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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Jun 21. 2021

2021년 6월의 끝자락

올해하프 지점통과

나는 늘 연말, 내년 다이어리를 사는 것으로 새해 준비를 시작했다. 다이어리 속에 식구들의 생일, 친구들의 생일 등 매년 다를 바 없는 그 날짜를 표시하는 일을 12월이면 나는 의식처럼 했었다. 나만의 계획, 새해 목표가 하나쯤은 있어야 그럴듯할 텐데 아이를 낳고 집에만 있는 엄마가 뭐 그런 게 있을까. 그저 아이가 몇 개월인지 이유식은 언제쯤 뭘 먹여야 할지 얘는 언제 걸어 다니는 건지.. 개인적인 스케줄은 모두 아이의 세월에 맞춰져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매년 다이어리를 왜 샀을까. 계획할 거리도 없는 사람이.



작년 2020년, 터닝포인트의 한 해가 되고 나서 내년이 기대되었고 조금은 그럴싸한 계획을 하고 싶었다. 뭔가 끄적이고 있으니 옆으로 쓰윽 오는 남편.

"남편은 내년 계획이 뭐야?"

"내 계획? 이직?"

"이직? 이직을 하겠다고?"



뜬금없는 목표 발언에 진지한 대화가 오갔다. 평생직장이 없어진 이런 시대에 한 회사에 15년쯤 다녔으면 그래, 이직할 때가 되고도 남았겠지. 나도 회사 다닐 때, 진짜 가기 싫은 적도 때려치우고 싶은 적도 많았다. 꼴도 보기 싫은 사람 한두 명쯤은 꼭 있었고, 이 일을 내가 왜 하는지 의문을 품다가 포기하고 아무 생각 없이 회사를 다닌 시간도 있었다. 맞벌이도 아니고 외벌이로 혼자 우리 집의 수입을 책임지도 있으니 쉽게 그만둘 수는 없을 테고 나름의 시간을 버티고 있는 남편이 보였다. 그렇다면 내가 벌이를 해야 하는 걸까.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그 사람의 말을 모른 채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2021년 각자의 목표 하나씩을 세웠다.

남편의 목표는 이직.

나의 목표는 무엇이든 도전하기.



이제 6월의 마지막, 올해의 하프 지점을 지나고 있다. 그동안 남편은 새로운 직업에 필요한 강의를 밤마다 들으며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쌓고 있고, 나는 새로운 일에 계속 도전하고 있다. 여름 학기부터 문화센터 강의를 시작했고, 2번째 책을 계속 고민하고 있고, 모임을 이끌고 있고... 부지런히 글을 쓰며 나를 보고 그리 6개월을 지내고 있다.



내가 세운 올해의 계획에는 정확한 단어가 없었다. 무언가 되겠다고 선언하지 않았고 무엇을 하겠다 딱 하나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목표라 하면 무언가 단단하고 묵직한 결과를 불러와야 한다 생각했지만 그 개념을 없애고 나니 더 많은 시도와 도전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게 정말 무엇이든 내가 하고 싶고 나를 위한 것이라면 결과를 기대하며 예상하지 않고 그냥 그저 그렇게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나만의 세계를 더욱 구축하고 있다.



여름이 오는 길목, 새벽 5시 이른 해가 뜨는 이 시점. 거실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문을 열며 시작하는 하루. 하늘하늘 불어오는 바람에 잠을 깨우며 하루를 시작하며 산다. 

지금, 6월 21일 오후 12시.

쨍쨍한 바깥 풍경과 함께 눈에 들어오는 춤추는 나뭇잎들. 

이 시간이 새삼 여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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