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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Sep 30. 2022

오늘도 너희에게 배운다

눈물이 많은 엄마는,

"엄마 없이 잘 수 있어? 힝, 엄마는 밤에 울 수도 있어. 너희 보고 싶으면 어쩌지?!"

"하룻밤인데 뭘 그래 엄마."


어린이집에서 1년에 한 번 들살이를 간다고 한다. 가을 이맘때쯤 5-7세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떠나 엄마 아빠 없이 하루 자게 되는 행사라고 들었다. 1,2달 전부터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단단함을 길러주고자 그곳에 우리가 꼭 가야 하는 스토리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들려주셨다. 아이들은 그 이야기를 찰떡같이 믿고 미션을 수행하러 떠난다. 우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자부심까지 가지고 말이다.



두 아이를 보내려니 조금씩 걱정이 되었다. 정작 떠나는 아이들은 흔들림이 없는데 엄마인 내가 제일 마음이 얇아져 아이들에게 한없이 스며들었다. 그러면서도 엄마인 내가 약한 마음을 말해버리면 아이들이 흔들리거나 진짜 안 간다고 말을 할까 봐 내색조차 할 수가 없었다. 속으로 '둘째는 집에서도 엄마 손 잡고 자는데, 낮에는 노느라 정신이 없겠지만 밤에는 울고불고 난리가 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가끔 친정에 가서 둘이 자고 오기도 했기에 엄마 아빠와 떨어져서 자는 일이 조금 익숙할 수 있겠다는 믿음도 있었다. 마음이 왔다갔다, 가는 길에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주책스러운 생각이 들 때마다 고개를 흔들었다. 건강히 잘 다녀올 아이들의 모습만 상상하려 애썼다.



아침 6시부터 일어나 두 아이의 도시락을 싸고, 어제 함께 싸놓은 가방을 한 번 더 확인했다. 진짜 둘이 떠난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주책바가지인 내가 버스 배웅하다가 눈물이 터지면 어쩌나, 내 눈물부터 봉쇄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며 김밥을 쌌다. 5살이 엄마를 떠나 자게 될 줄이야- 무섭다거나 가기 싫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는 두 아이들.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은 대견함이 밀려왔다.



9시 20분 평소처럼 등원을 시키고 엄마들이 하나둘 골목에 모였다. 버스에 짐을 싣는 걸 도와주기도 하고 아이들을 배웅해주기 위해서 기다렸는데, 어쩐지 그 시간도 길게 느껴졌다. 버스 타러 가는 사이 우는 아이는 없을지, 그러면 또 엄마들 마음이 안 좋은데 제발 모두 웃고 떠나기를 바랐다. 내가 제일 문제지만 말이다.



7살 첫째는 계속 들살이를 기다렸다. 몇 밤을 더 자면 그날이 오는지 매일 아침 물어봤고, 어디 가서 자고 오는 것 자체로 행복해했다. 그에 비해 둘째는 분명 원에서 들살이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아무런 말이 없었다. 들살이를 가는 걸 알고 있는 건지 물어보면 안다고는 했지만 아직 현실감이 없는 듯 가고 싶다 또는 가기 싫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다. 뭐, 안 가겠다고 말하는 아이는 없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울면서 못 간다고 하면 이 엄마 마음은 또 흔들렸을 텐데...



아이들은 어찌나 씩씩한지 들살이 노래를 부르며 손잡은 친구와 장난까지 쳐가면서 버스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아이의 가방을 전해줬는데 그걸 받는 아이는 쿨하게 엄마에게서 떠나갔다. 질척대면 서로 울까 봐 그래, 차라리 쿨한 게 낫다고 생각했다. 버스에 오른 아이들을 보러 엄마 아빠들이 올라가는 도중에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눈물을 꾹 참는 편이 아이에게 도움이 될 테니 나를 자극하는 행동은 자제한 채 조용히 배웅을 했다. 



아이가 떠난 텅 빈 집, 어지를 사람도 떠들고 우는 사람도 하루 동안 없으니 집이 허전하다. 아이는 놀다가 문득 엄마 아빠 생각을 할지 모르겠지만, 엄마인 나는 계속 아이들 생각뿐이다. 몸이 여기 있을 뿐 마음은 이미 아이 옆에서 자고 있다. 



들살이는 아이의 성취감을 높여주고 용기 주머니를 크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들살이는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까지도 성장하게 해주는 일이다. 우리 아이가 걱정되지만 결국 엄마, 아빠를 떠나 이렇게 하룻밤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 된다. 얼마나 기특하고 사랑스러운지- 아이를 애기로만 대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용기 있는 한 사람으로 봐주어야 할 만큼 큰 일을 해냈다. 헤어짐의 순간 눈물을 참느라 애쓰는 엄마보다 좋은 점들을 바라보고 가는 아이들이 더 낫다는 생각을 오늘 하루 종일 하게 되었다.

아이들 덕분에 오늘도 이 엄마는 조금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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