다.


고통이 있을 때 나는 나에게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된다. 고통은 상상이 아닌 현실을 보여준다. 어딘가 도달해야 하는 이상이 아니라 내가 딛고 있는 땅에 대해서 알려준다. 두리번 거리던 시선을 내 손바닥으로 가져와주는 고통이라는 친구는 (잔인한 동반자이다) 현실을 보여주긴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고통은 현실을 왜곡한다. 배가 아플 때, 소화가 잘 안 될 때는 소화만 잘 되면 행복할 것 같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화가 막상 잘 되고 나면 행복하기 위해서 그 이외의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현실을 인지 못하며 살다가 현실을 왜곡하며 고통스러워한다. 나는 그 사이에 존재하지 못한다. 현실과 객관은 그 사이에 있을텐데 말이다.


현실을 직시한다는 것은 그러면 왜 중요한 것일까?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동안 현실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그것을 스쳐지나갈 뿐인데 말이다.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 인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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