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앤딩 vs 새드앤딩
"이럴 거면 그냥 집에 가자"
또다시 나의 화를 내뱉었다. 결국 나는 참다 참다 이 말을 했고 순간 아차 싶었다. 0.0001초 만에 후회할 걸 꼭 말을 해야 할까. 일단 입을 닫았다.
아이들의 여름방학. 더구나 코로나까지 더해 갈 곳이 없다. 여름이면 계곡에 발 한 번 담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나는 아이들과 남편에게 시원한 곳에 가자고 통보를 했다. 아이들과 어딘가 다녀오면서 늘 이런 생각을 한다. '하루 종일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노는 게 제일이구나' 이걸 알면서도 자꾸 일을 만들어 집 밖을 나가는 나... 나는 왜 그러는 걸까.
계곡에 가서 몇 시간 놀다 오자!!
계곡에 놀러 가는 일에도 내가 챙겨야 할 짐들은 많다. 아이들의 젖은 옷을 넣어올 봉지 하나, 갈아입을 옷, 수건, 목마르면 마실 물이나 음료, 배고프면 먹을 과일이나 과자, 그늘이 없으면 쓸 모자, 휴지, 물티슈, 선크림, 튜브 등. 가져갈 것들을 생각나는 대로 챙기고 서둘러 밥을 먹었다. 배를 든든히 채워가야 햇빛 아래에서 지치지 않고 재미있게 놀 수 있다. 준비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아이들과 시원하게 놀 생각으로 신이 나서 집을 나섰다. 이 과정에서는 아이도 나도 모두 설렘이다. 늘 시작은 해피 그 자체다.
계곡에 도착해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물에 들어갔다. 아이들과 남편이 입수를 했으니 나도 발을 담그고 한숨 돌려볼까.. 했다. 이 여름에 발만 물에 담가도 시원하다며 하하호호 신이 났다. 작년에는 물이 무섭다며 나에게 안겨있던 둘째가 올해는 튜브도 타고 혼자 얕은 물에 용감히 들어간다. 미끄러질까 잡은 손도 놓으라는 아이를 보며 1살 더 컸네, 칭찬을 쏟아냈다.
물에 들어간 지 10분, 첫째가 더 재미있는 곳을 찾으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는 너무 얕아서 튜브를 타도 재미가 없어."
"우리 저쪽으로 더 가보자. 어떤 곳이 있는지 궁금해."
탐험심이 강한 아이. 자신에게 재미있는 곳을 찾아 이미 출발하는 아이. 일단 우리는 아이를 따라 이동했다. 조금 더 깊은 곳이 있는지, 튜브를 타도 엉덩이가 닿이지 않고 약간의 물살이 있는 곳이 있는지... 물에만 데려다 놓으면 좋다고 놀 줄 알았는데, 잔잔한 계곡물이 재미가 없었나 보다. 남편은 둘째의 손을 잡거나 안으면서 갔고, 나는 챙겨 온 짐들을 어깨에 메고 그늘과 햇빛을 번갈아 마주했다.
여기 좋겠다, 자리를 잡고도 아이는 그 장소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계곡을 끝까지 가볼 기세로 계속 이동을 하는 아이를 보면서 화가 조금씩 올라왔다. 그렇게 너의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다니느라 30분이 지났고 이곳에 온 지 1시간이 흘렀음에도 제대로 놀지 못하는 상황에 불만이 가득 쌓여만 갔다. 입에 맴도는 말들을 내뱉으면 아이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고 결국 내 기분도 더 나빠질 것 같아서 참고 있었는데...
"아빠, 나 힘들어. 이제 좀 안아줘"
계곡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아이의 한 마디에 내 입이 터져버렸다.
" 집에 가자 가. 그렇게 놀 거면 집에 가"
항상 그렇다. 아이를 좋은 곳에 데려가고 싶어서 가자고 한 것도 나. 여름인데 물놀이 한 번은 해야지 생각한 것도 나. 어디가 좋을지 검색해서 장소까지 결정하는 것도 나. '아이가 좋아하겠지?' 상상하는 것도 나. 구성과 각본까지 내가 짜 놓고, 아이가 좋아하지 않거나 별로라고 여기면 나는 왜 화가 나는지.
놀란 눈이 된 아이와 남편.
'내가 또 이러고 있네. 여기 네가 좋자고 왔냐? 아이들 좋으라고 데려왔는데 한 곳에서 놀던 돌아다니던 뭐 어때. 채아는 여기저기 뭐가 있나 구경하고 싶은 거잖아. 힘들 거 모르고 나왔니? 왜 괜히 애한테 짜증이야!'
맞다, 엄마인 내가 문제다. 아이를 위해 나온 건지 나를 위해 나온 건지 또 분간을 못한다.
엄마가 많이 이성적이지 못한 이 순간, 내 말에 아이가 시무룩해져 입이 나올까 눈물을 흘리며 좋은 기분을 망칠까... 또다시 착하고 감성적인 엄마로 변했다. 이때는 그냥 입을 닫는 게 최선이다. 말을 해봐야 날이 서있고 아이를 야단치고 모두의 나들이를 망치게 된다. 그러면서 또 나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경험. 무수히 해봤다. 이제는 안 하고 싶다.
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해지면 꼭 결과가 슬프다.
아이들과 기분 좋게 나가고 기분 좋게 귀가하는 것이 좋다. 그러려면 나의 불만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 아이는 우리가 다독일 수 있지만, 내가 화가 나면 다독일 사람이 없다. 이래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가지지 않아야 한다. 아이들과의 경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 추억만을 생각하면 된다. 아니다 이것도 욕심일지 모르겠다. 함께 있다는 것만 기억하면 되겠다.
단 하나의 바람도 욕심도 그곳, 그 시간에 넣지 말자.
나로 인해서 새드앤딩이 되게 만들지는 말자.
오늘도 입을 닫으며 엄마는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