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정용하 Nov 13. 2021

38. 감정의 힘을 채우는 시간



나는 사계절 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꼽으라면 가을을 가장 좋아한다. 보통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계절을 꼽으라 하면 봄과 가을이 각축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대개 봄을 꼽는 사람이 더 많다. (내 주위 경우엔 그렇다.) 하지만 나는 가을을 더 좋아한다. 그것에 딱히 이유는 없지만 굳이  그 이유를 설명하라 하면 가을이 내 '감성'에 좀 더 맞기 때문이다. 가을의 내가 온전한 나 자신에 더 가깝다고 느낀다. 나의 살아 있음을 느끼고 나를 좀 더 정확히 바라볼 수 있는 계절이랄까. 여름과 겨울은 더위와 추위로 나 자신을 되돌아보기 어렵다. 빨리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이다. 봄은 뭔가 새로움과 도전 욕구에 가려 온전한 나 자신을 바라보기 어렵다. 가을만이 이제 내가 서 있는 위치를 확인하고 안정감을 느끼며 엉켜 있는 감정 실타래를 풀 수 있는 것 같다. 일종의 겨울잠을 자기 위해, 그러니까 새로운 동력을 얻기 위해 자기 자리를 정리하고 감정의 힘을 채우는 시간이 된다.


가을쯤 되면 이제 한 해도 3개월 남짓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설렘과 아쉬움이 공존한다. 예를 들어 남은 기간 안에 사랑이 찾아올지 모른다는 설렘과 기대감도 있고, 벌써 한 해가 다 가버렸다는 아쉬움도 있다. 그게 어쩌면 인간 본연의 모습에 가까울지 모른다. 설렘과 아쉬움,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이 계절이.


돌이켜보면 나는 가을에 혼자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자의나 타의와 상관없이 공교롭게 그러했다. 봄부터 한창 사람을 만나기 바빴고, 여름에 들어 관계에 위기감과 회의감이 들었으며, 가을엔 관계를 어느 정도 정리하거나 그것에 거리를 두어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가을의 내가 나의 본 모습에 가깝다면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단 혼자 있는 것에 더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고 해석해도 될까. 물론 그 두 모습 다 공존하는 것이 나란 사람이겠지만, 확실히 혼자 있을 때 더 안정감을 느끼고 온전한 나라고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나의 본 모습과 상관없이 나는 또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바랄 것이며 봄과 여름엔 또 한창 사람들을 만나고 다닐 것이다. 그러다 또 가을이 돼서야 '나'를 찾겠지. 그게 인생이고, 어쩌면 삶이란 것이 온전한 나만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 아닐까. 여름과 겨울과 같은 고통과 봄과 같은 새로움, 도전, 그리고 가을과 같은 안정감, 아쉬움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즉 그 모든 것이 내게 필요하고 결국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계절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 나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인데 이번 가을은 제대로 느낄 새도 없었다. 대체로 더웠고 갑자기 추워졌다. 앞으로 계속 그런다면 좀 슬퍼질 것 같다. 가을의 날씨가 주는 그 맑은 기운이 있다. 한창의 더위가 물러가고 높고 푸른 하늘을 보면 보는 것만으로 지친 피로가 씻겨 내려가고 위로를 받는다. 이제 드디어 나를 찾았다는 느낌마저 든다. 단풍이라도 떨어지면 남은 한 해를 더 소중히 보내야겠단 다짐을 하게 된다.


11월이면 아직은 가을을 더 만끽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요즘 추위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외투를 입기 애매할 정도로 더웠던 것 같은데 날씨가 변덕스러운 것을 넘어 정체를 모르겠다. 가을은 단순히 9월부터 11월까지의 달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날씨, 기운, 풍경, 바람을 담고 있는 것인데 그게 흐릿해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그래도 나는 가을을 더 즐겨야겠다. 한 해를 되돌아보며 아직 남은 시간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나의 일상을 지켜야겠다. 그래도 올해의 가을도 나쁘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그것만으로 무지 감사하다. 가을이 내게 항상 나를 찾아주는 계절로 남기를 바랄 뿐이다.


-21.11.13.












매거진의 이전글 37. 프리랜서에게 코로나19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