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오랜만입니다. 그 사이 새해가 왔고 최저임금이 올랐습니다. 아르바이트로 먹고사는 저에게 기쁜 소식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기사를 보니 이제는 알바시장도 혹한기를 넘어 빙하기라고 하네요. 임금이 올랐기에 인건비를 줄여야 이익이 남겠죠. 고용주들 입장에서는 사람을 줄이는 게 당연해 보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작품은 30년 전에 나왔지만 2018년에도 동일한 울림을 주는 연작소설입니다. 바로 어느 필독도서 목록을 봐도 껴있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입니다. 저는 이 책을 중3 때 처음 만났습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받은 방학 과제의 필독서 중 하나였어요. 배치고사 시험 범위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보통 학교에서 읽으라 하는 소설은 고등학생이 이해하기 힘들어 대충 읽고 넘기곤 하죠. 저도 시험을 위해 읽었지만 꽤 재밌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실 그 뒤로 ‘난쏘공’을 생각하면 동일한 제목을 가진 ‘더크로스’의 노래가 먼저 생각났습니다.
아주 작은 공을 가졌던 나의 아버지는 난장이. 저 하늘을 보시며 내게 말씀하셨죠. Look at that shining sky my son, 닿을 수 없어 보여도. 먼 훗날 언젠가 모두 서로 같아질 테니.
소설을 읽은 후 저 노래는 제 18번 중 하나가 됐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슬펐습니다. 열일곱 살의 저에게 불평등은 와 닿지 않았습니다. 모두 학원을 한두 개씩 다닐 때, 독서실에 만족해야 했던 상황을 떠올리면 가난하다는 생각은 종종 들었습니다. 다만 다른 집 아이들과 비교하며 부모님을 원망할 만큼 사춘기가 깊게 오진 않았거든요. 소설 속 ‘윤호’는 부잣집 자식입니다. 가난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었습니다. 일례로 윤호가 재수하면서 받았던 국영수 고급 과외는 과목당 월 20만 원이었는데요. 소설 속 난장이가 평생 걸쳐 지은 집이 헐리면서 입주권을 넘겨주었던 가격이 겨우 25만 원이었습니다.
윤호에게는 대학에 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재수생은 그때까지 불공평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빈곤을 뜻하는 Poverty도 시사용어로만 이해했었다. 그래서 Poverty하면 Population과 Pollution이 동시에 떠오르고 이것을 잊지 않기 위해 3P로 암기했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그룹 교실에서 가르치는 것이 이런 것들이었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죽였다.
저는 20대에 접어들면서 ‘가난’과 ‘불평등’의 개념을 조금씩 느꼈습니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편의점에서 주말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성인이 되면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목표였거든요. 당시 최저시급이 4,110원이었는데 밤샘 근무를 하며 세 달 동안 3600원을 받았습니다. 수습기간이 끝나니 4,100원을 받았습니다. 방학 때는 할만했습니다. 동네 편의점이라 야간에 오는 손님도 별로 없었고, 새벽 시간대에 엎드려서 잠에 빠지는 정도는 사장님도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학기가 시작되자 공부와 아르바이트, 인간관계를 병행하기 힘들었습니다. 동기들이 모두 떠난 금요일 밤의 MT도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가지 못했습니다. 학교 축제가 한창이던 5월도 즐기지 못했습니다. 다른 과 주점에 간다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저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 했었습니다. 주말 내내 뼈 빠지게 일해서 나온 돈으로 한 달을 버텼습니다. 일이 끝나면 피곤했지만 조금 자고 일어나서 퀴즈와 시험공부, 쌓인 과제를 해야 했습니다.
부모님은 이런 제 모습을 안타까워했지만, 별 수 없었습니다. 경제적인 지원이 어려웠거든요. 토요일 새벽 5시 반. 첫차를 타고 병원으로 출근하는 엄마는 제가 일하던 편의점에 들렀습니다. 컵라면과 김밥이라도 먹으라며
2000원을 주고 가곤 했습니다.
대학생활 내내 저는 아르바이트와 함께 했습니다. 저보다 더 많은 경험자분들이 계실 것을 알기에, 무슨 알바를 해봤다며 자랑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자취방의 월세를 내고, 버스비, 핸드폰 요금을 내고 나면 밥 먹기도 빠듯했습니다. 학생회관 2500원짜리 메뉴와 라면을 번갈아 가면서 먹어야 했습니다. 친구들은 학생회관 밥은 맛이 없다며 나가서 먹자고 했습니다. 저는 공부하느라 바쁘다는 둥 여러 핑계를 대며 빠졌습니다. 돈이 없었거든요. 가끔 모임에 가도 나는 이미 밥을 먹고 왔다며, 주린 배를 참고 먹는 것을 지켜봐야만 한 적도 있습니다.
어떤 친구는 아버지 회사에서 등록금을 내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곧 은퇴해서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아르바이트 한 번 하지 않고 편하게 학교에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들을 원망했습니다. 너희가 나처럼 살아봐라, 좋은 부모님 만난 줄 알아라, 속으로 비교하곤 했습니다.
‘너희 집은 은퇴해도 부모님이 축적해둔 재산이 있겠지. 적어도 서울 시내 아파트에 사는 중산층이니까. 우리 아버지는 정기적으로 받는 일감도 없다고. 부모님 소득을 합쳐봐야 월평균 200이 안 돼. 만 오천 원 하는 치킨을 시켜달라고 할 때마다 월급날에 사주겠다며 미안해하는 부모님을 보는 모습이 얼마나 비참한지 알기나 하니.’
난장이의 삶은 처참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은 고스란히 그 자녀들에게 이어졌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숭고함도 없었고, 구원도 있을 리 없었다. 고통만 있었다. 나는 형이 조판한 노비 매매 문서를 본 적이 있다. 확실히 아버지만 고생을 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들이 전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첫 번째 싸움에서 져버렸다.
우리는 출생부터 달랐다. 나의 첫 울음은 비명으로 들렸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나의 첫 호흡이 지옥의 불길처럼 뜨거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모태에서 충분한 영양을 보급받지 못했다. 그의 출생은 따뜻한 것이었다. 나의 첫 호흡은 상처난 곳에 산을 흘려넣는 아픔이었지만, 그의 첫 호흡은 편안하고 달콤한 것이었다. 성장 기반도 달랐다. 그에게는 선택할 것이 너무 많았다. 나나 두 오빠는 주어지는 것 이외의 것을 가져본 경험이 없다. 어머니는 주머니가 없는 옷을 우리들에게 입혔다. 그는 자라면서 더욱 강해졌지만 우리는 자라면서 반대로 약해졌다.
윤호는 부유한 집안의 자녀이지만 난장이 식구의 삶을 목격한 뒤로 현실의 부조리에 눈을 뜨게 됩니다. 난장이의 세 자녀가 일하는 ‘은강 방직’ 공장주의 손녀인 경애는 윤호를 좋아합니다. 윤호는 경애에게 난장이의 삶을 통해 나타난 불합리한 세상을 가르쳐 줍니다.
“난장이 아저씨가 누군지 난 몰라.”
“은강방직은?”
“그럴 줄 알았어.”
경애가 말했다.
“할아버지 회사야.”
“할아버진 뭘 갖고 있었니?”
“많은 회사, 많은 공장, 아름다운 섬, 근교의 농장, 풀장, 홈바, 에스컬레이터를 갖춘 저택, 많은 기계, 많은 차, 많은 젖소 ...” (중략)
"너의 잠자리는 늘 따뜻했지? 오십년생 굴피나무까지 얼어터지게 한 지난 겨울, 네 방의 온도는 몇 도였지?“
“몰라.”
“넌 겨울에도 반팔 옷을 입고 살았지? 목욕을 하고 싶으면 언제나 네 방에 딸린 목욕탕에서 목욕을 할 수 있었지? 너는 잠을 자다 춥고 배고파 깨본 적이 없지? 그런데 은강방직 공장에 나가는 난장이 아저씨의 딸은 어땠는지 아니?”
“몰라."
“공장 식당에서 보리가 더 많은 밥에 신 김치, 무청을 말려 끓인 시레기국을 먹고 살았어. 기숙사 방안 온도는 영하 삼 도였다구. 그 나쁜 식사를 하고, 그 무서운 잠자리에서 눈을 붙이며 난장이 아저씨의 딸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아니?”
“몰라.”
“값싼 기계 취급을 받았어, 인간이.”
이 외에도 ‘난쏘공’에는 세상의 부조리를 기막히게 그려내는 장면이 많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모르는 것이 많았다. 사장에게는 다행한 일이었다. 그 집 식구들은 정원 잔디를 기계로 밀어서 깎았다. 그 집 정원에서는 손질이 잘된 나무들이 밝은 햇빛을 받아 무럭무럭 자랐다. 그 집 나무들은 ‘나무종합병원’에서 나온 나무 의사들이 돌보았다. 나도 나무병원 앞을 지나가본 적이 있다. 간판에 ‘귀댁의 나무는 건강합니까?’라고 씌어져 있었다. 그 밑에는 작은 글씨로 ‘병충해 구제 진단. 생리적 피해 진단. 외과 수술. 건강 유지 관리’라고 씌어져 있었다. 함께 지나던 어린 조역이 말했다. “우리집에는 나무가 없습니다. 나는 건강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배를 잡고 웃었다. 무엇이 그렇게 우스웠는지 모른다. 어린 조역은 그때 거의 날마다 코피를 흘렸다.
형은 점심을 굶었다. 점심 시간이 삼십 분밖에 안 되었다. 우리는 한 공장에서 일했지만 격리된 생활을 했다. 노동자들 모두가 격리된 상태에서 일만 했다. (중략) 우리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했다. 공장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원하기만 했다. 탁한 공기와 소음 속에서 밤중까지 일을 했다. 물론 우리가 금방 죽어가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작업 환경의 악조건과 흘린 땀에 못 미치는 보수가 우리의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그래서 자랄 나이에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발육 부조 현상을 우리는 나타냈다. 회사 사람들과 우리의 이해는 늘 상반되었다. 사장은 종종 불황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와 그의 참모들은 우리에게 쓰는 여러 형태의 억압을 감추기 위해 불황이라는 말을 이용하고는 했다. 그렇지 않을 때는 힘껏 일한 다음 노-사가 공평이 나누어 갖게 될 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희망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를 주지 못했다. 우리는 그 희망 대신 간이 알맞은 무말랭이가 우리의 공장 식탁에 오르기를 더 원했다. 변화는 없었다. 나빠질 뿐이었다. 한 해에 두 번 있던 승급이 한 번으로 줄었다. 야간 작업 수당도 많이 줄었다. 노동자들도 줄였다. 일 양은 많아지고, 작업 시간은 늘었다. (중략) 공장 규모는 반대로 커갔다. 활판 윤전기를 들여오고, 자동 접지 기계를 들여오고, 옵셋 윤전기를 들여왔다. 사장은 회사가 당면한 위기를 말했다. 적대 회사들과의 경쟁에서 지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말이었다. 사장과 그의 참모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제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저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있는 대학생들이 훨씬 많을 겁니다. 어쩌면 저는 나은 편에 속할 정도로요. 게다가 소설의 배경인 70년대 노동자들보다 제 삶이 더 힘들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책을 읽으니 마음이 더 무거워졌습니다. 내가 소설책 한 권 읽었다고 한들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978년 난쏘공의 1쇄가 찍힌 이후로 30년, 2007년 9월, 백만 부 발간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었습니다. 사회 또한 많은 진보가 있었습니다. 경제는 성장했고, 굶주리는 사람의 비율은 극히 낮아졌습니다. 그러나 불평등과 착취에 기반한 세상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 소설의 내용은 고스란히 2018년에 적용 가능합니다.
지도교수님과 면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졸업 후 계획을 묻는 교수님의 질문에 아직 아무 계획이 없다고 답하니 “너희 집 부자니?”라고 했습니다. “아뇨, 저희 집 가난해요.” 그러자 교수님은 집이 가난하면 마냥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 없으니 부모님을 생각하라며 훈계했습니다. 네가 일을 하지 않아도 부모님이 괜찮은 수준이냐며 나무랐습니다.
면담 이후, 우리 집이 조금 더 돈이 있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악착같이 살지 않아도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었을까 라는 쓸데없는 가정을 해보게 됐습니다.
윤호의 가정교사이자 난장이의 가족을 윤호에게 알게 해 준 '지섭'은 난장이와의 대화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지섭이 하는 말을 나는 들었었다. 그는 이 땅에서 우리가 기대할 것은 이제 없다고 말했다.
“왜?”
아버지가 물었다.
지섭은 말했다.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
“하긴!”
“아저씨는 평생 동안 아무 일도 안 하셨습니까?”
“일을 안 하다니? 일을 했지. 열심히 일했어. 우리 식구 모두가 열심히 일했네.”
“그럼 무슨 나쁜 짓을 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법을 어긴 적 없으세요?”
“없어.”
“그렇다면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어요.”
“기도도 올렸지.”
“그런데, 이게 뭡니까? 뭐가 잘못된 게 분명하죠? 불공평하지 않으세요? 이제 이 죽은 땅을 떠나야 됩니다.”
“떠나다니? 어디로?”
“달나라로!”
정말 달나라로 가야만 가난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걸까요. 현실에서는 돈과 상관없이 행복이 숨 쉬는 사회를 꿈꿀 수 없는 걸까요. 꿈꾸는 것조차 사치인 걸까요. 제가 책 한 권 읽는다고 한들 빈부격차는 나날이 더 커져갈 것이고, 사다리를 오르지 못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의 절망만 늘어갈 텐데요.
이 문제에 대해서 저는 객관적인 진단을 내릴 수 없습니다. 저는 이미 그런 세대 속에 살고 있는 주인공 중 한 명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적어도 책을 읽고 ‘왜 책을 읽지?’라는 무기력에 빠져있기는 싫었습니다. ‘난쏘공’에서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는 하나도 없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찾아보니 희망이 정말 없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도도새다.”
지섭이 말했었는데, 윤호는 이렇게 근사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형, 도도새는 어떤 새지?”
“십칠세기말까지 인도양 모리티우스섬에 살았던 새다. 그 새는 날개를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날개가 퇴화했다. 나중엔 날 수가 없게 되어 모조리 잡혀 멸종당했다.”
그렇습니다. 이런 세대 속에서 적어도 도도새의 길을 걷지 말아야겠다는 희망을 찾아봅니다. 세상의 부조리와 씨름하며 나름의 답을 찾을 때까지, 내가 가진 이성과 연민이라는 양 날개를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으면 퇴화할 거라는 두려움으로요. 현실을 보며, 책을 보며 무기력에 빠져 있는 순간 제가 그리는 사회는 거기서 멈추어 버립니다. 그렇게도 비판하던 빈익빈 부익부는 현실에서 더 뿌리가 깊어질 뿐입니다.
더크로스 노래는 이렇게 끝납니다.
작은 공 하나를 만들기 위해 평생이 걸릴 수도 있지만, 하지만. 말씀하셨죠, 작은 이 작은 공을 우린 이제 다시 쏘아 올려야 하지. 절망의 반복이 언젠가 저 희망이 될 테니. 우리의 눈물이 언젠가 저 희망이란다.
가난하지만 희망과 꿈을 잃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더 이상 희망고문 ‘썰’로 전락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난장이는 과연 지섭을 따라 달나라로 떠났을지 궁금하네요.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