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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May 01. 2017

#28 우유니에서 설날을

볼리비아 - 우유니(Uyuni)

2월 8일 월요일

새벽 2시다. 찬 공기를 맞으며 호스텔을 나왔다. 다행히 비는 그쳤다. 다만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우기에 우유니를 오면 낮에는 예쁘지만 밤이 아쉽다. 다들 눈이 절반은 감긴 채 약속 장소에 모였다. 가이드만 빼고. 가이드는 두시 반이 넘어서야 도착했다. 이분도 뭔가 피곤해 보였다. 보조석에 앉았던 종덕이형의 증언에 의하면 우유니까지 가는 포장도로에서 계속 졸았다고 한다. 하마터면 다 죽을 뻔했는데 헤이, 왓썹 맨, 아유 슬리피? 하우 올드 아유 등 억지로 말을 걸어준 형 덕분에 우리 모두 살았다.     

우유니에 도착했지만 비가 계속 내렸다. 구름도 걷힐 생각을 안 한다. 결국 지프차 안에서 다 같이 잠에 들었다. 두 시간 가량 잤을까? 멀리서 동이 텄다. 그 순간부터 해가 뜰 때까지 우유니는 환상적이다. 이때 뜬 해는 마침 음력 1월 1일의 해였다. 우리의 모습을 거울처럼 정확히 반사하는 우유니를 배경으로 각자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새해 인사 겸 동영상 촬영을 했다.

     

덕 : 우유니 동영상 촬영 시작됐습니다.

수 : 새해 복 많...

덕 : 저 가면 같이해요. 저도 껴주세요! (셔터를 누르고 달려온다.)

수 : 같이 할까요? 두 손 번쩍 들어서. 하나, 둘, 셋

다 같이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수 : 와, 우유니다! 2016년 새해를 우유니에서 맞는다!

진 : 엄마 떡국 먹고 싶어요.

수 : 갑자기 배고프잖아!

미 : 갑자기 슬퍼져.. 엄마 보고 싶다.

수 : 엄마 사랑해! OO아 사랑해, XX야 사랑해!     

미 : 난 잘 지내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


진 : 여러분 안녕 여긴 우유니야. 친구들아 잠수 타서 미안해. 가서 연락할게.

희 : 기념품 없어요 친구들!

다 함께 : 맞아 나두나두. 나두 없어.

덕 : 몸만 갈게, 몸만.

미 : 엄마 생일 축하해! 오늘 엄마 생일이야 얘들아.

다 함께 : 오, 생일 축하드려요!

수 : 오겡끼데스까?

미 : 뭔가 낭만적인데?     


다시 우유니 마을로 돌아왔다. 강형은 내가 투어 다녀온 사이 날씨가 맑아지기를 기다리며 쉬고 계셨다. 형과 아쉬운 이별을 했다. 형과 너무 재밌게 할 말 다 한 것 같아서 그런가 저번만큼 아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보면 밥 사달라고 졸라야겠다. 열두 시에 투어를 같이 한 7명이 모여서 밥 먹으러 가기로 했다.

오전에 잠시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라파즈에서 동행한 동현이 일행을 만났다. 동현이는 ‘엔살라다’라는 음식을 들고 있었다. 맛있어 보이길래 동현이가 알려준 대로 찾아가봤다. 모둠 과일 위에 아이스크림을 얹어서 파는데 6 볼 (1000 원) 밖에 안 한다. 한국에서 이 후식이 나오면 아마 4-5천 원은 할 거다.


점심에 7명이 모여 시장을 갔다. 내부 식당들이 대게 별로다. 대신 안으로 들어가서 식당을 지나 뒷문으로 나가면 Milanesa를 파는 노점상들이 있다. 밀라네사는 돈가스처럼 얇은 패티에 계란을 입혀 튀긴 음식으로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여기서는 밥+면+야채+감자튀김+밀라네사가 8 볼(1500원)밖에 안 한다. 다 같이 그릇을 싹싹 비워냈다. 후식으로 내가 먼저 먹어본 엔살라다를 추천했고 다 같이 그 가게로 갔다.     

주인 아주머니가 나를 먼저 알아보셨다. “또 왔네요?”

“안녕하세요! 친구들 7명이나 데리고 왔어요. 좀만 깎아주세요.”라고 정겹게 여쭈었다. 깎아 주시진 않았지만 워낙 인심이 좋은지라 아까보다 더 푸짐하게 과일을 주셨다. 다들 엔살라다를 받아 들고는 “깎으면 안 되는 가격이었네”라고 했다. 우유니에 오면 꼭 먹어야 되는 음식 인증이다. 이 가게가 좋았는지 형, 누나들은 아주머니랑 같이 사진도 찍었다. 그러고는 당근, 사과, 바나나 등 각종 주스를 하나씩 사서 마셨다.     


배를 채운 뒤에는 사진을 옮기기 위해 컴퓨터가 있는 상점으로 갔다.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웬 개들이 다가오길래 쓰다듬어줬더니 내 발을 베고 잠에 들었다. 개들도 씨에스타를 하는 이 곳, 볼리비아다.               


라파즈 가는 버스 터미널에서

좁고 허름한 터미널은 꽤 많은 사람들로 붐벼있었다. 나는 몇 없는 동양 여행자여서 눈에 띄었다. 버스 시간이 애매해서 시장통에서 볶음밥을 포장해왔다. 터미널 사람들 틈에 앉아 먹고 있는데 문득 이 여행이 끝나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오늘도 한국분들과 헤어지고 텅 빈 방에 혼자 남았을 때 다시 밀려오는 피할 수 없는 외로움과 대면해야 했다. 모두 나가고 조용해진 호스텔에 잠시 앉아 있다 터미널로 향했다. 오래도록 머릿속에 붙잡아두고 싶은 이 기억을 가지고서 비 내리는 우유니 시장을 혼자 걸었다.

이런 감정들이 앞으로도 숱하게 찾아오겠지? 나이가 들면 언젠가는 초연해져서 이별도 그냥 그대로, 특별한 의미 없이 문자 그대로 ‘이별’을 받아들이는 때가 올 수도 있겠다. 근데 그때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나고 헤어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되는 그런 때 말이다. 여행 초반에만 해도 만남과 헤어짐에 대해 쿨해지는 성숙을 기대했는데 이제는 그 반대가 되었나 보다.

  


이후의 일정은 간단하다. 우유니에서 라파즈 8시간, 라파즈에서 아리카 12시간, 아리카에서 타크나 2시간, 타크나에서 리마 20시간, 약 40-43시간의 버스 강행군을 했다. 엄청 피곤하다거나 하진 않았다. 이젠 버스도 하나의 내 집 같으니까. 몸이 찌뿌둥하고 면역력이 약해진 것 같은 기분은 든다. 그래도 경비를 많이 아껴서 뿌듯했다.

리마에 도착해서는 출국 전 2박 3일 동안 남은 돈으로 기념품도 사고, 먹고 싶은 것도 많이 먹었다. 안전한 동네 미라플로레스에서 도심 투어도 하고, 백화점도 다녀왔다. 뭘 사진 않았지만 구경만으로도 재밌었다. 그리고 무사히 미국, 교환학생으로 있었던 애리조나로 돌아가 케빈이를 만났다. 교환학생 기간 중 친해진 케빈이 덕분에 그 집에 짐도 맡기고 남미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마추픽추가 그려진 Peru 스타벅스 텀블러를 주었는데 엄청 좋아했다. 이 친구가 빌려준 가벼운 패딩이 아니었으면 난 아마 남미에서 얼어 죽었을 거다.     


마지막으로 추억이 담긴 인앤아웃에서 더블더블 버거를 먹었다. 딸기 셰이크도 먹었다. 원래 케빈네 집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새벽 6시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눈을 뜨니 새벽 6시였다. 부랴부랴 짐 싸서 케빈이 차를 타고 공항에 갔지만 역시나. 비행기는 이미 출발했다.

남미에서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했기에 미국 도착하자마자 긴장이 풀어졌나보다. 어떻게 비행기를 놓칠 수 있지? 내가 생각해도 정말 바보 같다. 한국에 있는 누나에게 급히 전화해서 도움을 요청하니 쌍욕을 바가지로 한다. 옆에 엄마 아빠가 욕하는 목소리도 들리는데 좀 무서웠다. 욕이 마칠 때까지 잠시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사람의 성격이 드러난다는데 나는 역시, 천하태평형이다. 비행기를 놓쳤지만 뭐 별 수 있겠어? 이미 놓친 것을. 여행사에서 싼 값에 비슷한 표를 알아봐 줄 거야. 정 안되면.. 친구들한테 비행기 값 빌려서 한국 돌아가자마자 알바 열나게 해서 값던가 해야지 이런 생각이었다. 다행히 취소 수수료 3만 원만 물고 여행사에서 2일 후 동일한 항공편을 잡아주었다. 이런 내 생각을 아빠에게 말했더니 다시 한번 수화기 너머로 쌍욕이 날아왔다.

미안해요, 근데 이런 아들인 걸 어쩌겠어!


아무튼. 가난한 대학생의 첫 남미 여행기는 이렇게 끝난다. 언젠가 두 번째 남미 여행기를 쓸 날이 오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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