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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Jul 03. 2020

나를 똑 닮은 너

아이의 모습에서 나의 어린 시절이 보인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오늘도 재미있게 잘 놀았어요. 밥도 2번이나 먹었지요^^"

하원 시간.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더니 선생님께서 아이 손을 잡고 나오며 이야기하셨다.

아이는 나를 보고 씨익 웃으며 신발을 신었다. 

"선생님한테 인사해야지. 인사드리고 가자"

아이는 나에게 쭈뼛쭈뼛 걸어오며 인사를 슬금 피하는 눈치였다.

아이의 반응을 알아챈 선생님이 먼저 인사를 건네셨다. 

"선생님이랑 하루 종일 잘 놀았는데 갑자기 왜 부끄러워해. 잘 가고 내일 또 재미있게 놀자~"

선생님과 아이는 눈인사를 하고 집으로 왔다.


아이는 약간의 낯가림과 부끄러움을 장착하고 있다. 어쩜 나의 어린 시절과 똑 닮았다.

엄마 말에 따르면, 부끄러움의 대명사였던 나는 인사를 제대로 못하는 아이. 앞에 나서서 이야기를 못하는 아이. 그런 아이였다.

"재롱잔치를 하면 어땠는지 알아? 부끄러워서 입술을 깨물고는 정면은 쳐다도 못 보고 바닥만 보면서 율동을 하더라니까. 처음부터 끝까지~딴 친구들은 엄마 찾느라 두리번거리고 이쁘게 율동 잘하는데 너는 어찌나 부끄러워하는지 말도 못 했어."


엄마의 이 이야기는 정말 100번도 더 들었다. 아니라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그 시절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어른이 된 나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활발하게 행동하고 싶지만 지독히 내성적이고, 수업시간 선생님이 나에게 질문할까 조마조마했고, 주변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면 얼굴부터 빨개지는 내가 엄마가 되었다. 그래서 아이는 나와 다른 성격이길 바랬다. 

조금은 활동적이고 누가 봐도 발랄하고 적당히 앞장도 서고. 그런 아이였으면 했었다. 

그 바람 자체가 아이를 향한 나의 욕심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말이 이런 걸까? 유전자의 힘은 컸다.

그 엄마의 그 딸. 아이의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난다. 하루 종일 재미있게 같이 놀았던 선생님께 인사하는 게 그렇게 힘들까?! 내 아이가 아닌 어린 시절 나에게 물어보고 싶다. 아니, 나 스스로에게 물어봐도 되겠다. 지금도 나는 그런 성격이니까.


"인사해야지." 이 말로 인해 집중되는 게 싫을 것이다. 그럼 그 말을 듣기 전에 하면 될 텐데^^


친정엄마가 아이 하원을 도와주신 적이 있었다. 볼 일을 보고 집으로 왔더니 아이와 놀던 친정엄마가 이야기하셨다.

"하원 버스 기다리는데, 유치원에 너 데리러 가던 때가 생각이 나더라. 너는 엄마 보면 멀뚱멀뚱했는데 얘는 할머니 하면서 달려오더라니까. 엄마 대신 내가 기다려서 혹시 실망할까 했는데 반가워하며 안겨서 심쿵했어. 너보다 낫다야."

큭큭.

그런 거였어? 나보다 나은 거였어???^^

친정엄마가 증명한 나보다 나은 아이. 이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아이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내 생각보다 아이는 잘하고 있구나'


나의 단점을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어느 부모나 있을 것이다. 나보다 잘 되기를 나보다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바람이니까. 

사실, 기준을 나에 맞추고 나보다 잘하라는 이야기는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의 기준은 그냥 그 아이 자신일 뿐. 그걸 알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아이 자체의 성격을 인정해주기까지도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부끄러워하는 아이의 모습까지도 그냥 흘려보낸다. 엄마 나이도 이렇게 쌓여간다.

엄마를 똑 닮은 그 모습까지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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