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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May 20. 2021

그저 사랑이 필요했을 뿐이야

아이도 어른도 사랑에 늘 목마르다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을 종종 본다. 티브이를 안방에 치우고서는 꾸준하게 보는 프로그램이 하나도 없지만, 육아 내용을 담고 있는 프로그램은 한 번 보기 시작하면 감정이 이입돼서 그런지 계속 눈길이 간다.



아이가 문제 행동을 한다면?

내 아이가 거칠어진다면?

심지어 욕을 하고 물건을 던지며 소리를 지른다면?



이 프로그램 영상 안의 아이들은 모두 어른의 관점에서 문제가 있는 아이들로 보인다. 우리 아이는 평범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육아를 하는 부모에게 아이의 평균 이상, 이하의 행동들은 버겁고 걱정되고 고쳐줘야 하는 것들로 단정 지어진다. 그 부분을 바로잡겠다고 건드리는 순간 상황이 더 악화되기도 하기에 혼자만의 힘으로 아이를 바로잡기에는 힘겨워보이는 엄마들이 많다.



나부터도 아이가 과격해지는 날이면 이 아이를 어떻게 눌러야 할까 잡아야 할까.. 두려운 적이 있다. 이대로 삐딱하게 크는 건 아닐지, 뭐가 불만이기에 어린아이가 이렇게 격해지는 건지... 그럴 때면 내가 잘못 키운 부분이 있는지 한숨을 쉬며 뒤를 돌아보기도 한다. 나는 한다고 하는데, 아이는 왜 내 마음을 몰라줄까 아이를 탓하기도 했다.



엄마에게 근심을 안겨준 금쪽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엄마가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엄마가 울기 전에 내가 먼저 그 마음이 느껴져서 울기도 하고, 저 아이를 어쩔까 내 아이처럼 진심으로 고민을 할 때도 있다. 말 그대로 출연자와 시청자인 내가 하나가 되어 그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꼭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몰입하게 된다.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요구하고 있어요





<금쪽같은 내 새끼>를 몇 편 보면서 공통점을 찾아냈다. 출현한 모든 아이들은 엄마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엄마로부터 사랑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은 그 마음을 삐뚤하고 폭력적인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오은영 박사님의 결론에 나 또한 너무 미안함을 느꼈다. 모든 엄마는 아이를 사랑한다. 이건 사실이다. 내가 10달을 품었고 힘들게 낳았고 산후우울증을 겪고 경력을 단절해가며 키운 내 아이다. 물론 힘들고 미울 때 있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이 크다.



문제는, 내식대로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에 있다. 아이가 원하는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고 싶은 사랑을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퍼붓고 있다는 것. 그것이 포인트라는 생각을 나 혼자만의 결론으로 내렸다.

그 제대로된 사랑 하나면 아이는 자리를 이탈하지 않는다.







부모 노릇이 참 어렵다고 생각하는 순간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하는 말과 행동은 전부 너를 위한 것이다. 아이에게 해가 되려고 움직이는 것보다 도와주려고 위해주려고 하는 것들이 비교되지 못할 만큼 많다. 그럼에도 부족하고 모자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내면 아이. 

그 말을 들을 때면 그냥 지나쳤었다. 평범하게 살았고 지금도 잘 살고 있는 내가 뒤를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건드려지는 부분이 나의 과거와 연관이 있다는데... 아이에게 화가 어느 부분에서든지 날 수 있지 뭘 그렇게 심각하게 내면 아이라는 단어로 들여다봐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엄마가 된 지 6년.

어쩌면 내 안에 남아있는 아이라는 존재를 마주치기 싫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난했던 과거 속에 내가 무언가 불행하고 결핍이 있었다면 우리 부모님이 나를 덜 돌봐주고 덜 사랑해줬다는 것과 같은 말 같아서.

얼마나 열심히 살아오신 지 아는데 그 모든 시간을 탓하는 말 같아서.


엄마가 아이를 무조건 사랑했어도 아이는 결핍이 있을 수 있고 그건 타인과의 관계에서 당연한 것인데, 나의 그 감정조차도 부모님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조금은 익숙해진 엄마라는 삶. 이제야 가지는 한 가지 육아의 절대적인 신념. 

많이 안아주기.

아주 많이 다정다감한 엄마는 아니기에... 말로 사랑을 표현하기에는 나조차도 한계가 느껴진다. 맘껏 칭찬해주고 격려하고 싶지만 그 한계점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게 포옹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 짜증이 날 때 그저 아이와 나의 입장을 바꿔 한 번 생각하려 한다. 

이도 저도 안되면 에라 모르겠다, 그냥 두 팔 벌려 안아주기.










그리고 또 하나. 나도 안아주기.

과거 속에 나는 인정이 늘 고팠던 아이였다. 평범이라는 건 어쩌면 애써서 얻어낸 잔잔함이 아닐까 싶다. 한 사람의 과거가 평범했다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 가족과 부모님 모두의 노력 덕분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첫째로 자라면서 혼자 책임감을 안았고 누가 뭐라 하지 않았지만 걱정 끼치지 않고 바르게 어른들의 기대와 생각대로 사는 것이 제일 편했다. 그러면서 원한 게 있었을 터. 

너는 참 착하다. 혼자 잘한다.

듣고 싶은 말이기도 듣기 싫은 말이기도 한 말들.

그 인정이 채워지지 않은 채 어른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내가 맘껏 하고픈 일을 하게 응원해주고, 가꿔주고, 선물도 해주고... 그거면 충분하다. 

어려도 어른이어도 늙어서도,

사랑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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