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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Nov 05. 2021

가을, 색이 진해진다

나뭇잎이 물드는 장면, 그거 보는 재미로 살아요

가을, 낙엽비가 내린다.

요즘 무슨 재미로 사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단번에 대답할 수 있다.

"나뭇잎이 물드는 장면. 그거 보는 재미로 살아요"



이곳에 5년째 살고 있는데 이렇게 유심히 그리고 감탄하며 가을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집 앞을 나서면 바로 보이는 나무들이 서서히 머리 꼭대기부터 빨갛게 변하고, 분명 어제는 초록이었는데 오늘은 미세하게 노란 향을 풍기기 시작한다. 멀리서 쳐다보면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 명확한 색부터 그 색들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갈색, 노르스름한 색, 붉으스름한 색... 몇 가지 색이 한 나무에 매달려있는지 셀 수가 없을 정도이다.



예전에는 단풍구경을 어디로 가야 할까 고민을 했지, 집 앞에 늘 보던 풍경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나무가 가득한 곳, 유명한 곳. 그런 곳을 가야 가을답게 구경했다고 느껴졌었는데 코로나 이후에 움직임이 없어서일까, 단풍구경을 가더라도 뒷산 정도가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멀리 가서 길 막히고 사람에 치일 필요 없이. 

아-어쩌면 늙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진짜 나무가 요즘 이쁘다 그렇지? 

저 나무 좀 봐봐, 언제 붉게 변했대?!

이제 나뭇잎들이 많이 떨어졌네..."

등원하는 길, 나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이 나무 저 나무 상황을 읊어주느라 바쁘다. 그에 비해 아이들은 별 감흥이 없다. 그저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옆에 산처럼 쌓여있는 낙엽을 어떻게 하면 밟고 지나갈 수 있을까... 그것만 관심이 있다. 아주머니 몰래 낙엽산을 밟고 발을 비비고 바스락 소리를 듣는 그 재미가 이 가을, 아이들을 채워주고 있다.






하원하고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사이,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을 쳐다본다. 어쩜 그렇게 잎들이 제각각 다른 색들인지.. 비슷비슷해 보여도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마치 우리의 생김새처럼.



낙엽을 하나하나 주워 색들을 만져보며 줄을 세워본다. 연한 것부터 진한 순서대로 말이다. 엄마가 쭈그려 앉아 한동안 일어나지 않으니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한 아이들이 달려온다. 나만의 놀이를 방해할까 아니면 함께 하자고 할까 아이들의 반응이 예상되지 않았는데, 힐긋 보더니 두 녀석은 다시 그네로 가버린다. 



그렇게 가을 오후, 잠깐의 시간 동안 아이들의 놀이와 어른의 놀이가 각각 어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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