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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사이다 Mar 25. 2024

[철학]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다

우리는 설명서를 보면서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에 익숙하다. 스케치가 이미 되어있는 그림에 색을 칠할 때 창작의 고통을 느끼지는 않는다. 설명서도 없고 스케치도 없는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한다면 덜컥 겁이 나고 부담을 느끼게 된다.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 때도 우리를 마음 편하게 해주는 설명서가 없다. 따라서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기도 전에 이미 심적부담을 느낀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데 바로 그 불편함이 창조를 시작하게 만든다. 창조란 어떤 세상을 만들어낸다는 뜻이겠지만, 꼭 물리적으로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창조가 아니다. 사람은 세상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같은 세상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각 사람은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봄날의 화사한 벚꽃처럼 아름답기도 하고, 겨울철 마른 가지처럼 척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인생은 우리에게 '어떤 세상을 창조할 것인가?'라는 큰 과제를 던져줬다.


자신만의 철학을 만드는데 정답은 없지만, 서로의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 마음에 내가 생각하는 자신만의 철학을 만드는 법을 여기에 적어본다.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2가지의 재료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이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 적어본다. 그리고 두 번째는 생각을 시작할 출발점이다. 어디서부터 생각을 시작하는지에 따라 다른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보편적으로 사실이라고 생각할만 한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내가 살고 싶은 삶과 함께 생각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예를 들어,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1. 어제보다 오늘 더 따듯한 사람이 된다.

2. 후회가 없는 만족스러운 삶을 산다.


그리고 내가 출발점으로 삼은 사실은 이것이다.

- 모든 사람은 동일한 처음과 끝을 공유한다. 탄생과 죽음이다.


출발점으로부터 시작해서 조금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생각을 전개해나가보면 좋다. 지극히 논리적인 흐름이어도 좋고, 나의 바램과 감정 혹은 경험이 녹아든 생각이어도 좋다. 이렇게 생각을 전개하려는 이유는 단순히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넘어서서 좀 더 진실에 가까운 것을 알아내기 위해서이다. 진실에 가까운 것을 알기 위해서는 첫 시작이 자명한 사실인 것이 중요하다. 거기서부터 뻗어나가면 무작위로 떠오르는 것을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진실에 가까운 생각을 할 수 있다.


위의 사실과 나의 삶의 목표를 연결지어서 생각한 과정을 적어봤다. 번호에 따라 순서대로 생각이 전개된다.


1. 모든 사람은 탄생과 죽음을 공유하기 때문에, 사람은 모두 동일하다 할 수 있다. 한 편, 처음과 끝은 같을지라도 그 안을 어떻게 채우는지는 다를 수 있다.  탄생과 죽음 사이를 들여다보면 모든 사람은 다르다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사람은 모두 서로 같으며 (동질성) 동시에 서로 다르다 (개별성).


2.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오직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은 개별성에 대한 갈망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나만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 독립을 추구한다. 동시에 우리가 사랑을 갈망한다. 사랑은 우리가 서로 연결되도록 하며, 서로 안에 있는 동질한 것을 발견하도록 한다. 사랑은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해준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힘(독립)과 다른 사람들과 하나가 되기 위한 힘(사랑)은 동시에 존재한다. 삶이 있다면 죽음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처럼, 개별성과 동질성에 대한 갈망은 동시에 존재한다.


3.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동질성과 개별성에 대해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 또한 서로 같으며 동시에 서로 다르지 않은가. 흔히 나라는 존재는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우리는 고정되어있지 않고 시간에 따라 변한다. 미래를 예상할 수 없는 것처럼 그 변화는 예상할 수 없다. 미래의 내가 어떻게 해야 만족을 할지, 후회를 하지 않을지 예상을 하는 것은 어떤 주식이 미래에 오를지 예측하는 것처럼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만족스러우며 후회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4. 내가 100년을 산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각 해의 나를 별도로 구별해서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M1 은 1살 때의 나이다. M2는 2살 때의 나이다. M1에서부터 M100까지 나는 시간에 따라 변한다. M1과 M2는 시간의 차이가 짧으므로 공통점이 더 많겠지만, M1과 M100은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을 것이므로 사실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서로 전혀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M1이 만족하는 삶을 M100이 만족할 가능성은 적다. M1은 아직 아기이므로 부모의 따듯한 품에 안겨있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M100이 동일한 삶을 좋아할 가능성은 적다. M들은 이처럼 순서대로 본다면 개별성보다는 동질성이 크겠지만, 대체로 서로 비교하면 개별성이 더 크다.


5. 만약 삶이 잘 풀려서 M1, M2, M3, … M100이 모두 그럭저럭 만족하는 삶을 살았다고 하자. 그럭저럭 만족하는 삶의 만족도를 10 정도라고 정의하고, 전체 삶의 만족도는 각 M의 만족도를 단순합한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전체 삶의 만족도는 1000이 될 것이다. 이 가정은 논리적으로 말이 될까? 과연 죽을 때의 나인 M100은 전체 삶의 만족도가 1000이므로 잘 살았다라고 생각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M100에게는 100세일 때의 만족도가 제일 중요할 것이고, M1의 만족도가 10인 것은 M100에게 그닥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6. 생각을 발전시키기 위해 이런 생각을 해보자. 어떤 사람은 M1부터 M99까지 만족도 0인 삶을 살았다고 하자. 100세일 때, 지나가던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 있었고 그로인해 M100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100이 되었다고 한다면, 전체 삶의 만족도가 1000이면서 M100의 만족도는 10인 삶보다 M100은 더 큰 만족을 느낄 것이다. 그러면 M100의 만족도만 중요할까? 죽을 때 가장 크게 만족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일까? 만약 내가 100세이고 이번 해가 마지막 해라면 M100의 만족도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현재 M35이며,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M100의 만족도를 최대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은 미래만 보고 살아가는 것과 크게 다른지 않은 삶이다.


7. 만약 M을 모두 개별적인 존재로 보면, 각 M의 만족도의 개별합이 최대가 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과연 M은 모두 개별적인 존재일까? 만약 그렇다면 인생이라고 말할 대상은 딱히 없을 것이다. 나의 인생이라는 것은 M1으로부터 M100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각 악기와 악장이 어우러져서 하나의 장대한 교향곡을 만드는 것처럼 M 또한 서로가 영향을 끼치며 하나의 인생을 만들어갈 것이다.


8. M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M45를 생각해보자. 45세의 나는 지금의 삶에서 가장 큰 만족과 나로서 살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다. 그것으로 만족한다면, 그게 최선일까? 예를 들어, M45는 가장 큰 만족을 얻기 위해 페라리를 샀다고 해보자. 그때는 그것이 나로 살기 위한 노력이며 큰 만족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낭비를 해서 M60이 재정적으로 불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다면, M45가 느끼는 만족은 M60의 만족을 가져온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9. 각 M이 자신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 선택하며 사는 것도 좋지만, 우리는 그 너머를 생각할 수 있다. 각 M이 자기 자신을 넘어서서 서로 다른 M을 생각하다면, 그것은 일종의 사랑이다. 사랑은 서로 다른 M들을 서로 연결되게 해주며 결과적으로 하나의 인생으로 만들어준다. 각 M이 내린 선택을 서로 존중하며, 비난하지 않고, 따듯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점차 인생은 개별의 모음이 아니라 하나로 합쳐질 것이다.


10. 우리의 삶의 만족은 우리에게 다가온 불행과 비극에 어떻게 대처하는지와 관련이 깊다. 불행에는 선과 악이 없으며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그저 어느날 찾아올 뿐이다. 예를 들어, 착하게 산 사람이라고 해서 암에 안 걸리지 않으며 나쁘게 산 사람이라고 장수를 안하지 않는다. 사랑이 없으면 M100의 죽음이라는 큰 비극은 다른 M에게 무심하게 느껴질 뿐일 것이다. 서로 다른 M의 비극을 생각하는 따듯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찾아온 비극을 견디어 낼 수 있다. 혼자 누린 쾌락보다 함께 나눈 고통이 우리의 인생에 더 큰 만족감을 가져온다. 따듯한 마음이 개별성에 대한 열망을 지니고 있는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주어 만족감이 넘치는 인생을 만들어준다. 동일한 논리는 나를 넘어서서 나와 타인 사이에서도 적용이 가능하다.


나의 생각과 철학을 이렇게 풀어놓았다. 온전히 자신만의 철학이란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나만의 철학이라 말하지만, 그것은 다른 철학들을 받아들이고 변형하여 나만의 색을 입힌 것일 뿐이다. 철학은 '나는 남들과 다르다'라고도 하고 '나는 남들과 같다'라고도 한다. 옳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철학도 있고, 그런 것은 애초에 없다고 말하는 철학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나만의 철학을 만들어갈 때, 여러 철학 중에서 무작위로 선택해 조합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깊이 이해하고 성찰하며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만의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시간이 지나며 여러 철학과 융합되어 하나가 되는 과정이다. 산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이 모여 바다를 이루듯, 나만의 철학은 바로 그 샘물이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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