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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Aug 18. 2021

엄마 나 낳을 때 아팠지? 미안해

엄마를 만나러 와줘서 고마워

4,5살쯤. 아이는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궁금해했다. 어린이집 남자 친구들의 고추가 왜 자신에게는 없는지, 나는 왜 서서 쉬를 하면 안 되는지... 원초적인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성교육 그림책도 많아서 같이 보며 주의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기도 하고, 신체부위에 대한 책으로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성교육이라는 것을 제대로 받아본 적 없고 여전히 그 부분은 남사스럽고 부끄러워하는 엄마지만, 할 건 해야 하는 세상이다. 아이들도 이 나이쯤 되면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게 조금 놀랍다. 



"누가 나를 낳았어?"

"엄마가 낳았지~"

"어떻게?"

"엄마 배에 있다가 아이가 나오는 좁은 통로가 있어. 그곳으로 쑤욱하고 나왔지"

"엄마 많이 아팠겠다"

"아프지~그렇지만 아이를 만나려면 당연히 겪어야 하는 일들이야. 

그 덕분에 우리 딸을 만났잖아. 

아픈 건 이미 다 잊었어"

"나는 결혼 안 해야겠어. 아이 낳는 게 아프니까"


5살 아이와 이런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 신기하기도 했다. 벌써 이렇게 큰 거야?

똑같은 질문을 몇 번을 반복해서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가 아팠다는 사실보다 자신은 아프고 싶지 않아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 그것이 결론이었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 첫째는 딸이었으면 하고 바라었다. 자녀계획은 두 명이었고 딸+아들 아니면 딸+딸 이렇게 아이를 낳고 싶었다. 이왕에 아들보다 딸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산부인과에서 태아의 성별이 딸이라는 힌트를 듣고 눈물 날만큼 기뻤다. 나도 드디어 딸을 낳는구나...


그런데 그 기쁨은 출산을 겪으며 딸을 향한 미안함으로 변했다. 이렇게 힘든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내 딸도 겪어야 하는구나... 아들이었다면 이 고통을 모르고 살 텐데 괜히 딸을 낳아서 이 아이를 힘들게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가 성인이 되는 20년 후에는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많을 테고, 결혼이 정말 개인의 선택이 될 것이고, 결혼을 한다고 해도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부부도 많은 세상으로 변해있을 거다. 그럼에도, 지금 보통사람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아이를 키우는 경험은 그 무엇보다 귀하기에 아이가 고민한다면 이런 삶을 선택하라고 나는 이야기할 것 같다.







"엄마, 나 낳을 때 아팠지?

미안해...."


이제 6살이 된 아이.

어제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이런 말을 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를 안아줬다. 그냥 낳아줘고 고맙다고 하면 그것으로 충분한데 더 나아가 사과까지 하는 건지, 당황스러웠다. 


이 아이를 만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해서 출산까지 총 40시간이 걸렸다. 막달 정기검진을 하러 갔다가 초음파상으로 양수가 줄어들고 있어 갑자기 입원을 했다. 바로 유도분만을 시작했고, 그 과정이 아이를 힘들게 해서 천천히 자극을 줘가며 출산을 진행했다. 아이는 아직 나올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밖에서는 억지로 아이를 나오라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 시간이 아이에게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버린 걸까? 

엄마가 신음소리를 내며 당장 수술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걸 들었을까? 

더는 못 견디겠다고 소리치는 걸 알고 있었을까?


정신없이 지나쳐버린 그 긴 시간. 나만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사실은 아이도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물어본 적은 없었지만 그 어떤 감정이라도 무의식으로 남아있을까 궁금했다.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금의 나처럼 고통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 낳을 때 당연히 아프지. 그런데 엄마 이미 다 잊었어.

이렇게 이쁜 딸을 만나려는 과정인데 당연히 견뎌야지.

다 괜찮아, 그러니까 울지 마.


그리고 태어날 때 너도 힘들었을 거야.

좁은 길을 잘 통과해서 엄마를 만나러 와줘서 고마워. 

엄마는 채아를 만나서 너무 행복해, 진짜야"


우는 아이를 끌어안고 고마움을 전했다. 엄마의 이 말을 기억해둘까? 아마 몇 번 더 이런 말을 아이가 할 것 같다. 그때마다 나는 똑같이 이야기해줄 것이다. 나를 만나러 와줘서 고맙다고, 너 덕분에 행복하다고. 먼 훗날 내가 없는 상황에서도 언제나 아이가 기억할 수 있게.










울다가 훌쩍이며 잔 딸이 조금 있다가 깨서 나오면 꽈악 안아줘야겠다. 아무렇지 않게 굿모닝을 외치며, 엄마가 너무나도 사랑한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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