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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Sep 08. 2018

이도우 신작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나는 ‘현실 같은’ 소설을 좋아한다. 등장인물이 소설 속에서 매우 생동감 있게 행동하는 작품이 좋다.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모든 표현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그려지는 작품을 선호한다. 그러려면 글을 잘 써야 한다. 그냥이 아니라 매우 잘 써야 한다. 인물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섬세하고 구체적이어야 가능하다. 인물의 호흡, 감정 상태, 옷차림 등 무엇 하나 대충 봐선 되지 않는다.     



다행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가 그런 책이었다. 주인공 해원과 은섭은 431쪽짜리 소설 속에서 아주 자유롭게 활보했다. 그들은 현실 같은 사랑을 했고, 현실 같은 일상을 나눴다. 학원 강사를 하다 때려치우고 혜천으로 내려온 해원과 그녀를 남몰래 짝사랑하는 은섭의 일상이 한 편의 영상으로 떠올라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작가 이도우의 섬세한 집필이 빛을 발한 작품이다.     



작가 이도우의 신작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잠옷을 입으렴> 이후 6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이다. 작가 이도우는 베스트셀러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의 저자로 유명하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지난 6월 28일 출간되어 현재 여러 인터넷서점에서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와 있다. -2018년 6월 28일 출간된 이도우 신작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리뷰.     





# 영화 <리틀 포레스트> 같은 도입부.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본 적이 있는가. 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도입부는 <리틀 포레스트>의 그것과 닮아 있다. 서울 생활에 지친 나머지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설정. 그곳에서 고향을 지키고 있는 옛 친구와의 재회. 남자와 여자가 조금씩 서로에게 호감을 보이는 과정.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리틀 포레스트>의 장면이 떠올랐다.      



그래서 소설이 더 잘 읽혔던 것 같다. 문단 문단이 하나의 장면으로 떠올라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예전에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보고 소설 <해리포터>가 더 재밌어졌던 것처럼 덕분에 소설의 재미가 배가 되었다. 나에게도 돌아갈 수 있는, 쉬러 갈 수 있는 아늑한 고향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나의 ‘쉼’ 욕구를 자극했다.        


   



# 우리에겐 그런 고향이 없어요.

개인적으로 무척 재밌게 보았던 영화 <변산>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대개 이런 것이었다. ‘우리에겐 그런 고향이 없다’는 것. 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도 그러한 평가가 뒤따르기 충분했다. 대부분 도시에서 자란 2030 세대에게는 혜천과 같은 아늑한 고향이 없었다. 늘 ‘그곳’에 머물러 있는 고향 친구도 없고, 우리 나이에 동창회를 가봤다는 경우도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바쁜 일상 때문에 가까운 친구 하나 챙기기도 힘이 드는데, 동창 친구라며 많은 친구들을 챙길 여력이 어디 있을까. 그러한 현실적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젊은 사람들이 마냥 그럴 것이라는 작가의 시각은 약간의 아쉬움을 남겼다. 우리에겐 힘들어도 잠시 쉬러갈 고향이란 없었다.      



나에게도 지치면 쉬러 갈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꼭 조용한 시골이 아니어도 괜찮다. 지친 일상에 잠시 ‘쉼표’를 찍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 누구에게도 간섭 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 바쁜 우리에겐 누구나 그런 공간이 하나씩 필요하다. 소음이 넘쳐나는 도시에서는 고독해질 자유를 누리기도 힘들다.      


     



# 서점, 나만의 공간.

나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서점이 좋았다. 서점 장면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서점 내부의 구조와 분위기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구입한 책을 북카페처럼 읽을 수 있게 ‘키핑’하는 책장을 마련해두었던 것. 서점 입구에 ‘오늘의 명언’을 소형 칠판에 적어 걸어두었던 것. 스터디에 참여한 사람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았던 것. 어디선가 봤던 장면처럼 익숙했다.      



그만큼 작가의 글 실력이 뛰어났다. 인물 한 명 한 명이 실제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쓴다는 것이 쉬운 게 아니다. 인물에 대한 입체적인 묘사가 굉장히 섬세하고 훌륭했다. 전에 읽은 정이현 소설가의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최근에 읽은 김금희 소설가의 <경애의 마음>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찾을 수 있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소설의 전형이었다. 그 김에 나는 이도우 소설가의 전작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바로 주문했다. 어제 집으로 배송이 와 포장 비닐을 뜯지도 않은 채로 책상 위에 얌전히 놓여 있다. 이 글을 쓰고 나면 이제 읽기 시작할 것이다. 벌써부터 신이 난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정서적으로 굉장히 좋은 영향을 끼쳤다. 사람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엔 에너지를 얻고 싶을 때 나만의 공간에 나를 가두는 편이다. 그곳에서 침전하면서 조용히 내면을 파고드는 시간을 가졌다. 그 공간이 있다는 것이 정말 축복이고 행운이었다. 만약 그 공간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불안하고 나약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만의 공간은 블로그다. 나는 이곳에서 글을 쓰면서 내면의 힘을 키웠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했다. 다양한 영화 시사회에 참여하고 공짜로 신작도서를 많이 받았다. 어쩌다 보니 나의 진로까지 이곳과 관련된 분야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게 모두 ‘나만의 공간’ 블로그를 만나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심리적으로 큰 위로를 받았으면서 물질적인 혜택까지 안겨주었다. 나에겐 블로그가 해원과 은섭의 ‘서점’과도 같은 공간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블로그가 자주 떠올랐다.           




#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속 좋은 글귀.




이유 없이 슬퍼지거나 울음이 터진다는 건 좋은 일도 아니고, 한밤의 감상이라기엔 스스로 나약함을 증명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아니, 이유 없이 슬퍼진다는 표현 자체가 틀렸다. 가슴에 손을 얹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사실은 이유를 알지.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으니까, 외면하고 싶으니까 모르는 척할 뿐이다.  


    



그의 사랑은... 눈송이 같은 거라고 해원은 생각했다. 하나둘 흩날려 떨어질 땐 아무런 무게도 부담도 느껴지지 않다가, 어느 순간 마을을 덮고 지붕을 무너뜨리듯 빠져나오기 힘든 부피로 다가올 것만 같다고. 그만두려면 지금 그래야 한다 싶었지만 그의 외로워 보이는 눈빛에서 피할 수가 없고, 그건 그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하지만 아픔의 크기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많이 아프다고 누구나 세상을 버리는 건 아니었고, 남은 사람은 덜 아파서가 아니라 살아가려고 끝까지 애썼기 때문이었다.          


 



# 일상을 함께하는 사랑이 하고 싶다.

해원과 은섭은 서점에서 함께 일하고 함께 퇴근했다. 시간에 좇길 필요도 없어 일적으로 다툴 일이 없었다. 아늑한 공간에서 여유롭게 각자의 일을 했다. 그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었다.     


 

모든 걸 함께한다는 것이 때론 부담스럽고 다툴 여지도 많지만, 사랑이란 어쩌면 ‘어떤 대상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혼자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을 둘이 할 때 더 큰 행복이 든다면 당신은 상대방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연인과 크게 다투었어도 계속 함께하고 싶다면 그것은 사랑이다. 해원과 은섭의 사랑이 나는 부러웠다. 함께 일상을 보낼 수 있다는 것.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릴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축복이었다. 그런 사랑을 한 번이라도 해볼 수 있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2018.09.08.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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