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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사이다 Mar 21. 2024

[철학] 자신만의 철학이 필요하다

자신만의 철학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에 모두가 공감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왜 우리는 고통스럽게 고민하고 시간을 들여 배워,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을 수도 있는 나만의 철학을 개발해야 하는지에 대해 불평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감정에 깊이 공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세 가지 법칙에 의해 지배받는다. 자연의 법칙, 사회의 법칙, 그리고 자신만의 철학 즉, 자아의 법칙이다. 물리적 존재로서 인간은 사회를 형성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첫 번째와 두 번째 법칙은 자연스러우며 지배적이다. 하지만 당신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단지 물리적 존재가 아니다. 나는 사회의 단순한 구성 요소만이 아니다.' 이러한 사고가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으며, 아마도 이런 사고가 인류가 철학을 발전시키도록 한 원동력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이다.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자신만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존재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 필연적으로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고 발전시켜 나가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이유이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세 번째 법칙, 즉 자신만의 철학은 다른 법칙과 어떻게 다를까? 가장 큰 차이는 이것을 내가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내가 스스로 철학을 형성하지 않는다면, '자신만의 철학'은 단순히 이론적인 개념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이 점에서 커다란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만일 나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법칙만 있다면, 나의 존재와 삶은 정해진 궤도에 불과할 것이다. 태어나서 밥을 먹고 살다가 죽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돈을 벌고 역할을 수행하다가 죽는 그런 삶 말이다. 이러한 정형화된 삶에서 색을 더해주는 것이 바로 이 제3의 법칙이다. 우리는 물론 태어나서 죽는 물리적 법칙을 따르지만,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이 법칙이 제공한다. “단지”를 넘어 “오직” 나만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이 제3의 법칙이 필요하다. 배움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창조해야 하며, 나의 삶에서 나는 작가이자 감독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흔히 볼 수 있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영화를 볼 이유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는 전에 보지 못한 이야기를 경험하기 위해서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자신만의 독특한 삶을 살기를 기대하면서, 왜 우리는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기를 원하는가? 이는 '내 삶'이라는 개념 때문일 것이다. 실패했을 때 직면하게 될 가능성 때문에 두려움이 우리를 지배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자신만의 철학을 형성하는 길은 필연적으로 두려움과 마주하게 만든다. 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지 여부가 우리가 제3의 법칙을 창조할 수 있을지 결정한다. 자신만의 철학을 만드는 여정에서 우리는 용기와 같은 덕목을 갖춰야 하며, 이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 길을 걸어가는 데 있어 목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왜 우리는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려고 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성공하려는 욕망,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목표, 혹은 타인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 때문인가? 만약 타인의 인정과 불확실한 미래의 성공을 원한다면, 진정한 자신만의 철학을 형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단지 성공 방정식을 찾는 과정이 될 뿐,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는 삶을 사는 과정이 아니다. 물론, 언젠가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자신만의 철학은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고자 한다면,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을 단호히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린아이가 엄마의 칭찬을 받기 위해 요리를 만드는 것처럼 행동하게 될 것이다.


어릴 때 우리는 부모님이 모든 것을 안다고 믿는다. 성장하면서 우리는 부모도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부모는 모든 것을 알고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나를 사랑한 것이다. 인간의 위대함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인류는 철학과 과학을 통해 많은 것을 알아냈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미지의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자신의 사망 시기를 알 수 없다. 우리는 이를 알기 위해 과학과 철학을 탐구할 수 있지만, 그 답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때로는 알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을 때, 스스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우리 앞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자연스레 철학적 사유를 촉발시킨다.


우리는 길을 걷다가 때로는 막힌 길을 만나곤 한다. 길이 막혀 있어 움직일 수 없을 때, 우리는 무지를 마주하게 되며 그 순간은 때때로 당혹감을 초래한다. 지식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제공하지만, 그 지식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면 우리는 불안함과 불편함을 동시에 경험한다. 이러한 불편함은 때로는 자아를 무너뜨리는 감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것을 알고 있는지, 또 그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우리에게 미치는 심오한 영향을 보여준다.


만약 시간이 무한하다면, 우리는 차근차근 모르는 것을 해결하면서 점차 안정감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시간은 유한하고, 결국 모든 가능성이 불가능성으로 바뀌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에도 우리는 여전히 많은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시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시간의 제한으로 인해 불필요한 생각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무엇일까?


나는 때로는 무지가 축복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우리는 진정으로 자신에게 집중하게 된다. 이전에는 무엇을 알고 있는지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내면 깊은 곳을 탐구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이러한 열정은 평상시에는 드물게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무지를 인식하는 것은 자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첫걸음이 되며, 인간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진정한 자아를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미래이다. 어떤 사람도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 미래가 가진 불확실성은 한층 부각된다. 우리는 선택의 순간에 더 많은 정보를 원하지만, 인생은 우리에게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한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은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어떤 결정을 해야할지 모르겠고 모든 것이 불확실할 때 자기 자신과의 대화가 시작된다. 이 대화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깊이 고민하게 된다.


삶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은 우리에게 불편함을 준다. 누구나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이러한 순간들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동시에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진정한 자아는 선택의 결과보다는 선택을 하는 과정에 더 잘 담겨있다. 선택의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가치와 방향을 성찰하고, 삶의 의미를 탐구한다. 선택의 순간마다 “만약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이 선택을 계속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짐으로써, 우리는 무지의 바다에서 방향을 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인간이 모르는 것이 없었다면, 무지의 바다에서 방황하지 않았다면, 철학이 발명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에서도 무지를 마주했을 때야말로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 토대가 마련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선택의 방향성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나만의 관점이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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