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네시 반 칼퇴근을 해도 집에 들어가는 길은 빠르지 않다. 10분 간격으로 오는 버스를 한 대 놓치면 도착 시간은 2-30분씩 늦어진다. 악명 높은 키토의 퇴근길에 걸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버스 두어 대를 보내고 나서야 타는 이유는 다니엘 씨의 핀쵸(꼬치구이) 집 덕분이다. 오늘도 그 냄새를 못 이기고 가게에 들렀다. 이제 막 장사를 시작한 참이었다.
“이거 다 익는데 몇 분 걸려요?”
“10분!”
“아.. 너무 늦는데..”
“일단 앉아!”
다니엘 아저씨는 바로 의자부터 깔았다. 못 이긴 척, 자리에 앉아서 닭날개를 주문했다. 메뉴는 딱 4가지다. 소시지, 까르네(소고기), 닭가슴살, 닭날개 살. 요즘은 닭날개만 주로 먹는다. 맛은 있지만 뼈가 있어서 먹는데 조금 까다롭다. 닭고기 살을 완벽하게 클리어하려면 왼손으로는 음식이 든 접시를 잘 받치고 오른손으로 꼬치를 잡아 뜯어야 한다. 소스가 손과 얼굴 여기저기 묻어서 보기에는 심히 나빠도 잘 뜯을수록 맛은 일품이다.
오늘은 내가 첫 손님이었다. 아저씨는 귀청이 터질 듯 큰 목소리로 신나게 말을 걸었다. 드디어 내 국적을 물어봤다.
“어디서 왔어?”
“한국에서 왔어요.”
“아! 꼬레아! 나 예전에 한국인 사장 밑에서 일했었어!”
“정말요?”
“그 사람, 일을 기가 막히게 잘 했는데 말이야. 무슨 일이 터지잖아? 그러면 무조건 빨리! 빨리! 여기저기 전화해서 제일 빠르게 일 처리를 했지.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말이야.”
“하하. 한국 사람들이 원래 좀 빨라요.”
“근데 문제는, 돈을 조금 줬다는 거야!”
“그건 최악인데요?”
“가만있어보자. 그때가 1994년, 그니까 내가 스물한 살이었는데. 보통 사람들 월급이 한 달에 이십팔만에서 삼십만 수크레였어요. 근데 나는 십일만수크레밖에 안 받았으니까. 엄청 짠거였지!”
“와, 수크레라니. 정말 옛날 얘기네요.”
에콰도르는 원래 ‘수크레’라는 자체 화폐를 가지고 있었으나 1900년대 후반 경제위기와 함께 찾아온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자국 화폐를 버렸고 지금까지 미화를 사용한다. 어느덧 닭고기가 다 익었다. 핀쵸 가게로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래. 에콰도르 생활은 어때?”
“좋아요. 음식들이 맛있어요. 모로쵸, 엠빠나다, 핀쵸, 다 좋아요. 특히 핀쵸는 이 집이 최고죠. 다 가봤는데 여기만한 데가 없어요.”
“그치? 이 맛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에요. 매일 아침 일찍부터 준비해서 나온다구. 따라올 수가 없지.”
아저씨는 내 접시에 바나나를 2개 더 얹어주셨다. 가게 주변으로는 강아지 몇 마리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사람들의 접시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 옆에 앉은 아저씨는 실수로 감자를 떨어뜨렸다. 감자를 줍더니 옆에 강아지에게 주었다. 강아지는 냄새를 맡더니 감자를 그대로 바닥에 버렸다. 먹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 남은 살점까지 다 발라먹고는 남은 뼈다귀를 강아지에게 주었다. 뼈 씹는 소리가 생각보다 커서 놀랐다.
핀쵸 가게 다니엘 아저씨는 여전히 귀가 찢어질 것 같은 목청으로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잘 먹었습니다!”
“그래. 그나저나 이름이 뭐야?”
“Wony라고 해요.”
“붜니?”
“더블유. 워니예요.”
“아. 워니!”
“아저씨는 이름이 뭐예요?”
“다니! 여기, 이 천막에 써있잖아. 다니엘의 핀쵸 가게.”
“하하. 그러네요. 이걸 못 봤네요. 내일 또 올게요.”
“그려. 잘 가!”
오늘따라 교통체증이 더 심했다. 집에 일찍 들어가겠다는 계획은 실패했지만 뱃속은 어느 때보다 든든한 퇴근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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