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나 자신 알기
공황은 나에게 먼 이야기만 같았다. 마음 약한 사람들에게나 찾아오는 것, 나와는 무관한 것이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웬걸, 나에게도 어느 날 공황이 찾아왔다. 아직 진단을 받은 것이 아니라 확신하기 이르지만 그 증상들이 그것과 너무 비슷해 개인적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 일단 관계의 피로감이 그 어느 때보다 심하다. 사람들을 만난다는 생각만으로 머리가 지끈거린다. 단둘이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콱 막힌다. 가끔 잠들기 전 부정적인 생각에라도 빠지면 쉽게 잠들지 않고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심장이 요동친다. 우울감이 일상생활에 넘실댄다.
공황은 이제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말만 꺼내지 않을 뿐,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할 뿐, 위와 같은 증상을, 또는 그 밖의 증상을 이미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어느 정도씩 다 갖고 있다. 그만큼 공황은 현대인의 고질병이 됐다. 그와 관련된 서적을 요즘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직관은 절대 논쟁하지 않지만, 이성은 항상 논쟁한다. p56
- <어느 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왔다> 중에서
<어느 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왔다>는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클라우스 베른하르트가 쓴 공황 극복 도서다. 기존의 정신분석학에 기반한 과거 트라우마 치료 또는 단순 약 처방적 접근에서 벗어나 뇌과학을 토대로 적극적인 치료법을 전파하고 있다. 저자는 공황이란 부정적 생각이 습관이 되어서 생겨난 징후이지 긍정적 생각을 자주 하다 보면 금방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좀 더 환자 개인에게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대처를 주문하는 것에서 기존의 치료법과 대조를 이룬다.
저자에 따르면 공황이란 무의식에서 전하는 위험 신호라고 말하고 있다. 나 지금 너무 힘드니, 여기서 벗어나고 싶으니, 얼른 행동에 옮기라고 압박을 넣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행동이나 주변환경에 변화를 주면 금방 공황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변화가 중심인 것이다. 지금 상태에서 조금 더 나에게 맞게 변화만 시켜준다면 공황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나는 그 점이 공감되었다. 우리는 다니기 싫은 직장, 하기 싫은 일에 억지로 마음을 쓰느라 늘 마음 고생하고 있다. 무의식에서는 힘들다, 괴롭다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꾸역꾸역 일을 한다. 그러다 견디다 못해 공황이란 강력한 신호로 지금의 상태를 전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해결방안 또한 간단하다. 지금의 상황에서 변화를 꾀하면 된다.
그리고 공황을 질병으로 보지 않고, 잠재의식이 몸을 걱정해서 취하는 서비스라고 인지하라. p62
- <어느 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왔다> 중에서
나 역시 최근 무의식의 신호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 건지 귀 기울인 결과, 나는 좀 더 나만의 일을 늘리기를 원하고 있다. 관계에서도 좀 더 건강한 관계를 늘리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지점에서 욕구 불만이 일어나니 몸이 자꾸 불만을 쏟아냈던 것이다. 이 시간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야 하는데 허망하게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불안한 것이다. 사람들과 긴밀하게 소통을 하고 싶은데 원하는 만큼 채워지지 않아 괴로운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가능한 선에서 원하는 것을 채울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내던지고 그것부터 채울 수는 없었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을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름대로 실천 방안을 만들었다. 아직 실천 단계에 있지만 좀 더 나에게 맞는 방향을 조정하니 그것만으로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중요한 건 나에게 맞는 변화다. 지금 마음이 답답하다면, 나처럼 현실 가능한 맞춤형 변화를 모색해보기 바란다.
“좋아. 내 삶에서 뭔가를 바꾸라는 거지. 이해했어. 그래야 나의 잠재의식이 경고 신호를 보내지 않을 테니까.” 공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좋은 충고를 받아들이고 필요한 변화를 시작한다는 의미다. p118
- <어느 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왔다> 중에서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왔다>가 좋기만 했던 건 아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을 너무 주체적인 존재로 바라본 게 아닌가 싶다. 인간은 그렇게 의도한 대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이성적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의지가 대단한 존재도 아니다. 늘 자기 감정에 휘둘리고, 변화에 서투르며, 의지가 박약하다. 삶의 의지가 희미한 사람도 우리 주변에 굉장히 많다. 지금 삶이 무척 힘들지만 그냥 살던 대로 사는 게 편해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저자가 말하는 적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공황 장애에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정도의 의지가 있었다면 병에 걸리기 전에 이미 긍정적인 방향을 찾았을 것이다. 저자는 인간을 너무 과대평가 한 게 아닌가 싶다. 저자의 극복법엔 전적으로 동감하나 다소 이상에 그친 대안이 아닌가 싶다.
어찌 됐든 모든 치료법엔 공통점이 있다. 결국 나 자신에 대해 잘 알라는 것. 스스로 나에 대해 잘 알아야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생긴다. 내가 어떨 때 피곤함을 느끼는지, 몸에 이상이 오는지, 답답한지, 스스로 잘 알아야 모든 병으로부터 예방할 수 있다. 나 자신 알기를 회피하지 않았으면 한다. 무얼 해야 부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지 스스로만의 대책을 가졌으면 한다. 긍정과 부정 둘 다 고루 가진 균형적인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 나 자신 알기, 오늘부터 시작해보자.
2019.07.26.
작가 정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