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 멕시코시티 (Mexico city)
미국에서 멕시코로 이동하는 비행기 안. 곳곳에서 스페인어 소리가 들린다. 있는 돈 없는 돈, 장학금 박박 긁어모아 다녀온 미국에서 4달의 교환학생 라이프를 끝내고 새로운 곳으로 가고 있다. 예전부터 꿈꾸어 온 남미다. 왜 남미를 가고 싶어 했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군생활 시절, 전역하면 꼭 해외 배낭여행을 해야지 생각했다. 아마 내 또래들이 많이 가는 유럽이 너무 흔해서 좀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었을게다. 그게 라틴아메리카였다.
알아들을 수 있는 스페인어라곤 '무쵸, 그라시아스, 티에네스, 구스타'.. 한 학기 동안 한 스페인어 공부가 무색해진다. 멕시코시티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곳에서 환전을 했다. 근데 조금 걸어가 보니 달러당 1페소를 더 쳐주는 곳이 수두룩했다. 초반부터 약 17000원 손해 봤다. 여행 첫 수업료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여행기 제목처럼 나는 '가난한' 대학생이다. 교환학생을 가고 싶어서, 남미를 가고 싶어서 (그리고 전공 공부가 하기 싫어서) 한 학기 휴학하고 미친 듯이 돈을 모았다. 매일 아침 7시부터 패스트푸드점을 뛰었다. 최저시급이었지만 많이 근로하면 주휴수당과 각종 휴가비를 꼭 붙여줘서 그런대로 괜찮았다. 저녁에는 과외를 3개 했다. 이렇게 하니 월 200 정도가 모였다. 부모님의 도움은 받고 싶지 않았다. 말일이 되면 치킨 한 마리 사달라 하기 눈치 보이는 집안의 도움을 받자니 나는 이미 스물다섯이었다.
그래서 여행 내내 유독 '돈'에 민감했다. 애초의 여행 콘셉트가 그랬다. 여행책에 나온 비싼 맛집이 아닌 저렴한 현지식 위주의 식사, 호텔은 꿈도 못 꾸고 6인 도미토리면 감지덕지인 숙박. (여행 중 최고는 20인 도미토리였다. 생각보다 상당히 재밌다.) 돈이 없어서 아쉬웠다거나 불평한 적은 여행 내내 한 번도 없다. 돈은 없지만 그런대로 라틴아메리카에 와 있는 나 자체가 행복이었다.
공항에서 소깔로 까지 가는 길을 몰라서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짧은 스페인어로
"Quiero ir al Zocalo." (소깔로 어떻게 가요?)
라고 무작정 여쭈어봤다. 그랬더니 영어로 친절하게 대답해 주시면서 따라오라고 하셨다. 게다가 메트로까지 공짜로 찍어주셨다. 이름이 '사라'다. 목적지에 데려다주시고는 헤어질 땐 "Welcome to Mexico!" 까지 잊지 않으신다. 라틴 사람들은 유쾌하다던데 정말인가 보다. 시작부터 느낌이 좋다.
메트로 창 밖으로 정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멕시코시티가 워낙 치안이 무섭다길래 여행 첫날에는 몸을 좀 사렸는지, 남아있는 사진이 몇 없다.
어린애들은 나에게 "아리가또!" 혹은 "니하오!"라며 수줍게 인사를 건넨다. 아마 당신도 라틴아메리카에 가면 쓰게 될 첫마디, 아이들에게 웃으며 톡 쏘아붙였다.
Soy coreano! (나 한국인이거든?!)
100배 즐기기 지도를 봐 가며 겨우 찾아온 숙소, Mundo Hostel. 로비에서 바로 한국인을 만났다. 멕시코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여행 중이라고 한다. 내가 "스페인어 잘 하시겠네요?"라고 질문하니
"미국에서 교환학생이었다고 하셨죠? 영어 잘 하세요?"
"아.. 확 와 닿네요."
숙박비로 200페소(약 14000원)를 냈는데, 이 누나가 ISIC(국제학생증) 할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30페소 할인을 받아 170페소에 하룻밤을 묵을 수 있다. 그러고는 또 다른 한국분 두 명이 오셔서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
사실 저게 멕시코에서 처음 먹은 타코는 아니다. 숙소에 오기 전에 길거리에서 7페소 (약 500원)짜리 타코를 하나 사 먹었다. 또띠야가 얇아서 2장을 주는데, 그 두장에 고기를 넣고 양념을 넣어 먹는 거다. 근데 나는 어떻게 먹는지 몰라서 고기를 두 번에 나누어서 각각 또띠야 1개에 싸 먹었다. 길거리 음식이라 탈이 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저녁 늦게 반응이 왔다.
멕시코시티의 거리는 알려진 것만큼 위험하진 않았다. 오히려 큰길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위험하다. 아차 하는 사이, 소지품이 바로 털릴 수 있다. '생각보다' 안전하다는 사실에 방심해서는 안 된다. 해가 저문 뒤에는 혼자 돌아다녀서는 안 되고, 골목길은 절대 출입 금지다. 호스텔에서 첫날부터 칼빵 맞을 뻔하고 다 털려 돌아온 서양 사람들이 있었다.
같이 밥을 먹은 한국 분들, 만나고 헤어짐에 상당히 쿨하다. 여행 1일 차인 나와는 다르게 인연이 되면 또 만나겠지, 생각하며 연연해하지 않는 모습이 '내가 정말 지구 반대편에 와 있구나'를 실감하게 했다. 타코를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어찌 영 상태가 좋지 않다. 이거 분명 감기몸살 아니면 체한 건데.. 아까 먹은 길거리 타코가 잘못된 건지, 아니면 어제 교환학생 친구들과 송별 파티하면서 먹은 라지 사이즈 피자가 얹힌 건지 모르겠다.
결국 먹은 것들을 싹 게워내고 배탈약을 먹고 나서야 두통이 조금 가라앉았다. 여행 첫날부터 몸이 만신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