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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Oct 31. 2022

육아를 하며 별스럽게 집중하는 것

하나쯤은 다들 있으시죠?

아이를 가지기 시작하면서 육아서 읽기도 함께 진행되었다. 엄마 7년 차인 지금도 여전히 육아서를 많이 읽는 편이다. 초보 엄마의 불안함을 잠재울 수 있도록 도와준 것도 육아서였고, 내년 학부모를 앞둔 엄마의 마음을 채워주는 것도 육아서다. 신생아를 키우면서는 필수 책 <임신 육아 출산 대백과>를 매달 열어봤다. 생후 1년까지는 아이의 성장이 급격하게 일어나기에 지난 달과 이번 달 그 짧은 사이에도 아이는 달라졌고, 어떤 변화를 하는지 미리 알아둬야 마음이 든든했다. 아이는 이제 5살, 7살이 되었어도 여전히 나는 육아서를 본다. 책의 주제는 달라졌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공통된 관심사는 아이의 마음, 행복이다.



아이의 공부에 지금도 미래에도 매달릴 생각은 없다. 공부 또한 아이의 선택이라고 생각했고,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개인의 문제이지 부모라고 해서 여기가 좋다, 이걸 꼭 해야 한다-이러면서 끌고 다닐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왜 그렇게 방향을 정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공부가 곧 좋은 직업, 좋은 직업이 곧 잘 사는 인생, 잘나 보이는 인생이 곧 행복' 이런 공식이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부를 할 아이는 어떤 환경에서도 한다는 개똥철학도 한 몫했다. 



나는 그저 아이가 그 어디에서도 단단하게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늘 타인에게 맞추기보다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사회에서 이런 사람이 되는 일이 시험에서 문제 하나 더 맞추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든 목표인지 알기에 더욱 육아서를 보고,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고민이 되면 그에 맞는 책을 찾아본다. 몇 살에 이 학원을 가야 하고, 이 학원이 제일 잘 가르치고.. 공부와 관련된 일에 관심을 꺼둔 대신에 말이다. 애를 써가며 아이를 키우는 건 부모라면 당연하다. 나는 단지 공부보다 마음과 행복에 포커스를 맞춘 육아를 한다.



올해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옮기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는 육아를 참 별스럽게 한다고 여기겠다고 말이다. 일반 어린이집에 다니는 동안에도 아이는 참 잘 컸다. 돌이켜보면 그곳에 있으면서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우리만의 육아를 했다. 학습지, 미술, 태권도, 피아노, 공부방 등 친구들이 어린이집을 마치고 하나쯤 취미생활을 할 때도 우리는 집 앞 산책길을 걸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말을 몇 달간 아이가 했을 때 그제야 미술학원을 보내줬다. 학교 그림에 맞춰진 일반 미술학원 말고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선생님의 터치가 최대한 들어가지 않는 곳을 찾아서 말이다. 선생님들의 피드백은 3년 동안 아이가 친구를 잘 도와주고 해야하는 일을 잘해낸다는 말이었고, 누구보다 경쟁심에 불타 집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공부 비슷한 것들도 혼자 배우고 터득했다. 바르고 잘하고 싶은 아이의 성향은 사실 어느 곳에 있어도 드러났다.



그럼에도 어릴 때 아이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환경을 찾아 공동육아를 선택했다.

육아를 하며 별스럽게 집중하는 것 하나쯤은 다들 있지 않는가.





요즘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책 <본질 육아>를 보면서 몇 달 전부터 자기 전 루틴에 하나를 추가했다. 아이를 꼭 안아주면서 너의 존재가 무엇인지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너는 별이야. 엄마에게 와주서 늘 고마워.

오늘 아침에 잠이 안 깨기 힘들고 피곤하다고 했는데 어린이집에 씩씩하게 가는 모습을 보니 멋있더라.

많이 피곤했지? 수고 많았어."


"오늘도 너의 하루를 잘 지내고 다시 만나서 엄마는 너무 행복해.

우리 귀한 아들, 있는 그대로 사랑해. 

엄마가 많이 많이 사랑해."



나는 이런 말을 들어본 적도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연애 때야 했겠지만, 아마 남편에게 물어보면 그 말도 인색했다고 증언할 것이다. 애교라고는 없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해주고싶었다. 중독성이 짙은 엄마의 말에 아이들은 이 시간을 기다린다. 취침시간에 쫓겨 가끔 이 과정을 생략하면 항의가 들어온다.

"엄마. 오늘은 왜 안 안아줘? 사랑한다고 안 해줘?"

이 시간의 가치는 아이들이 더 잘 아는 듯하다.



어제 이 책을 쓰신 지나영 교수님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 자주 보는 영상에 나오는 분을 직접 본다니, 좋아하는 누군가를 보러 가는 마음에 떨리고 수줍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강의의 내용은 책 그리고 영상에서 계속 듣던 내용 그대로였다. 

"누군가에게 '너는 소중하다, 가치 있다, 귀한 사람이다.' 이런 말을 들어보신 분?"

나를 포함한 200명 이상의 사람들 중에 아무도 손을 들지 못했다.



나의 부모님은 나를 사랑한다. 물론이다. 부모님이 딸인 나를 귀한 사람이고 소중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나도 느끼고 있다. 허나, 말로 들어본 경험은 없는 것 같다 정말로. 말로 듣고 듣고 또 듣고 차고 넘쳐야 확신이 들기마련인데 그걸 가끔 느끼기만 하니까 의심이 들 때도 있고 불안하기도 하다. 아이일 때보다 지금은 덜하지만 그래도, 그 말을 듣고 자란 사람은 분명 삶이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아이들의 자살률이 얼마나 높은지 아세요? 현재 통계로도 다른 나라보다 몇 배 많죠. 그런데요, 대부분의 경우에는 사고로 처리돼요. 그렇게 묻히는 횟수를 배제하고도 우리는 자살률이 제일 높습니다. 어느 아파트에서는 동마다 그런 일이 벌어져요. 이제 그런 일은 그러려니.. 하는 일이 되었어요"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나는 10대의 상황을 알지 못한다.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가혹한 현실을 듣고 있자니 소름이 돋았다. 우리 아이가 커서 저런 상황에 놓인다면.. 그 아이들은 왜 그런 선택을 하는가.. 이제 갓 10년 넘게 살아온 아이들의 삶이 얼마나 버거웠기에...

주말에 있었던 대형사건으로 마음이 가라앉아있었는데 강의를 듣다 보니 사는 것이 무언지 생각이 깊어졌다.



아이의 행복.

내 아이와 옆집 아이, 같은 반 친구, 또래의 행복.



공부보다 행복, 마음에 집중했을 때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내 관심이 그쪽으로 가기에 선택했고, 남편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지금도 우리만의 육아를 하고 있다. 물론 화도 내고 야단도 치지만 '우리는 이렇게 너희를 생각해-우리는 이렇게 너희와 살고 싶어-' 이 마음을 전달하려 곳곳에 장치를 마련해둔다.



내 아이의 행복을 생각해서 들으러 간 강의에서 더 많은 아이들의 행복을 생각하게 되었다. 학교폭력, 왕따, 은따.. 내가 얕게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문제들에 처해있는 아이들은 모두 마음이 아픈 거라고. 그 존재를 안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밖의 생각까지 절로 들었다. 지나가다 마주치는 아이들에게 더 많이 웃어주고 한번이라도 더 멋있다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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