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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Nov 02. 2019

하고 싶은 일이 딱히 없어 회사에 들어왔습니다.

마케팅 부서 사람들이 모인 회식 자리에서 평소 말할 기회가 없던 다른 팀 부장님 앞에 앉게 되었다. 부장님은 신입사원에게 물었다.

“원희 씨는 하고 싶은 일이 뭐였어요?"


20대 초중반은 매일이 불안했다. 가슴 뛰는 일을 찾아 모두가 부러워하는 인생을 살겠다고 다짐했는데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는데서 오는 불안이었다. 점수 맞추어 들어온 공대에서 순전한 열정을 쏟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은 영 없어 보였다.


사실이 그랬다. 출석 빠지지 않고, 교수님 강의 열심히 받아 적고, 기한 맞게 과제해서 내고, 중간/기말고사 때 바짝 공부하면 학점은 잘 나왔다. 반면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고 느낀 이유는 첫째, 엔지니어 특유의 인사이트가 없었다. 회로 수업을 들으면 회로의 전류며 전압, 저항 흐름 등이 한눈에 들어오는 소수의 천재들이 있다. 나는 그런 천리안 따위 없었기에 적당히 학점 받으려면 예제 하나라도 더 꼼꼼하게 보고, 천리안을 가진 동기에게 붙어 이것저것 물어봐야 했다. 회로뿐만 아니라 전력, 반도체, 통신, 코딩 등 모든 수업에서 중간 이상은 갔지만 두각을 나타내는 건 하나도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4년 동안 들은 전공 수업 중 B+이하는 없지만 A+은 1개밖에 없는 그런 학점이다. (그 한 개는 프로젝트/과제 없이 중간/기말로 전부 평가하는 수업이었다.)

둘째, 재미가 없었다. 코딩을 잘했던 친구는 밤새 막혔던 프로그램 코드가 엔터와 함께 깔끔하게 돌아가는 순간이 짜릿하다고 했다. 나는 그 순간이 허무했다. 이거 하나 보자고 생고생하며 모니터와 싸웠던 것인가!

전공과목에서 주어지는 팀 프로젝트도 그랬다. 많은 팀원들이 도저히 보이지 않는 솔루션을 찾아 고민하며 헤매는 동안, 나는 함께하지 못했다.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도저히 능력을 따라갈 수 없었다. 민폐가 될 순 없었기에 내용을 팔로우업 하고, ppt제작과 발표를 주로 맡아했다. 공학 지식을 써먹는 것보다 그 지식을 활용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이 훨씬 재미있었다. 이때 확실히 느꼈다. 나는 공학으로 밥 벌어먹고 살진 못하겠구나.


그래서 나는 학교 밖에서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애썼다. 공대 직무를 살려 일하면 재미없어서 못 견딜 것 같았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선택해 인정받고, 그것이 지금까지 바라 온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었으면 했다.



남들과 다른 20대를 살고 싶다며 이것저것 다 손 뻗치다가 제대로 된 결과물 하나 없이 스무 살을 흘려보냈던 그 친구는 팔 년이 지난 지금, 남들과 다른 비범한 삶을 살고 있을까?


가슴 뛰는 일을 찾겠다며 전역하자마자 쉼 없이 영어공부를 했던 스물세 살의 그 친구는 오 년이 지난 지금, 가슴 뛰는 일을 찾았을까?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며 휴학하고 패스트푸드 알바로 돈을 모아 교환학생을 다녀온 스물네 살의 그 친구는 사 년이 지난 지금, 그 넓은 세상 속에서 패티 굽는 일 말고,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았을까?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겠으니 이대로 사회에 나가기는 싫다며 취업준비를 미루고 스페인어를 공부했던 스물여섯 살의 그 친구는 이년이 지난 지금, 하고 싶은 일을 찾았을까?


그토록 바라던 남미에 왔어도 여전히 ‘직업화’된 꿈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스물일곱의 그 친구는 일 년이 지난 지금, 가슴 뛰는 일을 자신의 직업으로 만들었을까?


“가슴 뛰는 일”을 찾는 것이 20대 청춘의 목표였다면, 스물여덟의 나는 이룬 것이 하나도 없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은 길었으나 이렇다 할 결과물은 없었다. 딱히 하고 싶은 것은 못 찾았으나 더 이상 손가락 빨고 살아갈 순 없었기에 취업준비를 했고 회사원이 되었다. 스무 살까지 한 살 한 살 복기하며 올라갔을 때 위의 질문에 단 하나도 자신 있게 Yes 할 수 없었다.



부장님이 물었다.

“원희 씨는 하고 싶은 일이 뭐였어요?”

“하고 싶은 일이 딱히 없어서 회사에 들어왔죠.”

“나도 그랬어. 원래 하고 싶은 거 없는 사람들이 회사 들어오는 거야.”


회사원이라는 직업, 지금 회사에서 하는 일이 그토록 찾던 “가슴 뛰는 일”은 아니다. 그런 일이 세상에 반드시 존재할 거라는 믿음은 여전하며, 그것을 찾기 위해 삶을 노력하는 일은 멈출 생각이 없다. 다만, 예전처럼 그 일을 반드시 20대 젊은 나이에 찾아서 출근이 막 기다려질 정도로 일이 좋아 행복한 삶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이란 것은 늘 변하거니와, 그것이 변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감사하다. 현실이 어쨌든 간에 가슴속에 여전히 꿈을 간직하며 살아간다는 반증이니까.


이런 깨달음이 있고 나서, 더 이상 20대 초중반 때처럼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 불안하지는 않다. 적어도 나는 스스로 후회 없을 만큼의 다양한 경험을 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배웠고, 그 고민의 끝이 우선은 취업이었으니까. 그래서일까. 회사에서 암만 야근이 잦고, 고객사의 갑질과 몰려드는 업무에 스트레스를 받아도 불평할 수 없다. 고심 끝에 선택한 나의 길이고, 그 책임도 전적으로 내가 지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하는 B2B 영업 일이 “가슴 뛰는 일”이냐? 는 질문에는 결고 yes 할 수 없지만, 취업준비생 시절 회사와 직무를 알아볼 때 “가장 가고 싶은 회사, 가장 하고 싶은 일이었냐?”라는 질문에는 yes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날이 내 인생에 다시는 없을까봐, 그건 좀 두렵다

하고 싶은 일이 딱히 없었다, 라는 나의 답변에는 거짓이 없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하고 싶은 일을 찾아봐야지. 그것도 안 된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일로 만들려는 시도 정도는 해 봐야겠지.


월급날이 딱히 기다려지지 않는 걸 보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게 아직 돈이나 명예는 아닌 것 같다. 다행인 것은, 고심해서 선택한 회사이고 직무인 만큼 적어도 “방향”은 맞게 가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 확신이 있으면 당분간은 버틸 수 있다.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힘은 이런 종류의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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