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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Sep 15. 2021

세상이 원하는 스펙이 없어도

시간투자와 결과는 비례하지 않는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자유로이 키우는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아이 때문에 고민을 할지 몰랐어요.

어릴 때는 먹이고 입히고 사랑만 주면 됐는데

이제는 진로문제로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어느 방향이다 결정해줄 수도 없고...

지금이 제일 힘들어요.


내가 이런 시기가 있을 줄 진짜 몰랐어요"



그분을 보며 아이와 나를 어쩜 저렇게 분리해서 생각하실까 감탄했다. '너는 너의 일 나는 나의 일' 이 개념이 뚜렷한 분이라 아이들도 자신의 할 일을 잘하는 걸 알고 있었다. 아이가 자신의 것을 챙기지 못해도 그 영역은 엄마인 내 것이 아니라 아이의 것이라고 하는 모습이 참 멋있어 보였다. 나도 그러고 싶은 엄마니까.



그런 분이 아이가 진로를 걱정하는 시기를 맞이하고 함께 힘들어하셨다. 나는 겪어보지 못했지만, 아이의 고민이 무거워지면 그대로 엄마에게 전달되는 건 당연한 일. 아이 인생에 제일 첫 큰 고비. 그 앞에서 가지도 오지도 못하고.. 한 걸음을 옳기는 것조차 무거운 시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처럼 보였다. 



지금 내 아이는 4살, 6살.

그분의 말씀대로 지금이 제일 좋은 때일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점차 커갈수록 몸은 편해지지만, 정신적으로 힘들어진다는 말이 조금 실감 나기도 하는 요즘이다. 나는 중학생, 고등학생이 된 아이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그 생각이 들면서 나는 10대 후반에 어떤 생각을 했었나... 되짚어봤다. 그 시절과 지금의 10대는 또 다르겠지만.







요령 없던 내가 우리 아이에게 하고픈 말.



엄마는, 학생이었을 때 제시간에 등교하고 야간 자율학습까지 꽉꽉 채워 책상에 앉아 공부를 했어.

그것도 모자라 독서실도 다녔고, 학원도 다녔지.

어쩔 때는 내가 제일 늦게 독서실을 빠져나오면서 기분이 좋기도 했어.


그런데 말이야...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다고 해서 성적이 잘 나오는 건 아니더라고.

내가 시간을 많이 투자한다고 무조건 그걸 잘하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공부에 재능이 없었나 봐. 요령도 없고...

그 대신 엉덩이 힘이나 꾸준함은 있었던 것 같아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네가 하고 싶다면 모르겠지만, 하기 싫은데 억지로 책을 부여잡고 책상 앞에 앉아있지 않아도 돼.

그 시간을 성적으로 보상받으려고 너무 애쓰지 마. 

성적이 못 나온다고 해서 너무 주눅 들지도 마.

공부를 재능으로 타고나는 아이는 1%밖에 없을 테니까.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 하나 해줄까?

네가 지금 하는 진로의 고민은 이 순간뿐만 아니라 나이 40이 되어도 여전히 하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고 3 때 내 인생이 결정되는 것처럼 굴지 않았으면 좋겠어.

20살 인생에 가장 큰 고비이고 내 미래가 걸린 결정을 하는 순간인 건 맞지만

그것이 인생의 실패와 성공과 아무 상관없다는 걸 이야기해주고 싶어.

지금 답처럼 찾고 있는 대학 전공으로 먹고사는 사람도 거의 없어.


고민이 조금 가벼워졌을까?


엄마도 좋은 대학 나오지 않았고,  전공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을 하며 살고 있어.

그렇다고... 네가 볼 때 엄마가 불행해 보여?

네가 지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이루지 못했어도

엄마는 너무 잘 살고 있어.


세상이 원하는 그런 스펙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걸 하고 싶은지 그걸 알고 살아가는 게 훨씬 중요해.

그것에 우리 시간과 돈을 투자하자.

엄마는 그러고 싶어.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좋은 대학을 가든 못가든

그런 기준 말고 우리만의 룰을 만들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엄마는 너를 언제나 있는 힘껏 응원해





내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공부를 못한다고 기죽어 살지는 않았다. 남들의 시선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괜찮았다. 성적과 대학이 성인 이후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그건 상위 클래스가 아닌 다음에는 다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흔히 '사'짜 직업을 가지려고 한다면 성적이 뒤따라와야겠지만, 그것 말고는 나이가 들어서도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 



그 말에 힘을 실어주려면 내가 나의 삶을 더 충실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그랬던 사람이 나니까. 성적이 좋지 않아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걸 아이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다. 그러면 많은 말도 필요 없이 흔들리더라도.. 결국 우리는 이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어떤 직업을 해라, 연관 짓지 말고 결론을 내주지 말고... 그냥 하게 해주는 부모.

나는 그런 엄마로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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