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언어언어

내향적이라고 언어 못 배우나요

by 무대가리

나는 외국어고등학교에서 일본어를 전공했다. 아, 전공을 일본어로 택한데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딱히 일본어를 배우고 싶었다기보다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 세 개 학과가 있는데 영어와 중국어는 싫었다. 중3 때 나는 반장이었고 담임은 중국어 교사였다. 꽤나 독선적인 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웬만하면 화 안내는 내가 그 사람과 이를 박박 갈며 싸웠고 결국 부모님까지 모셔 와야 했으니까. 그래서일까, 고등학교 원서를 접수할 때 중국어는 보란 듯이 3 지망에 썼다. 당신이 가르치는 중국어, 나는 흥미 없소. 그렇다고 영어과를 가고 싶지는 않았던 게 영어보다 제2외국어 하나쯤 구사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학교 특성상 일본어 수업이 일주일에 6-8시간 정도 편성되어 있었다. 나름 적성에도 맞았다. 그 중요하다는 언수외도 제끼고 나카시마 미카의 ‘눈의 꽃’ 같은 노래를 번역하며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1학년이 마칠 때 즘 되니 일본에서 온 친구들에게 학교를 안내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


3.jpg 수업때 보는 일드는 나를 설레게했다. OST만 들어도 고등학교로 돌아가는 이 기분.

고2가 되던 겨울방학이었다. 일본 시골마을에 1주일 동안 홈스테이를 다녀왔다. 나와 동갑이었던 토시오의 집에 5일 동안 지내면서 오로지 일본어로만 이야기했다. 잘 모르는 단어들은 전자사전을 찾아가면서 말했다. 지나칠 정도로 친절했던 이들의 사랑 때문인지 돌아가는 신칸센에서 주변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펑펑 눈물을 쏟았다. 토시오는 나를 ‘웡희’라 불렀는데 그 웡희 라는 소리가 무척이나 그리웠다.


그때 태어나 처음으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 외국인 친구와 교류를 하는 것도 좋았고, 그 나라의 말을 쓰면서 그 나라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너무 즐거웠다. 언어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봐도 문과 성향이 강했지만 이미 이과로 진학을 한 상태여서 그냥 쭉 공부를 했다.


이과를 가면 많은 학생들은 ‘일포자’ 즉, 일본어 포기자가 된다. 당시에는 수시보다 정시의 비중이 더 높았기 때문에 특기자가 아닌 이상 제2외국어는 이과 입시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낭비였다. 나는 적성과 흥미 모두 맞는 일본어를 놓지 않고 계속 공부했다. 입시에 반영되는 언수외탐만큼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시험기간에 시간을 들여 시험 준비는 했다. 내 MP3에는 항상 Spitz, 사잔 올스타즈 같은 제이팝 가수들의 노래가 가득했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야간 자율학습을 할 때 그렇게 행복했다.


고3이 되자 일본어 수업 시수가 10시간 정도로 늘어났는데 이과생들에게는 대부분 자습 시간으로 주어졌다. 학교 입장에서도 이 아이들의 일본어 실력 향상보다 대입 성공이 훨씬 중요했기 때문이다. 나도 고2 이후로 일본어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본어를 잊어버리나 했는데 군대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자격증을 따면 포상을 준다고 한다. 단지 포상휴가가 받고 싶어 휴가 때 일본어 책을 사 왔다. 3년 넘게 손을 놓고 있어서 모두 잊어버렸을 줄 알았는데 사람의 뇌가 생각보다 대단한 것이 하다 보니 또 금방 기억이 났다. 덕분에 포상휴가도 받고 전역 직후에 다녀온 일본 여행도 꽤나 풍성했다.

maxresdefault.jpg 휴가를 준다는데..!!

그 뒤로 내 목표는 오로지 미국 교환학생 합격이었다. 남들은 전역하면 복학생 버프를 받아 학점이 최고를 찍는다던데, 나는 그 버프를 토플 공부하는데 다 써버렸다. 미국에 가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3-4시간씩만 자며 여름방학 두 달을 내내 토플에 매달렸다. 딱 원하던 만큼의 점수가 나왔고 덕분에 한 학기 동안 미국 애리조나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미국에 가기 전에는 나름 언어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았다. 핸드폰을 개통하는 것도, 음식 주문하는 것도 어려웠다. 미국 가는 비행기에서 옆자리 사람에게 주스를 살짝 쏟았는데 고작 한다는 말이 아이엠 쏘리, 아유 오케이? 였다. 근데 그분 한국 사람이었다.


교환학생 초기에는 주로 한국에서 온 사람들과 어울렸다. 일주일에 한 번, 미국 학생들이 하는 동아리 활동을 하긴 했지만 그 모임에 들어가기까지 항상 최소 20분은 망설였다. 들어가 말아? 어차피 가봐야 또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 얘기하는 거 듣고나 있을 텐데. 말 한마디 못 부치고 그저 웃다가 나올 텐데. 자괴감만 들 텐데, 그래도 가? 아 이놈의 소심한 성격.


아무튼 당장 편하다는 이유로 여행도, 운동도 한국인들과 했다. 1달쯤 지났을까? 내가 여기 왜 왔나 싶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말 못해도 좋으니까, 자존심 상해도 좋으니까 외국인들 옆에 붙어만 있자. 비싼 돈 주고 미국까지 왔는데 맨날 한국어만 쓰면 쓰나. 나는 과감히 한국에서 온 형들과 연을 끊었다. 아, 내가 일방적으로 끊은 건 아니다. 넷이서 다 같이 샌프란시스코 여행을 갔다 왔는데 거기서 대판 싸우고 왔다.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그 뒤로는 자연스레 관계가 멀어졌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싱가포르, 대만, 중국, 일본, 캐나다, 호주, 덴마크 등 각국에서 온 교환학생들이 친분을 쌓고 있었다. 중심은 항상 싱가포르 친구들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온 학생들 중에는 유독 ‘영어’를 매개로 동서양을 이어 줄 수 있으며 유쾌하고 리더십도 갖춘 친구들이 많았다. 나도 자연스레 그들의 모임에 끼어들었다.

IMG_9952.JPG 이퓨 고~ 투~ 샌~ 프란~ 시스코~

호주에서 온 제임스는 나와 같은 수업을 들었기에 수업이 끝나면 늘 제임스에게 농구를 배웠다. 매주 목요일에는 교내 볼링장에서 다 같이 볼링을 쳤다. 이 모임의 리더 격이었던 싱가포르 친구 케빈이 자세며 이것저것 알려줬다. 나는 처음엔 3-40점 밖에 못 쳤는데 나중에 케빈의 도움으로 90점까지는 올렸던 것 같다. 그 뒤로도 우리 교환학생들은 많은 것을 함께했다. 사실 나는 어느 모임을 가도 말을 많이 하지는 못했다. 내향성이 강해서인지 여러 명이 있을 때 대화에 끼는 게 쉽지 않았다. 그것이 영어라면 더더욱.


그래서 결심한 것이 ‘붙어라도 있자’였다. 뭐든 일단 끼고 봤다. 스페인어 수업에서 만난 친구들과 스터디도 결성하고, 땡스기빙 파티에 초대되면 호떡을 만들어갔다. 다들 좋아한 그 음식 덕을 톡톡히 봤다. 미국 친구 한 명은 내가 떠나기 전에 꼭 레시피를 알려달라며 같이 아시안 마켓에 가서 호떡믹스를 사서 같이 요리 해 먹기도 했으니 말이다.


나는 그렇게 붙어라도 있었고, 그 덕분에 운 좋게 동아리의 미국 친구들을 사귀어 여기저기 여행도 다녔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영어를 많이 말했냐 하면 그렇지 않다. 대부분 그저 묵묵히 듣기만 했다. 어쨌든 나는 붙어 있었고 교환학생이 끝날 때 즈음에는 1:1의 상황에서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정도로 회화 실력이 늘었다. 물론 여러 명이 있을 땐 여전히 침묵이었다.



스페인어를 처음 배운 것도 교환학생 때였다. 교환학생이 끝나면 방학을 이용해 남미로 배낭여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영어로 스페인어를 배운다. 나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과제 양이 꽤 많았는데 그걸 다 영어로 해야 했으니, 아마 전공 공부보다 스페인어를 더 열심히 했을 거다. 아무튼 덕분에 2달의 남미 여행은 미친 듯이 좋았고 일종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그 뒤로 쭉 바쁘게 살다가 초과 학기 때 본격적으로 스페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남아도는 시간을 대부분 언어 공부나 브런치에 투자했다. 부족한 실력이었지만 운 좋게 인턴 프로그램에 합격해서 마침내 에콰도르에 왔다. 아마 내 전공이 전기전자공학이고 파견 온 곳이 ‘에너지 기구’이니 그토록 싫어하던 전공 덕을 톡톡히 본 것 같다.

KakaoTalk_20180406_231738033.jpg 서양인 룸메이트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역시나. 빨라도 너무 빠른 그들의 대화에 끼지 못하고 들러리가 되었다. 아무렴! 붙어라도 있는게 어디야. 점프는 내가 제일 잘하네.

아직 현지인과 자유롭게 대화하지는 못하지만 쉬운 단어들을 조합해서 하고 싶은 말을 에둘러 표현하는 정도는 된다. 여기 와서 벼르고 벼르던 한국 라면을 처음으로 끓여먹으려던 참이었다. 버섯을 썰고 물을 끓이고 떡을 넣고 면을 넣어 휘휘 젓고 이제 막 스프를 넣으려던 찰나! 영어를 못하는 현지인 호스텔 직원이 급하게 나를 찾았다. 도와달라고. 알고 보니 스페인어를 못하는 캐나다 친구에게 보증금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전달해 줘야 하는데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벼르고 벼르던 라면이 뿔는건 억울했지만 둘 사이를 통역해 줬다. 물론 그 마저도 잘 이해하지 못해서 내가 이해한 게 이게 맞냐며 여러 번을 되물어 통역했다. 뿌듯한 마음으로 다시 주방에 돌아오니 신라면은 퉁퉁 불었고 물 양은 생각보다 많아서 싱거웠다.




나에게 스페인어는 네 번째 언어다. 물론 영어와 일본어를 원어민 급으로 하는 건 아니지만 여행 갔을 때 즐길 수 있을 정도로는 구사하니 이만하면 된 것 같다. 돌아보면, 내가 언어에 재능이 있다는 건 순전한 착각이었다. 정말로 재능이 있는 친구들은 한번 외운 단어를 잊어버리지 않는다. 며칠 만에 실력이 쑥쑥 느는 게 보인다.


난 단지 그 언어를 쓰는 곳의 문화에 100%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별 말없이 조용한 이미지로 모임에서 인원수를 채워주는 들러리가 되어도 그것이 내 자존심을 무너뜨리든, 그래서 한동안 처참한 슬럼프에 빠지게 하든 포기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견디면, 조금만 더 꾸준히 하면 분명 이들과 자신감 있게 대화에 참여할 수 있겠지. 이런 희망을 붙들고 꾸준히 공부했다.


외향적인 사람이 현지인들과 잘 어울리며 언어를 더 빨리, 쉽게 배우는 건 맞는 것 같다. 그것이 재능이라면 그렇게 불러도 좋다. 그러나 내향적이라고 해서 주눅 들 필요는 없다. 더디지만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이런 건 분명 외향 내향과 관계없지 않은가. 재능이 없으면 어떤가. 새로 배운 단어 하나를 실제 대화에서 써먹을 때! 그리고 그 말을 원어민 친구가 이해했을 때 느끼는 그 희열! 그 희열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으니 이만하면 충분하다.

keyword
이전 08화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