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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Dec 22. 2019

<트루먼쇼> 해석, 그럼 트루먼의 삶은 가짜였을까

영화리뷰



실비아의 행동은 옳은 것인가.     



일단 영화에서 노출된 인권이나 윤리적인 문제는 논외로 하고, 실비아의 행동은 옳다고 볼 수 없다. 그 상황이 아무리 비합리적이라 해도 계약 사항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계약자와 이미 그런 사실을 알고 계약했음에도 그것을 돌발적이고 독단적으로 파기한 것이 되기 때문에, 실비아의 행동이 아무리 합당하다 하더라도 계약상,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     



처음 계약할 때는 그런 문제를 묵인하고 계약 사항을 그대로 따를 것임을 동의했으면서, 이제 와서 문제 제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애당초 그런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면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아 다수의 사람과 함께 움직였어야 한다. 이제 와서 다짜고짜 계약을 파기하는 건 정당화될 수 없다.


     

이것을 일반적인 상황으로 옮겨 놓는다면?     



만약에 친구의 남자친구가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했다면, 그것을 친구에게 말해줄 수 있을 것인가.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결혼이냐, 연애냐에 따라 조금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본 것이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하다면, 결혼한 지인의 경우 디테일하게 말해줄 것 같다. 최소한의 정보만 흘리면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으므로, 어디서, 무얼, 어떻게 봤는지 육하원칙의 기반해 자세하게 알려줄 것 같다. 그런 뒤 그것을 검증하고 판단하는 몫은 친구에게 넘길 것이다.     



연애하는 지인이라면, 나는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면 모를까, 단순 연애라면 그 둘이 어떻게 결말이 나든 중간에서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내가 보는 정보는 극히 일부분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둘의 결론은 전적으로 그 둘이 내리는 것이 맞고, 연애라면 어찌 되든 큰 위험 부담이 없기에 내버려 두는 것이, 나는 옳0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의 행동이 전적으로 옳다고는 나도 말 못하겠다. 다만, 기본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것이 나의 원칙이다.          





그럼 트루먼의 삶은 가짜였을까.     



'진짜'를 누가 판단하는 것인가. 대다수가 가짜라 판명하면, 그 사람의 인생은 가짜가 되는 것인가.     



내 삶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내가 판단하는 것이다. 내가 나의 삶을 어떻게 느끼는지, 그게 중요한 것이다. 대다수가 트루먼의 삶이 가짜라 판명해도, 만약 그가 그 속에서 행복을 느꼈다면 그것은 진짜의 삶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실비아를 만나기 전까지 그는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았다.     



여기서도 법적, 윤리적, 인권적 문제는 차치하자. SNS 상에서 최근 이러한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니까 타인의 삶을 함부로 규정하고 악플을 남기는 사람들을 거론하는 것이다. 그들은 단편적인 사실 또는 루머만 가지고 도가 넘는 악플을 남긴다. 그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옹호 받을 수 없다. 누가 누구를 판단하는 것인가. 그럼 정작 본인의 삶은 그리 당당하고 깨끗한가. 분명 긁어 부스럼 나지 않는 사람이 없을 텐데, 본인은 아주 깨끗한 양 공격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중요한 건 내가 판단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느끼는지다. 그 이외에는 모두 무의미하다.          





트루먼에 대한 크리스토프의 마음은 정말 사랑이었을까.   


  

당연히 사랑이 아니다. 크리스토프 본인은 사랑이라고 느낄지 모르지만, 그것은 자기 범죄에 대한 합리화일 뿐, 사랑이 될 수 없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선 약간의 혼란이 생긴다. 누가 뭐라 해도 본인이 사랑이라 느끼면 사랑이지 않느냐 하는 것과 사랑에 대한 기본적인 조건이 빠지지 않았느냐 하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본인은 사랑이라 느끼고, 또 그것이 사랑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잘못된 사랑임에도 틀림없다. 그럼 진정한 사랑이 뭘까. 진정한 사랑은 그 사람의 존재를 무조건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고, 지속된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후자는 맞을지 몰라도 전자는 아니다. 크리스토프는 트루먼을 끊임없이 통제하고 자기 마음대로 부리려 했다.     



참고로, 최근 들었던 북토크에 프로파일러가 강연했는데, 그 분이 하셨던 말이, "일상 속의 싸이코패스는 타인을 통제하려 드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비춰봤을 때 크리스토프는 싸이코패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랑과 소유욕은 조금 분간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이 영화가 시사하는 바는.     



이 영화가 20년 넘도록 사람들 마음에 머무를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재미보다 바로 시사하고 있는 메시지 때문이다. 이 영화는 끊임없이 주변을 의심하고 깨어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현실로 옮겨 보자면, 짜여진 각본대로 살도록 종용하는 권력(크리스토프)과 그것에 순응하거나 반항하는 개인(트루먼)으로 비유할 수 있다. 우리 현실이 트루먼쇼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권력과 사회가 정한 대로 우리가 살려고 애쓴다는 점에서 우리도 트루먼과 다를 바 없다.    


 

그 삶에서도 행복과 안정을 느낀다면 굳이 문제 시 삼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시 한 번 주위를 의심하고 주어진 현실에서 벗어나려 애를 써야 한다. 그것은 한국이란 나라가 될 수도, 속한 조직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기론 굳이 이미 행복한 사람까지 주위를 의심하며 살 필요는 없지만 영화는 그렇게까지 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또 다르게 보면 영화의 결말이 열린 것으로 보아 주어진 현실을 박차고 나가는 것이 꼭 옳은 일인지도 의구심을 가졌다. 그러니까 그 일이 꼭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도 은연중 내품고 있는 것이다.     



결국 개인의 선택, 개인의 삶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아닐까.





2019.12.22.

작가 정용하

# 사진 출처 - 네이버 스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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