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꿈.
시작은 꿈이었다. 막연하게 남미에 가고 싶다는 꿈을 꿨다. 어릴 적 틀린그림찾기에 나오던 마추픽추를 비롯한 각종 유적지와 피라미드를 세운 라틴아메리카의 고대 문명들을 동경했다. 그 마음 하나로 스페인어를 배웠다. 비행기 티켓을 충동적으로 끊기 전까지는 진짜 다녀올 줄 몰랐다.
여행 중에도 꿈이었다. 요즘처럼 연휴 직후에 전공 시험을 보거나 각종 프로젝트가 쌓이는 시즌이면 더더욱 그 시절이 꿈처럼 느껴진다. 가끔은 내가 진짜 거기 다녀왔었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글을 쓰는 동안에도 꿈이었다. 적성 맞지 않는 전공 공부를 막학기가 되어서야 미련 없이 버려가며 글쓰기에 매달렸다. 여행 내내 행복했듯이 글을 쓰는 내내 행복했다. 브런치에 글 하나를 올리고 나서도 빨리 다음 편을 올리고 싶어, 글을 쓸 생각만 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까맣게 탄 피부, 두 달 동안 자르지 않은 수염, 덥수룩한 머리, 현지인의 옷차림, 꾀죄죄한 비니, 볼 품 없는 배낭, 곰팡이 핀 보조 배낭. 이런 흔적은 이제 나를 떠났다. 피부는 다시 하얗게 돌아왔고 매일매일 면도도 하며 헤어스타일은 유행을 따르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라틴의 DNA는 지금도 내 몸속을 흐른다. 아마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러 돈과 시간이 모두 많은 나이가 될 때 즈음, 남미를 다시 여행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때는 스물다섯의 가난한 대학생이 그랬던 것처럼 야간 버스를 타며 도시를 이동하는 강행군은 불가능하겠지. 오히려 비행기를 타고 각 도시를 다닐만한 충분한 경비가 있을 거다. 그때는 경비 아끼려고 시장 밥만 먹을 필요도 없겠지. 오히려 건강상의 이유로 그 비싼 한식을 자주 먹게 될 거다. 그때는 잘 알려지지 않고 치안이 불안한 도시에 객기로 돌아다닐 수 없겠지. 내 삶에 너무나 많은 사람과 책임이 얽혀 있을 테니까. 그때는 10인이 넘어가는 도미토리에서 자는 건 꿈도 못 꾸겠지. 젊은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패기는 남아 있으려나? 아니, 페루에서 만난 그 아저씨처럼 나도 “요즘 젊은이들은 말이야”로 대화를 시작하는 꼰대가 되어있지는 않을까?
그때 가는 남미도 분명 다른 종류의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하지만 내 인생을 변화시킨 전환점이 되었던 스물다섯의 남미만큼 행복할지는 모르겠다. 남미가 가난한 대학생에게 가르쳐 준 가장 큰 교훈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 잃을 것도 없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때
라는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