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여도 괜찮다

의미는 강요가 아니라 선택이야

by 든든job


“선생님, 솔직히… 먹고살려고 일하는 거 아닌가요?”


30대 중반 구직자가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어.
장난처럼 툭 던진 말 같았지만, 눈빛은 장난이 아니었지.
나는 그 얼굴을 잠깐 보다가 이렇게 답했지.


“맞아요. 먹고살려고 일하는 거, 그거면 이유로 충분해요.”


근데 요즘 세상은 자꾸 다시 묻지.


“당신 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나요?”


말만 들으면 참 그럴싸한 질문인데
어느 순간부터 응원이라기보다
조용히 시험 보는 느낌이 들 때가 있지.


딱히 대답이 없으면,
‘나만 뒤처진 건가…’ 하는 기분이 스윽 올라오고.




나는 상담실에서나 밥자리에서 사람들의 ‘일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어.


어떤 사람에게 일은 그냥 생존이다.

월세, 대출, 장보기, 아이 학원비…
이걸 버티게 해주는 월급.


다른 사람에게 일은 소속감이다.
회사 메일 주소, 목에 걸린 출입증,
“점심 같이 먹을래요?” 하고 부를 수 있는 동료들.


또 어떤 이에게 일은 의미다.
고객 한 사람의 표정,
“선생님 덕분이에요”라는 한마디에 버티는 사람도 있고.


일에 기대는 이유는 제각각인데,
세상은 이상하게 맨 마지막 것만 정답처럼 밀어붙인다.


“의미 있는 일을 해야 제대로 사는 거다.”


마치 그 기준에 못 미치면

내 삶 전체가 덜 가치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면서.




상담실에서 이런 말, 정말 자주 듣는다.


“전 그냥 돈 벌려고 일해요. 퇴근해서 가족이랑 밥 먹는 게 제일 좋아요.”
“의미는 주말 봉사에서 찾아요. 일은 그냥… 일로 남겨두고 싶어요.”


이 얘기를 들으면
나는 은근히 마음이 놓인다.


아, 이 사람은
자기 삶의 중심을 어디에 둘지
이미 알고 있구나 싶어서.


그래서 보통 이렇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선택, 틀리지 않았다.
속으로는 한 번 더 되뇌어본다.
정말, 전혀 틀리지 않았다.




나는 이 문장을 꽤 좋아한다.


밥벌이는 그 자체로 이미 위대하다.


‘소명’이니 ‘사명’이니,
그런 말 덧붙이지 않아도 괜찮다.


네가 벌어온 돈으로 집에 불이 켜지고,
밥상이 차려지고,
누군가는 병원에 갈 수 있고,
누군가는 공부를 이어갈 수 있다.


아침마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출근길에 나서는 건

“내 삶은 내가 책임질게.”라고 말하는 거야.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건 분명 품위이고 책임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어.


그러다 가끔 이런 생각이 문득 올라올 수 있다.


“나, 너무 돈만 보고 사는 거 아닌가…”


혹시 너도 그런 생각 한 번쯤 해봤다면,
문장 하나만 이렇게 바꿔보자.


“돈만 보고 산다” 대신,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지키려고 산다”라고.


오늘 번 돈이
저녁 식탁이 되고, 난방비가 되고,
병원비, 학원비가 될 때,


그건 그냥 숫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내일을 이어주는 다리다.


그 다리를 묵묵히 놓고 있는 사람을
“속물”이라고만 부르기엔,
그 역할이 너무 귀하고, 너무 절실하지 않나.




그리고 한 가지 더.


의미를 꼭 회사 안에서만 찾아야 하는 건 아니다.


주말에 나가는 봉사,
퇴근 후 몰입하게 되는 취미,
동네 한 바퀴 돌며 걷는 산책,
가족이랑 웃으면서 먹는 저녁 한 끼.


이런 순간들이
너도 모르게 너의 ‘의미 통장’을
차곡차곡 채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네 삶의 중심이 회사 바깥에 있어도 괜찮다.
어쩌면 그 바깥이 든든해야
일터에서도 끝까지 버틸 힘이 나는 거니까.



물론 이런 이야기 안다고 해서
내일 아침 출근길이
갑자기 가벼워지진 않을 거다.


월요일은 여전히 길고,
사람과 일은 종종 벅찰 거고,
몸은 또 피곤하겠지.


그래도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이 한 줄만은 스스로에게
살짝 건네봤으면 좋겠다.


“그래도 오늘, 나는
나와 내 사람들의 삶을 한 칸 앞으로 옮겼다.”


생각해 보면,
이 말 한 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을 버틴 나를, 너를
인정해 줄 이유로.




가끔 세상은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기도 하다.


“의미를 찾지 못하면 실패한 거야.”
“좋아하는 일을 못 찾으면 뒤처진 거야.”


그 목소리가 너무 커서
내 마음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릴 때,
이 문장 하나만 살짝 떠올려줘.


의미를 어디에 둘지는,
내 삶을 사는 나의 권리다.


일에서 의미를 찾아도 되고,
일 말고 다른 곳에서 의미를 찾아도 된다.


꼭 하나만 정답이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남들이 말하는 ‘정답’에
굳이 끼워 맞출 필요도 없다.




지금의 너는
매일의 성실함으로 누군가의 하루를 지키고 있다.


그게 가족일 수도 있고,
아직 서툰 나 자신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미 충분히 소중하다.


언젠가 마음이 허락하는 날이 오면
길을 틀어도 된다.

직업을 바꿀 수도 있고,
시간을 쓰는 방식을 바꿀 수도 있다.


모든 변화에는 때가 있다.

지금은 ‘버티는 선택’이
너를 살리고 있다면,


그 선택이
지금 이 시기의 가장 현명한 용기다.




✏️ 오늘의 질문

- 나는 일터 바깥에서 나를 숨 쉬게 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만들고 있을까?

- 지금 하는 일에서 꼭 지키고 싶은 한 가지와 조금 덜어내고 싶은 한 가지는?


당신의 오늘 밥벌이가
누군가의 하루를 지키고 있어요.


그 사실 하나로도
당신의 일과 성실함은 존중받아 마땅해요.

스스로에게 먼저 건네는 인정 하나면 충분해요.




▶ 다음 글 예고

「열등감 사용법 - 나를 멈추게 하는 마음을 한 걸음 밀어주는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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