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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Apr 15. 2018

11명이 한 라인에서 볼링을 친다고요?

비교와 경쟁, 그리고 성실

뉴욕을 여행할 때였다. 배낭여행을 시작한 지 3주쯤 됐을까, 깎지 않아 듬성듬성 흉하게 난 수염과 아무렇게나 친 스포츠머리,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한겨울에 반바지, 가디건 차림으로 돌아다니던 내 모습을 보면 그 누구도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그도 그럴 것이 뉴욕을 돌아다니면 한국인들은 확실히 눈에 띄었다. 대부분 멋있고 예쁘다. 남자들은 당시 유행하던 5:5 가르마를 타거나 뉴욕의 분위기에 맞는 롱코트를 입고 다녔다.


그날도 대수롭지 않게 할랄가이즈의 브리또 비슷한 음식을 뜯으며 필라델피아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워 보자는 심산으로 일부러 더 게걸스럽게 먹었다. 그렇게 먹다가 음식을 떨어뜨리면 옆에 있던 비둘기들이 달려와 모이를 뜯었다. 그 모습이 웃겨서 일부러 비둘기들에게 음식을 떼 주기도 했다. 그리고 내 뒤에는 예의 스타일을 한 동양인 한 명이 있었다. 옷 입은 폼이나 외모로 보아 한국인으로 추정됐다. 그는 이런 내 행세를 보더니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꽤 잘생겨서 주눅이 들긴 했지만 알게 뭐야, 할랄 가이즈를 계속 뜯었다.


마침 버스가 도착했는데 그 남자와 옆자리에 앉게 됐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한국인이세요?” 그러자 그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치 한국어를 아주 잘 하는 중국 사람을 만났다는 듯이.


대화를 하니 나와 나이도 비슷하고, 생각보다 대화도 잘 통해서 버스에서의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역시나 그분은 내 행색을 보고 처음에는 한국인이 아닐 거라 짐작했단다. 나는 남들 시선 신경 안 쓰는 법 좀 더 배우고 싶어서 일부러 초라한 행색을 한다고 말했다. 그분은 말했다. “맞아요. 생각해보니까 그게 참 문제네. 한국인들은 다른 사람 신경을 참 많이 써. 맞아. 그랬단 말이지. 참 멋지시네요! 저도 그런 여행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이때 참 행복했던 것 같은데.

미국에 교환학생을 가기 직전에 투블럭 스타일을 하고 떠났다. 현지 생활이 1달이 넘어가자 구렛나루며 뒷머리가 거슬릴 정도로 길어져서 이발소 같은 곳에 가 머리를 잘랐다. 영어를 잘 하지 못했으니 이발소 벽에 붙어 있는 사진의 넘버 쓰리를 가리키며 저대로 잘라달라고 말했다. 군대 있을 때만큼 짧아지긴 했지만 나름 만족스러웠다. 현지인 친구들도 다 앞머리를 올리니 깔끔해 보인다며 칭찬해줬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 사람들이었다. 같이 교환학생 온 여자애들은 달라진 내 머리를 보고 빵 터지더니 “오빠 훨씬 깔끔하긴 한데..(잠시 침묵) 뒷머리 각이 장난 아니네요.”라고 했다. 다른 학교에서 온 형은 내 머리를 보더니 “나도 내일 자르려고 했는데 거기 어디냐? 안 가야겠다.” 또 다른 형은 “얘 뒷머리 칼각좀봐. 아 나는 한국에서 파마하고 온 게 신의 한 수였다. 돌아갈 때까지 여기서 절대 머리 자르지 말아야지”라고 했다.

2주 전 에콰도르에서 자른 머리. 그때도 아마 이런 느낌이었던 듯 하다.


지난주에는 에콰도르 현지 교회의 친구들과 함께 볼링을 치러 갔다. 한국에서 볼링을 칠 때는 주로 팀전이었다. 3-4명씩 팀을 이루어 각각 라인을 하나씩 잡고 음료수 혹은 밥값 내기를 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내기를 걸면 늘 굼뜨던 나도 경쟁심이 생기고 사력을 다해 플레이를 하곤 했다. 덕분에 실력도 금방 늘고 재미도 있다. 다만 졌을 때 패배감이 크게 다가올 뿐이다.


여기도 주말이라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우리는 11명이었고 나는 당연히 최소 3개의 라인을 얻어 팀전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직원은 한 라인에 11명의 입력을 모두 입력했다. 그러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다들 1번 라인으로 향했다. 이건 게임이라기보다는 뭐랄까. 좀 더 시끄러운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는 분위기였다. 11명이 모두 플레이를 하려면 한 라운드당 15분이 족히 넘어갔다. 분명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났는데 나는 4번밖에 플레이를 못 했다. 신기했다. 아무도 자기 점수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매번 플레이마다 잘 하든 못하든 팀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서로 격려했는데 여기는 그런 문화는 없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각자의 차례를 응원하기는 하지만 자기 차례가 아닐 때는 주로 자리에 앉아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볼링은 그냥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한 수단 정도에 불과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스트라이크를 친들 공이 옆으로 빠진 들 어떠하리. 아무도 볼링을 경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경기중에 사진 찍는건 자연스러운거죠.

같은 집에 사는 독일인 친구는 저녁 식탁에서 ‘한국’에 관한 주제가 나올 때면 늘 돌려 까기를 한다. 한국의 교육 제도며, 육아 제도, 직장 문화에 관해 이런 걸 들었는데 그게 정말 사실이냐, 믿을 수 없다, 독일은 그렇지 않다, 이런 말투였다. 나는 그때마다 “맞아. 실제로 그래. 한국은 정말 살기 안 좋아”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자존심이 있어서 변명한다는 것이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완전 폐허가 돼서 세계 최빈국이었어.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뼈 빠지게 일하고 공부한 덕분에 지금 거의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됐지.”라는 말 뿐이었다.


그 성실함의 덕으로 나는 지금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다른 이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그 성실함의 덕으로 무엇이든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는다. 20년 넘게 살다 보니 다른 사람 눈치 보는 DNA가 가시처럼 내장되어 쉽게 빼낼 수가 없다. 빼내고자 노력은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고, 쉽게 빠져나오지 않아 오히려 가슴을 더 후벼 파는 날에는 하루 종일 우울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비교하고 경쟁하지 않으면 모두 행복할 텐데. 비교와 경쟁 없이 경제 성장까지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비교와 경쟁을 베이스로 하는 세대에 태어났으니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그 답을 찾아 극복해 볼 생각이다. 내 자녀들은 굳이 다른 집 아이들과 비교하지 않고, 굳이 친구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에 살도록 말이다. 한국 사람들의 머리와 성실함이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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