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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Aug 13. 2019

김애란 작가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 리뷰

책리뷰



무척 기대를 하고 보았던 <잊기 좋은 이름>. 소설가의 산문은 신선함을 불러올 뿐 아니라 글의 가치도 어느 정도 보장받는다는 점에서 보통 이상의 만족을 준다. 이 책을 선택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 김애란 작가는 수많은 애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인기 작가다. 이름이 알려진 작가의 수준 있는 글을 읽을 기회를 마다할 이유는 별로 없었다. 이 책에 관심 생기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이 책의 글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유형의 것이었다. 소설로 만나본다면 모를까, 산문에서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문체다. 산문(산문에는 다양한 장르가 존재하지만, 그중 수필로 한정한다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진솔함이다. 소설에서 돌려 말해야 할 것도 수필에선 그러지 않아도 된다.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말할 수 있다. 그건 작가 본인이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이기에 가능하다. 소설보단 좀 더 생생하게 그 감정을 전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소설 문체로만 이 책을 풀려고 해 매력을 반감시켰다. 간단하게 풀어도 되는 글을 너무 어렵게 써내려갔다. 그 행위가 고집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만일 제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린 제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네가 있는 공간을, 그리고 네 앞에 있는 사람을 잘 봐두라고. 조금 더 오래 보고, 조금 더 자세히 봐두라고. 그 풍경은 앞으로 다시 못 볼 풍경이고, 곧 사라질 모습이니 눈과 마음에 잘 담아두라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을 만난대도 복원할 수 없는 당대의 공기와 감촉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철없는 저는 못 알아들을 테고 앞으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가게 되겠지요. 그러니 20년, 40년 뒤에는 이 시간을 또 어떻게 술회할지 모르겠습니다. 말과 글의 무게가 예전 같지 않은 시대에 각자 선 자리에서 맞아할 고민과 좌절은 또 따로 있겠지요. p134-5     





예술가의 고집. 마치 예술가라면 이런 감성을 느껴야 돼, 라며 자위하는 것 같았다. 평범한 일상은 배제한 채 예술가의 특별한 일상만 옮겨놓은 듯했다. 작가가 그 속에서 느낀 감정도 결코 평범치 않다. 이것이 바로 예술가의 고독이란 거다, 라고 자랑하듯 보여주는 것 같다. 단 한 편의 글도 가볍지 않다. 공감할 수 없는 감정만 늘어놓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 책에 몰입하지 못할 수밖에. 고백하자면,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어렵고 공감가지 않고 재미가 없어 도저히 못 읽겠다.     





그렇다고 그녀와 세 번째 만났을 때 어색하지 않았단 얘긴 아니다. 도무지 '소심하다' 따위의 공통점 갖고 친해질 리 없는 인간사였다. 그런데 왜 자꾸 만났냐고 묻는다면 할 말 없지만, 세상엔 왜 자꾸 만나는지 모르면서 계속 만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친하지 않았기에 누구도 먼저 일어나잔 말을 못 해, 막역한 이들보다 더 오래 이야기한 적도 있고, 가깝지 않았기에 서로 계산하겠다고 몸싸움을 할 때도 많았다. 이런 선물경쟁 역시 원시 부족의 특징일 터. 우리는 관계의 벽에 구멍을 뚫는 방법으로 가장 미련하고 고전적인 방식을 택한 건지도 몰랐다. p155     





김애란 작가는 1980년생으로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작가가 쏟아내는 글은 반세기 전의 것 같다. 옛 감성이고, 혼자 동떨어진 세계에 사는 것 같다. 일부러 현실적인 이야기는 배제한 듯한 느낌. 그래야 예술이 완성된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는지. 그것 또한 작가의 스타일이겠지만, 지금의 트렌드에서 다소 벗어난 건 틀림없다. 더 정확히는 내 취향에서 벗어났다.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다 오는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문장 안에 시선이 머물 때 그 '머묾'은 '잠시 산다'라는 말과 같을 테니까. 살아 있는 사람이 사는 동안 읽는 글이니 그렇고, 글에 담긴 시간을 함께 '살아낸' 거니 그럴 거다. p141     





유명한 작가이고 베스트셀러라 해서 그 책이 재밌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것은 어떤 책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알고 보니 재미없을 경우 소비자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그냥 재미없구나, 실망할 수밖에. 그런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선 가급적 근처 오프라인 매장에 들려 책 도입 부분 몇 장을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온라인 매장은 그런 한계가 있다. 사람들의 입소문, 베스트셀러 순위로만 구매를 하기엔 그 선택에 후회할 가능성이 너무 크다. 가능하면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것도 좋겠지만, 신작과 인기도서의 경우 대출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몇 장 들춰보는 것밖에 답이 없다. 그러면 실망할 가능성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2019.08.13.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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