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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Mar 30. 2024

평내동에서의 큰 깨달음



주말에 아무 연고도 없는 남양주시 평내동을 찾았다. 평내호평역은 용산역에서 ITX-청춘을 타면 40분이면 도착하는 곳이어서 짧은 시간 안에 서울을 벗어날 수 있다. 물론 서울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호남선이나 영동선을 타도 그 시간이면 천안이나 수원에 닿을 수 있다. 하지만 그곳들은 너무나 자주 가봤다. 가서 뭘 할지가 눈에 훤한, 익숙한 동네다. 나는 낯선 서울 밖의 동네에 가고 싶었다.



모르겠다. 서울 생활이 지쳤다. 정확히 지쳤다기보단 아무 감흥이 없다. 25년 동안 같은 동네에 자라 여전히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 이렇게 일부러 나와 주지 않으면 맨날 거닐던 길을 지금도 또 걷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지겹다. 일단 나는 서울 밖으로 벗어나고 싶었다. 조금은 한적하면서 있을 건 있는, 사람 사는 동네에 닿고 싶었다. 평내동은 내가 생각한 딱 그곳이었다. 이렇게 떠나온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될 거였으면 왜 진즉에 행동에 옮길 생각을 못 했을까. 그것이 나의 보수성이다. 이른바 '루틴'이란 이름으로 지금까지 새로운 변화를 극도로 피해왔었다. 이 생활을 유지하면 큰 성과를 안겨다줄 거란 믿음 하에 나의 생활은 붕어빵처럼 똑같았다. 사실 지루하단 생각은 하지 못했다. 조금 답답하단 느낌은 있었지만 이 생활이 주는 안정감 또한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벗어나려 애쓰지 않으면 벗어나야 할 필요성도, 삶의 불안감도 별로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서울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현상을 유지하려는 보수성을 깨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 감정 없는 무생물이 될 것만 같았다. 나만의 스토리는 영영 쓰지 못할 것이다. 나만의 스토리.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을 쓰고 싶다. 매번 도전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싶다. 하지만 지금 생활에선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매일 똑같은 하루에선 특별한 감정이 들 수 없다. 생각과 감정은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할 때 요동친다. 나는 이미 용산에서 25년을 살았기에 더 이상 적응할 것이 없고, 내가 만나는 인연, 장소, 내용 다 다를 것이 없다. 그러니 별 감정이 들지 않을 수밖에.



그런 요즘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변화가 필요했다. 새로운 자극과 환경이 필요했다. 사실 이렇게 머리 싸매며 고민할 필요가 없다. 아주 확실하고 단순한 방법이 있다. 다 때려치우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면 된다. 그러면 알아서 나의 몸과 마음은 적응하기 위해 열일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간혹 유튜브나 미디어를 보면 그런 사람이 종종 나오지만 나는 그렇게 모든 것을 다 내던지고 싶지 않다. 그게 옳은 삶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것 또한 나의 보수성이다. 분명 현실에서도 개선 가능한 방법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것을 찾기 위해 무작정 평내동으로 떠나왔다. 이곳은 불과 40분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지만 내 마음은 빠르게 가라앉았고, 나의 머릿속은 여러 생각으로 복잡해졌다. 내겐 기분 좋은 복잡함이다. 오랜만에 살아있음을 느낀다.



인간의 보수성은 삶의 안정감을 불러와 그 근간으로 작용하지만, 그것을 고집하게 되면 모든 것에 무덤덤한 무감정 동물이 된다. 그래서 새로운 변화, 새로운 시도는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대부분 그것이 '여행'으로 발현되는 것이겠지만, 단순한 체험, 자극적 경험은 온전한 방법이 되지 못한다. 그 방법을 일상에서 찾아야 한다. 인간은 적응할 때 가장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지금 내가 더 이상 적응할 게 없다면 삶의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새로운 문화에 뛰어들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새로운 문화에는 새로운 사람, 새로운 언어, 새로운 책, 새로운 영화, 새로운 운동이나 취미가 포함될 수 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던 사람과는 다른 결의 사람을 만난다거나 그런 사람과 연애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읽던 책이 에세이라면 고전 문학 등을 읽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운동을 접해보는 방식으로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그것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하고, 살아있음을 느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찾은 현실에서 새로운 스토리를 쌓는 방법이다.



내가 충동적으로 평내동을 찾았지만, 이렇게 단순히 새로운 곳을 찾는 것으론 지속가능한 방법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건 임시 처방일 뿐이다. 블로그에 올린 예전 글을 보면 참 감정이 풍부하고 할 말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감정도 들지 않고 돈 이외에는 관심 갖는 것이 없다. 그것이 현재 나의 보수성이다. 그대로 살아도 크게 부족하지 않고 나름대로 재밌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의 구멍이 점점 더 커져가는 기분은 지울 수 없다. 그걸 채우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그 해답이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책을 꾸준히 읽으면서 새로운 운동에 도전해보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새로운 사람과 연애함으로써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지만 그것에 집착하는 순간 삶의 중심을 찾지 못해 일단 그것은 차순위 문제로 놓으려 한다.



다행이다. 그 해답을 찾으려 평내동을 찾은 것인데, 원래의 목적을 완벽히 달성했다. 역시 보수성(루틴)에 갇혀 있다면 일단 그것을 깨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오로지 혼자 있는 것이다. 혼자가 되지 않으면 삶의 실타래를 풀어낼 수 없다. 또, 꼭두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피곤은 하지만 아침부터 움직이지 않으면 깊은 생각을 할 수 없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성향이라 지금까지 여행을 가본 적이 손에 꼽히는데, 이제 여행을 가야 할 이유를 찾은 것 같다. 삶이 보수성에 절여져 있을 때, 새로운 문화를 접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은 내게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때도 중요한 것은 혼자 떠나는 것이 될 테다. 혼자서 여행을 떠나는 것만큼 내 단단한 보수성을 깨기 어려운 것도 없지만 그것을 깨야만 내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고 직감했다.



오랜만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일 생각이 아닌 삶에 대한 생각. 역시 환경이 바뀌어서일까. 앞으로가 기대된다.



-24.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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