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실패는 부정적인 단어가 아닌 간절함이다.
“우리 딸은 그 흔한 사춘기도 없이 조용하게 지나갔어요. 지금까지 말썽 한 번 부린 적이 없다니까. 속 썩이는 일도 하나 없이 착하게 컸어요. 이런 딸이 어디 또 있을까 몰라”
자랑 섞인 엄마의 말을 듣고 나를 포함 듣는 사람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자란 착한 딸이었고 엄마는 그런 내가 자랑이었다. 나 또한 FM 장녀로 사는 게 마음 편했고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엄마에게 좋은 딸이라니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른의 평가 아래 살아가는 10대 시절, 부모님과 선생님이 쳐놓은 울타리 안에서만 맴도는 생활에서는 실패가 없다. 칭찬만 있을 뿐이다. 야단 맞지 않고 싫은 소리 듣지 않고 살 수 있는데 할 수만 있다면 평범하다는 말로 위로하며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딱히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도 없었고 좋아하는 일을 찾지도 못했지만 살아가는 데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꿈이 없어도 도전하지 않아도 시간은 흘러가고 그럭저럭 살 수 있으니까.
실패. 나는 내 인생의 어느 한 부분에도 실패의 기억이 없다. 항상 성공했다는 말이 아니라 내세울만한 도전을 해본 적이 없기에 실패의 경험도 없다. 무언가 시도를 해야 실패를 하든지 성공을 하는 것이다.
공부를 하긴 못했지만 어떤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공부를 한 적도 없고,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고싶어서 노력을 한 적도 없다. 그저 평범하게 뒤처지지만 않게 남들 학교 다닐 시간에 학교 다니고, 취직할 시기에 취직하고, 결혼할 시기에 결혼하고. 그것도 노력해서 얻은 것들이지만 더 높은 것에 도전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런 나에게 아이를 키우면서 느즈막히 사춘기가 찾아왔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는 막다른 길에 서있는 듯한 답답함과 무서움의 감정을 자주 느꼈다. 지금까지 나의 인생을 통틀어 그런 감정은 처음이었고 그런 상황도 처음이었다. 궁지에 몰리는 그 상황이 오고나서야 내 인생에서 그냥 흘러가버린 그 사춘기가 찾아왔다.
그 때, 나는 알았다.
‘여지껏 실패를 모르고 살아온 38년. 평범해서 좋다고 생각했던 내 인생. 어쩌면 그 자체가 실패다.’
10대는 반항을 해야 정상이다. 대부분이 겪는 것을 겪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비정상이라는 이야기다.
어른들의 생각에 반기를 들고 삐딱하게 대응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잡아나가는 시기를 겪는 것이 그 시절 내가 할 일이었다. 남이 만들어놓은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어서 미치도록 싸우고 시위하고 했어야 하는 시절을 그저 부모님 속 썩이기 싫어서 선생님에게 혼나기 싫어서 순응했다. 그 덕분에 마땅히 겪어야 할 사춘기는 그냥 지나가버렸고 엄마의 자랑이 되어버린 나의 온순한 사춘기 시절은 나 스스로에게 독이 된 시간이다. 맥없이 지나가버린 그 시간을 나는 애도한다.
‘실패’라는 단어는 부정적으로 쓰이지만 지금 나에게는 간절함으로 다가온다. 이제라도 나는 실패를 마음껏 해보려고 한다. 흘러버린 시간을 후회하기보다 앞으로의 나의 도전과 실패를 응원하며 성장하고싶다. 실패여부에 상관없이 도전하는 인생.
이제부터 내 인생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