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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Apr 18. 2022

내가 제일 중요하다는 말

"oo야, 너라는 사람이 제일 중요해. 알겠지?"

아이 둘이 노는 사이, 오가는 대화 하나가 귀를 당겼다. 

어머. 누가 저런 말을 하는 거니. 

안방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거실로 고개만 쏙 내밀고 숨어 아이들을 쳐다봤다.



7살 아이는 5살에게 세상의 진리를 건네고 있었다. 왜 저런 말을 하고 있는지 앞뒤 상황은 모르겠지만 그 모습만으로도 달려가 안아주기에 충분했다.

"어머, 그런 말 누가 해줬어? 선생님이 해준 거야?"

"아니? 엄마가 해줬잖아, 나 6살 때 엄마가 나한테 해준 말인데?"



세상에나- 내가 그렇게 기특한 말을 너한테 해줬다니. 그리고 그 말을 기억했다가 동생한테 해주다니. 이건 정말 기억에 남는 날이겠다 싶었다. 어쩌면 처음으로 내가 아이에게 좋은 엄마일지도 모르겠다는 스스로에게 큰 칭찬을 해줬다.





나라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는 말을 그저 글자가 아니라 온 몸으로 느끼게 된 시간이 있었다. 흔히 아이에게 해주어야 할 부모의 정석 같은 이야기 하지만...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진짜 그 느낌을 전해주고 싶어서 노력한다. 나도 그 말의 의미를 내 생각으로 단단하게 만들려는 과정을 이제 막 통과했고, 체화하는 중이라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해서 계속 잊게 되지만... 내가 말하는 순간 아이도 나도 자꾸만 알게 된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나보다 타인의 눈치를 맞추고 그 기준에 재단해서 생각하고 생활해왔다. 예전 엄마들이 다 그랬지만 나 또한 시어머니와 함께 살며 나보다 어른의 모든 것에 맞춰 생활했던 엄마를 보고 자랐으니 말해 뭐 할까. 당연히 타인, 내가 맞춰야 하는 사람은 그들이 기준이 되었고 다른 사람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 생각하고 생활하며 크는 게 당연했다. 한 번도 착한 딸이 되어라 착한 사람이 되어라 들어본 적 없지만, 초등 6년 내내 모범상을 받고 공부 외 엄마 속을 썩이지 않는 걸로 엄친아였으니까. 어쩜 다른 딸들은 엄마랑 다투기도 하던데 우리는 한 번도 다투지도 않았다는 엄마의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지금은 안다. 그건 좋은 게 아니라 0점짜리 상황이라는 것을.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너무나 희미하고 보잘것없어져서 불쌍했고 의미가 없는 만큼 나도 사라지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순간이었지만. 그 시간을 통과하며 나는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미 다른 길로 들어섰고, 나 스스로도 다시 돌아가려고 할 때마다 애를 쓰며 정신을 부여잡는다. 살아온 시간이 내가 느끼기에 틀렸다는 건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정확한 메세지가 답으로 전달되었고, 지금까지와 다르게 살겠다는 건 용기와 의지도 많이 필요한 일이 분명했다. 



내가 변하면서 기존 나의 생활에 유지되던 것들이 서서히 멀어졌다. 거리를 두어도 되었던 것들은 과감하게 버림을 선택했지만 가족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이미 다른 세상으로 옮겨가고 있는데 가족은 그 자리. 나의 생각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책을 내면서 나름의 선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의 이벤트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을 100% 다 드러내 보인 건 아니니까 말이다.



"애들도 이제 어린이집 가고 시간도 많은데, 

일이나 슬슬 하지~"



엄마는 시집오면서 가게를 시작하셨고 50대 중반까지 30년 동안 매일같이 일을 하셨다. 다양한 직업으로 바뀌긴 했지만 늘 돈을 버는 사람이었다. 직접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시기도 있었고 꼭 벌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시간도 있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거의 60이 다 돼서야 직업을 놓고 가정주부로 돌아왔다. 이제는 좀 쉬어도 되겠다면서 말이다.



그런 엄마라, 아직 40인 내가 아이를 키운다는 이유로 일을 하지 않는 게 조금은 의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당장 내가 돈을 버는 일을 하는 게 아닐 뿐, 나도 미래를 위해서 무엇보다 나를 위한 일들을 하고 있는데 그걸 알아주지 못하는 것에 순간 화가 삐죽 올라온다. 몇 달에 한번 또는 매해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내가 꾸려가는 이 일상이 의미 없다는 말로 들려서 조금 슬프기도 하다.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면서는 왜 그걸 알아주길 바라는지 나 자신에게도 되묻고있다.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으면 됐지, 왜 그 말이 슬프기까지 하냐고.

 


"엄마, 나 지금 노는 게 아니야. 애 키우면서 블로그도 하고 책도 냈고 이제 그림도 그려. 모임도 열고 강의도 가끔 해. 노는 거 같지만 계획이라는 게 있어. 무턱대고 유유자적 노는 게 아니야"

이렇게 시원하게 내뱉고 싶은데 참...그게 안된다.



당장의 돈. 나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중요하다. 남편 혼자 일을 하며 수입을 일으키고 나는 정말 들쑥날쑥한 벌이를 유지하고 있다. 어떤 달은 0원, 또 어떤 달은 100만 원 이상. 수입도 다르고 하는 일도 계속 달라지기에 엄마의 말에 당당하게 대꾸를 하지 못한다. 돈보다 지금 나에게는 나의 가치를 찾는 것, 그것들로 나를 채우면서 아이들에게도 그 에너지를 나눠줄 수 있는 일.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게 되어버렸는데..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이해받으려고 하지 않아야한다. 그래서 조금의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엄마의 부탁과 말에 조금이라도 반대방향으로 대하지 않던 나는 이제야 내 생각을 슬쩍 이야기한다. 운전기사가 필요해서 나에게 내일 집에 와달라고 하면 조금 바쁜 척을 하기도 하고, 우리 집에 와서는 늘 어질러져있다고 말하며 청소를 해줄 때는 나는 지금 이 꼴이 제일 마음 편해서 더 치우지 않아도 딱 좋다고 말이다. 

그런 말들이 아직 유연하지 못해서 엄마를 서운하게 하고 슬프게 할지도 모르겠다. 모든 말에 알겠다고 대답하지 않으려는 나의 마음도 그리 편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아달라고 하면 내 욕심일까.



생각이 변하고 생활환경을 바꾸기 시작하니, 어디선가 균열이 일어난다. 그것이 친구이기도 가족, 남편 등 가까운 사람에게서 발생하니 난감할 때가 있다. 어쩌면 당연했다. 사람이 사는 방식이 몇 가지 있다면.. 다른 그룹으로 옮겨가는데 반작용 같은 현상. 그것을 나도 상대방도 잘 받아들이고 대처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틀린 게 아니라 그저 다른 거니까. 모두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인정한다면 틀린 인생도 답도 없는거니까. 

그리고 아이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줘야겠다. 지금처럼 엄마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려고 할 때, 너의 말에 번쩍 정신차릴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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