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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Jul 12. 2021

엄마 믿고 따라와

내 안의 두려움을깨고 싶다

지난 주말, 아이들을 데리고 빙상장(스케이트장)에 갔다. 어디선가 유치원에 가는 나이가 되면 스케이트를 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고, 이곳이 더운 여름에 아이들과 가기 딱이다 싶었다. 4살인 둘째는 못 타더라도 6살 첫째는 탈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네 식구가 집 근처 스케이트장으로 출동을 했다. 


호기롭게 표 4장을 끊었다. 사실 나는 겁이 아주 많다. 몸으로 하는 건 걷는 것만 내 의지로 되는 말 그대로 몸치다. 막무가내 정신, 도전 정신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겁까지 많으니 내가 할 수 없고 해 본 적 없는 운동은 도전하고 싶지 않다. 특히 속도가 붙는 운동. 인라인, 스케이트, 번지점프 이런 건 상상해보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어쩌자고 스케이트화까지 빌렸을까.


남편과 큰 아이는 신이 났다. 6살 아이는 도전 정신이 아주 강하다. 몸을 늘 움직이는 편이고 자신이 달리기가 빠르고 힘이 세다는 것에 성취감을 느끼는 아이라 얼음 위에서 무언가를 탄다는 것에 기대를 가졌다. 표정에서부터 신이 나 있었다. 저렇게 좋을까. 


그에 비해 엄마인 나는 스케이트화를 신기조차 두려웠다. 

'이걸 신으면 빙상장에 들어가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벽을 잡고 이 넓은 곳을 한 바퀴 돌 수 있을까?'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이 나이에 벽을 잡고 이걸 꼭 타야 할까? '

'그러다 넘어지면 우스운 꼴이 되지 않을까?'

새로운 도전을 아이 덕분에 해본다며 신이 나서 가긴 했다. 그런데 막상 진짜 타야 할 시간이 되자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로 사로 잡혔다. 무섭기도 하고 웃음거리가 될까 남의 시선도 의식이 되고. 막 뒤죽박죽 두려움이 밀려왔다.

'내가 탈 수 있을까? 너무 무섭다.'

이 한마디에서 출발한 생각이 이걸 타지 않을 이유를 찾고 있었다. 그렇게 찾은 명확한 이유는 둘째. 둘째는 아직 스케이트를 탈 수 없으니 내가 밖에서 둘째와 놀겠다고 남편에게 계속 이야기를 했다. 할 수 없다는 듯이. 타고 싶지만 아이를 혼자 남겨둘 수는 없다면서.










아빠와 신나게 타고 온 아이는 이제는 엄마와 타고 싶다고 했다. 엄마랑 함께 타겠다는 아이. 사실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사실 조금 무서워. 어릴 때 타보고 안 타봤거든. 그래서 못 탈 것 같아. 그리고 아빠는 잘 타니까 너를 잡아줄 수 있는데 엄마는 너를 잡아줄 수가 없어. 아빠랑 그냥 타면 안 될까?"


내 몸 하나도 건사하지 못하는 얼음 위에서 넘어지는 아이를 잡아줄 수 없지 않은가. 위험한 공간이고 저곳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아이가 보이지 않을 게 분명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 넘어지지 않으려 온 힘을 다해 내 몸에 집중할 것이고 다리는 서 있으려 무던히도 애를 쓸 거다. 손은 벽을 꼭 잡느라 손에 쥐가 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이를 케어할 수 없지 않은가.


그 이야기를 하는 나 자신이 초라했다. 엄마도 사람이라 당연히 무서운 게 있지만, 해보지도 않고 겁을 먹어버린 내가 싫었다. 아이는 엄마 마음도 모른 채 옆에서 엄마도 할 수 있다며 독려를 하고 있고 남편도 한 번 해보라며 등을 떠밀고 있다. 

이렇게 그냥 집에 가면 한 발도 떼보지 못한 내가 한심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무섭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하나씩 깨보고 싶은 욕심도 계속 생겼다. 하지 못하겠다는 마음과 한 번 해보라는 마음. 이것도 못하냐는 질책과 막상 해보면 할 수 있다는 격려. 두 가지 마음이 2시간 동안 나를 괴롭혔다. 

두 사람의 설득과 내 마음속에 있던 오기가 합쳐져 나는 결국 스케이트화를 신고 있었다. 아이에게 엄마는 너를 잡아줄 수 없으니 조심해서 먼저 가라고 당부도 잊지 않았다. 아이는 엄마를 챙겨주겠다며 신이 났다. 자기만 따라오라고. 


30년 전에 타보고 처음 타 본 스케이트.

발이 쭉 밀려 몸을 가누지 못할까 봐 벽을 양손으로 부여잡고 옆으로 걸어 다니는 꼴. 어찌할 줄 몰라 웃음이 터졌고 남편은 그런 내 모습을 사진에 담느라 바빴다. 아이는 몇 번 타본 후라 손을 놓고 앞으로 나가는데 나는  입구에서 제자리걸음이었다. 너무 힘을 주고 걷는 바람에 시작하자마자 발가락에 쥐가 나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몇 걸음씩 가다가 결국 반 바퀴쯤 가면 나는 돌아올 수도 없다. 벽을 잡고 한 바퀴를 이윽고 돌아야 하는 상황. 


결국 나는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다시 간 길을 되돌아왔다. 아이는 내 뒤에서 엄마 어디 가냐고 얼른 오라고 소리를 쳤지만, 나는 스케이트장을 그대로 빠져나왔다. 몇 발자국 타보지도 못한 채. 


타본 게 어디야.

이렇게 겁이 나는데 시작해본 게 어디야.

그 생각으로 스스로 멈추고 나왔는데 집에 오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오기로라도 한 바퀴는 돌았어야 하는데 나는 뭐가 그렇게 두려울까.


내가 두려운 이유는 넘어지는 상황이 오고 창피할까 봐... 그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다칠까 겁이 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우스운 꼴이 될까 봐, 그게 무서웠다. 그래서 시작해보지도 않고 피하는 못난 겁쟁이를 스스로 선택했다. 


"저 사람들도 다 벽 잡고 넘어지며 타기 시작했을 텐데 왜 나는 그게 두려워서 시작도 못하는 걸까. 남편, 나 이 트라우마 같은 생각을 한 번쯤 깨 보고 싶어. 혼자 평일에 와서 한 바퀴 타볼까?"


글을 쓰는 지금도 진심으로 그래 볼까 싶다. 아이가 클수록 이런 상황이 더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경험을 아이에게 하게 해 주려면 늘 부모인 내가 함께 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못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겁이 많아서 타지 못한다는 핑계... 이 기회에 나도 이걸 한 번은 깨야하지 않을까. 그 스케이트가 뭐라고.



"엄마 오늘 혼자 스케이트 타고 왔어. 용기 내서 타보니까 되더라.?!

다음번에는 엄마가 너 잡아줄게. 엄마만 믿고 따라와" 

아이에게 이런 자랑을 할 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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