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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Mar 26. 2017

#10 그곳에선 당신도 한류스타

콜롬비아 메데진(Medellin).이피알레스(Ipiales)

2016년 1월 4일

봄의 도시에 웬 폭풍우가..

메데진은 콜롬비아 중에서도 부유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편이라고 한다. 나도 여행 중 처음으로 사치 좀 부려보려고 안토니오 박물관 옆 카페에 앉았다. 까페 보떼로($11,000. 무려 4500원)를 시켰다. 야외 테라스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너무 달다 생각하며 먹고 있는데 갑자기 폭풍우가 휘몰아쳤다. 그냥 폭풍우가 아니다. 카페 문을 뚫고 비바람이 세차게 들어왔다. 문을 닫았는데 쾅콰콱 소리에 놀라서 돌아보니 바람의 힘에 문이 열릴 정도였다. 카페 안에 갇혀서 한동안 멍하니 또 창 밖을 바라봤다.

메트로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 호스텔이 있는 뽀블라도 역에 내리니 비가 더 세차게 오고 있었다. 역사 계단에 앉아 잠시 창 밖을 바라봤다. 역의 동편과 서편을 왔다 갔다, 우산 없이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나만 이런 게 아니다. 다들 집에는 가야겠는데 우산은 없고, 비는 엄청 쏟아지기에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계산 들어간다! 뛰어가면 숙소까지 5분이다. 그래. 우산 따윈 필요 없다. 난 젊으니까! 비가 아무리 세찬들 까짓 거 맞으면 그만이다. 머릿속에 이상은의 언젠가는 이 BGM으로 흘러나온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숙소까지 비를 맞으며 뛰어가는데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내가 젊다는 것이 감사하고 비 맞을 자유가 있는 것이 감사했다. 그리고 그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 감사했다. 급하게 뛰다 보니 쪼리가 벗겨졌다. 반대방향에서 걸어오던 콜롬비아 소녀가 내 속도에 놀라 "꺅!!" 소리를 지르길래 나도 "꺅!!" 했다. 소녀가 먼저 씩, 하고 웃었다. 나도 덩달아 씩, 웃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예요?라고 누가 물으면 나는 이 날 콜롬비아 메데진에서 비 맞은 기억을 떠올린다.


2016년 1월 5일

젊은 동양 노숙자

메데진을 떠나 이피알레스로 가려는데 알고 보니 직행 버스는 금요일에만 있다고 한다.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의 국경 도시인 이피알레스까지 가려면 중간에 '칼리'를 경유해야 한다. (메데진 - 깔리 - 이피알레스) 칼리 행 밤 버스를 탔는데 왜 영화를 틀고 음악을 틀어 주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니 버스는 안데스 어딘가를 달리고 있고 풍경은 장관이다. 갑자기 옅은 두통이 시작되었다. 설마 또 체했나?

메데진 터미널에서 만난 장난꾸러기 아이들. 이 애들하고는 간단한 스페인어로 소통이 된다. 날 보고 계속 드래곤볼, 드래곤볼 한다. 얘들아 난 일본인이 아니라니까!
콜롬비아 길거리 음식 중 가장 좋았던 빤제로띠. 빵 안에 치즈와 소세지가 듬뿍 들어가 있다.

깔리에 도착 하자마자 이피알레스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 버스는 마을버스 사이즈 밖에 안 된다. 한참 가고 있는데 밖에서 무슨 축제가 진행 중이었다. 창밖에서 버스 안쪽으로 크림 무스를 뿌리기도 하고, 물대포를 끼얹기도 한다. 사람들은 창문 안으로 들어온 물을 맞고는 막 좋아한다. 난 덕분에 단잠을 깼지만 입이 떡 벌어지는 거대한 안데스와 마주할 수 있었다. 그렇게 23시간의 대장정을 거쳐 드디어 국경도시 이피알레스에 도착했다. 도착 시간은 저녁 10시. 잘 곳은 없고 몸살 기운은 점점 더 심해졌다. 터미널 밖을 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여긴 콜롬비아니까. 선택의 여지없이 터미널에서 노숙하기로 결정했다. 몸이 버틸 수 있을까?

얼마나 초췌했는지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깔깔이와 패딩을 껴 입고도 밤새 너무 추워 잠을 제대로 못잤다. 컨디션은 최악이 됐다.
이피알레스 터미널. 다행히 나만 노숙하는 건 아니길래 안심? 하고 벤치에 누워 잠을 잤다.

아침 7시, 이곳이 바로 고산 지대였던가! 자는 내내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뉴욕에서도 노숙해 보고 공항 노숙도 많이 했지만 이번 여행 중 가장 힘든 노숙이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라스 라하스(Las lajas) 성당으로 향했다. 콜롬비아에서 에콰도르로 넘어갈 때 꼭 들려야 하는 필수코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성당을 지어 놓았다던데 그 모습이 궁금했다. 터미널에 짐 맡기는데 2000페소, 콜렉티보는 편도 2000페소가 들었다.


2016년 1월 6일

깔깔이는 사랑입니다

콜렉티보에서 내리면 있는 언덕길을 쭉 따라가니 성당이 나왔다. 이 성당은 입구 직전까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깎아지른 절벽만 계속된다. 뭐야 여기?

그러다 갑자기 정말 '짠!' 하고 성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 아픈 몸을 이끌고 오기를 잘 했다. 사진으로 보면 규모가 별로 안 커 보이는데 실제로 보면 아치형 다리에 입이 쩍 벌어진다. 이런 협곡에 저런 거대한 다리와 성당을 짓다니. 근데 여기 오면 확실히 연예인이 된 기분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동양인은 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다들 나랑 사진 찍자고 난리다. 사실 내 패션은.. 너무 아픈 나머지 패딩 위에 깔깔이를 입고 있었는데.. 그랬는데...

돌아가는 길에 머리가 너무 깨질 것 같고 토할 것 같아서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옆에 콜롬비아 애가 쑥 앉더니 사진을 찍자고 한다. 내 심신은 죽겠으나 한국의 이미지를 위해 한껏 웃고 찍어주었다. 물론 사진 속 깔깔이 패션으로 말이다. 심지어 머리도 이틀 못 감아서 떡진 상태였다.

Soy Coreano! (한국사람이야.) 도 잊지 않고 말해주었다. 멀리 콜롬비아에서도 한류를 알리는 일에 앞장섰다는 이 뿌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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