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대가리 Mar 28. 2017

#11 여기가 유럽이야 남미야?

에콰도르 - 키토 (Quito)

나라 이름 뜻이 '적도'인 나라. 근데 생각보다 덥진 않았던 나라. 엄청난 인플레이션으로 자국 화폐를 버리고 달러를 쓰는 나라. 남미 중에서는 치안이 괜찮은 나라. 볼리비아와 함께 헌법으로 원주민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남미에서 몇 안 되는 나라. 중남미 여행 세 번째 국가, 에콰도르다.


2016년 1월 6일

국경에서 만난 인연

이피알레스를 지나 콜롬비아에서 에콰도르로 국경을 넘었다. 처음 넘어보는 육로 국경에 겁이 났다. 원래 국경 주변은 강도도 많고 빡세다던데 짐 검사도 안 했다. 콜롬비아에서 도장받고 에콰도르에서 도장받으니 끝이다. 콜롬비아에서 넘어와 에콰도르의 수도인 키토까지 가려면 '툴칸'이라는 도시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 툴칸까지는 택시로 금방 간다. 멕시코 툴룸에서 바가지 당한 이후로 택시는 안 타야지 생각했는데 이 국경도시에서는 이동수단이 택시밖에 없었다.

다리 하나 건너면 바로 에콰도르다. 신기하다. 육로로 넘는 국경은 처음이다. 우리나라는 반도가 아니라 섬이었구나! 기분이 묘하다.

배낭여행객으로 보이는 남미 사람이 스페인어로 택시기사와 '뚤깐' 어쩌고 저쩌고 하길래 "나도 거기 가요!"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택시 같이 타고 가자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 콜롬비아 친구의 이름은 후안. 중남미에서 '철수'같은 이름이다. 아무 계획도, 정보도 없이 키토에 가려했었는데 이 친구를 만난 덕분에 키토 호스텔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었다. 키토까지 가는 버스는 5시간이 걸렸다. 콜롬비아 막판에 걸린 몸살 때문에 아파서 내내 갤갤대니까 고산병인 것 같다고 후안이 알려줬다. 단순한 감기몸살이 아니라 고산병이었구나! 키토에 도착하거든 아무것도 안 하고 쉴 생각이었다. (신기하게도 바뇨스는 키토보다 고도가 낮아서 그런지 바뇨스에 도착하고 얼마 안 있다가 몸살 증세가 싹 사라졌다. 고산병의 특효약은 '저지대로 이동한다' 라던데 정말인가 보다.)


5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했다. 보통은 졸업 후 일을 하지만 이 친구는 먼저 컴퓨터 업계에서 일을 하다 보니 대학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컴퓨터과학을 전공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정 반대의 삶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여행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자동차로 미국을 횡단한 경험담을 이야기해줄 때는 나도 마치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후안과 함께 저녁으로 햄버거를 먹었다. 근데 고기에서 비린내가 심하다. 양고기 특유의 비린내가 소고기에서도 난다. 반 밖에 못 먹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비린내를 잡아주기 위해 살사 소스가 있는 거라고 한다. 그것도 모르고 난 감자튀김을 살사에 찍어먹었다. 여기 감자튀김은 정말 '감자' 튀김이다. 개인적으로는 감자'튀김'을 더 선호하는 싼 입맛을 갖고 있다.

마침 에콰도르에서 일하는 친구와 함께 쿠엔카로 여행 가려던 참이었다는 후안. 그 친구가 키토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이렇게 인연이 닿았다. 호스텔 존까지 직접 안내해 주고는 자기가 묵었던 호스텔을 추천해 준 후안. 역시! 콜롬비아 사람들은 정말 사랑이다.


키토에서 3일 동안 '문도' 뭐시기 호스텔에 묵었다. 호스텔 로비에서 '마얀'이라는 이스라엘 친구를 만났다. 또 다른 서양 남자 여행자와 술에 거나하게 취해 돌아와서는, 빨간 얼굴로 반갑게 인사해준다. 어쩐지 쏘쿨 해 보이는 이 여자애랑 내일 하루 키토 시내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2016년 1월 7일

어디서 쿨내 안 나요?

마얀과 함께하는 키토 콜로니얼 시가지 구경! 버스는 매우 붐비니 택시를 타고 가자고 쿨하게 제안하니까 거절할 수가 없었다. 키토는 굳이 설명하자면 멕시코 산크리스토발데라스카사스와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합쳐놓은 느낌이다. 언덕 위에 색색깔의 건물들을 많이 지어놓았다는 소리다. 동시에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웅장하고 거대한 성당들이 도심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남미와 유럽의 느낌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매력 넘치는 도시이다. 사실 키토는 별 기대 안 하고 그냥 쉬려고 들른 도시인데, 눈이 즐거웠다. 다만 고산지대인데다가 언덕길이 대부분이어서 오르는 내내 숨이 차고, 버스가 엄청나게 새까만 매연을 마구 뿜어댄다.

"어이구어이구, 내가 찍혔어? 미안미안~"

키토의 랜드마크 '천사상'이 있는 곳까지 택시를 타고 올라갔다. 천사상 앞에서 짧게 나눈 대화에서도 쿨내가 풍풍 풀긴다.

마얀 : 안에 들어가서 볼래, 아님 밖에서 둘러볼까?

나 : 음... (1초)

마얀 : 밖에서 보자.

나 : 그래!

마얀의 이런 쿨한 성격이 너무 좋다.

아마도, 천사를 표현하고 싶었겠지.
커버사진 뒤편에 보이는 그 성당이다. 가까이서 보니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사진 속에 있는 시계탑을 바라보며 마얀 왈 "돈 줘도 저긴 안 올라갈래."


정감 가는 나라, 에콰도르

호스텔 근처로 돌아와 마얀이 추천한 식당으로 갔다. 오늘 투어는 오로지 마얀의, 마얀에 의한, 마얀을 위한(그렇지만 나에게도 좋은) 투어이다. 이 식당, '오늘의 메뉴'를 겨우 2.5불에 먹을 수 있다. 닭발이 들어간 닭죽 맛 나는 수프 + 미트볼 + 밥 + 라즈베리 주스를 겨우 2.5달러에! 이런 미친 물가. 단 하루 만에 에콰도르와 사랑에 빠질 듯하다. 밥 먹고 돌아와서 낮잠까지 늘어지게 자고 나서는 할 일이 없었다. 호스텔 직원 유리와 놀았다. 맛있는 과일을 추천해달라고 하니 애플망고가 괜찮다며 같이 마트에 가자고 했다. 굉장히 짧은 내 스페인어와 마찬가지로 짧은 유리의 영어로 꽁냥꽁냥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말이 잘 통하는 게 신기할 정도다. 유리와 이렇게 친해지고 말을 틀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이모를 닮은 그녀의 친숙한 비주얼 때문인 듯하다. 3일 머무는 동안 늘 호스텔 1층, 같은자리에 앉아 멍 때리고, 일기 쓰고, 정보 검색하고 했는데 그때마다 친절하게 도와주었던 유리 이모.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밤에는 살사 클럽에 가자는 마얀의 제안에 따라 동네 클럽에 가봤다. 한국에서도 클럽 한 번 안 가봤는데 남미에서 또 가게 될 줄이야. 하지만 역시 내 스타일은 아니다. 워낙 몸치인 데다 소심해서 여자들에게 잘 못 다가간다. 마얀은 살사를 아주 기막히게 춘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어떤 흑인분이 다가오더니 "코카인 할래?"라고 넌지시 물어봤다. 1초 정도 호기심이 생겼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여기는 해외니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더 몸조심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10 그곳에선 당신도 한류스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