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혜진 작가 May 13. 2022

엄마의 사랑 그 끝은 어딜

"오늘 모해?"

"별일 없는데? 집에 있어. 왜? 어디 갈 거야?"

"그럼 11시까지 내가 그리로 갈게"


엄마가 이른 아침부터 톡을 했다. 엄마가 나를 찾는 일은 많이 없지만, 가끔 이렇게 시간이 있는지 물어보는 이유의 대부분은 외갓집에 들고 갈 거리가 많아서 운전을 해달라는 부탁이다. 90이 다 된 엄마의 엄마와 아빠. 나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댁에 엄마는 자주 반찬을 해드리고 말동무를 해드리러 간다. 그런데 버스를 갈아타고 매번 시골에 가야 하니.. 짐이 많은 날은 나에게 전화를 하곤 한다. 

그래서 그날도 심부름을 해야 할 일이 있나 보다 했다.



11시가 되고 엄마가 왔다.

"엄마, 할머니 집에 가려고? 어디 식사하러 나가실 거야?"

"아니~너희 집 근처에 아웃렛 있잖아. 거기 갈려고. "

"아, 엄마 여름옷 살 거야?"

"뭐.. 내 거도 사고 살 게 많아. 일단 가자"



뭔가 시원하게 말을 하지 못하는 게 엄마답지 않게 비밀이 참 많다 싶었다. 결혼식장에 가야 하는데 입을 옷이 없다거나 아빠 여름 셔츠를 사야 한다거나..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만 아웃렛을 가는데 뭐지?! 일단 가자고 하니 오랜만에 쇼핑 길에 나섰다.



"엄마 옷 파는 매장은 여기 있어. 이쪽부터 갈까?"

"아니, 애들 옷 파는 곳이 어디야?"

주차를 하고 아웃렛 지도를 보면서 그제야 이곳에 온 이유를 이야기하는 엄마. 비밀처럼 나를 여기에 데려온 목적을 이제야 알았다. 손자 손녀 옷을 사주고 싶어서-



어린이날에 손녀 원피스와 손자 샌들을 사주고 싶었는데 아이들은 장난감을 원했고, 어린이날이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줘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들이 원하는 것들을 선물해주셨다. 그러고는 이내 자신이 사주고 싶은 것들을 사주지 못한 마음이 남아있었고.. 결국 또 아이들을 위해 돈을 쓰러 오셨다. 아니, 마음을 선물하러 오셨다.



"엄마 옷은 물려받은 거 진짜 많아, 그리고 내가 다 알아서 사주는데..."

내가 늘 이렇게 말해서 맘껏 사주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눌러 계절마다 하나씩만 사주는 친정부모님이었다. 이쁜 원피스를 입으면 좋겠는데 정작 아이 엄마인 나는 이쁜 것보다 편한 것만 사입히고, 어느새 아이는 치마보다 바지를 좋아하는 딸이 되었다. 원피스는 1년에 한 번도 제대로 입을 일이 없다며 티셔츠와 바지만 입히는 딸과 손녀의 취향이 아쉬워서 직접 사주겠다는 마음으로 몰래 여기까지 온 거였다.

출발하기 전에 아이들 옷 사러 가자고 하면 내가 안 갈까 봐-




나 어릴 적 사진을 보면 어찌나 이쁘게 꾸미며 키웠는지... 머리도 언제나 단정하게 땋고 묶고. 손재주가 좋은 엄마는 매일 내 머리를 땋는 것이 재미있었다고 했고, 딸이 할 수 있는 머리는 모조리 해줬을 정도로 솜씨가 좋았다. 그리고 원피스나 이쁜 옷은 얼마나 많은지. 그런 날만 사진을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샤랄라 한 모습으로 나는 기록되어있다.



그에 반해 엄마가 된 나는, 편한 것 그리고 차려입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딸 머리도 그냥 양갈래나 하나로 묶는 게 전부이고 아이들은 활동하기 좋은 옷이 최고라며 결혼식장처럼 신경 써서 입어야 할 자리가 아닌 이상 편하게 입힌다. 그래서 딸 성격이 방방 뜨고 인형보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걸까? 뭐.. 상관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아이들 이쁜 옷을 입지 않는 게 엄마는 아쉬운지 아이들 어릴 때는 지나가는 말로 애들 옷 좀 챙기라고 한 적도 있었다. 물려받거나 하는 옷도 영 아닌 건 버리라고. 내 눈에는 멀쩡해도 말이다. 계속 얘기하면 잔소리라 몇 번 슬쩍 이야기하고 말았는데, 늘 마음속에 불만이 있었나 보다.




"이거 어때?"

"오늘은 엄마가 사주고 싶은 걸로 사줘, 내 취향 물어보지 말고. 맘껏 사~"



내 돈을 쓰는 것도 아니면서 크게 인심을 썼다. 007 작전처럼 마음을 감추며 이곳까지 온 게 고맙고, 손자 손녀 옷 사 주는 것도 눈치 보게 만든 내가 미안해서. 그날만큼은 사주겠다는 옷을 마다하지 않았다. 엄마는 원피스, 바지, 티셔츠를 골랐고 작은 아이 옷도 서운하지 않게 몇 벌 담았다. 저게 다 얼마야.. 엄마가 들고 오는 옷들을 보며 디자인은 둘째치고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머리가 복잡했는데, 엄마는 표정이 살아있었다. 어릴 적 내 옷을 고를 때 이런 모습이었을까?



여름옷을 20만 원 넘게 사서 나오는 길, 손도 마음도 가득 찼다. 

웃으며 같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부모를 생각해서 괜찮다고 하는 마음, 신경 쓸까 봐 뭐든 알아서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어쩌면 부모에게 섭섭한 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력이 되는 만큼 자식에게 주려고 하는데.. 어떨 때는 능력 이상의 것도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인데 자식은 이제 컸다고 다 알아서 하겠다고 걱정 하나도 끼치지 않겠다는 것이 선을 긋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도 같다. 



"엄마 고마워. 애들 너무 좋아하겠다~

내가 샀으면 이런 옷 못 입을 텐데 할머니 덕분에 이쁜 거 입겠다, 

이 원피스 작아지면 또 사줘~"


오랜만에 마음 편하게 할머니의 사랑을 받아 들고 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는 변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