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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시작 Jun 20. 2024

Day10_1

2023. 08. 06._제주 한 달 살기

제주관광대학교 컨벤션 홀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일정을 보내게 될 하루였다. 가장 먼저 제주도 서쪽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북동쪽에 머물던 우리가 정반대 방향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제주도 한 달 살이 중 처음일이었다. 사정은 이러했다.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우연히 가로수길 가로등대에 매달려 현란하게 휘날리던 광고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그림책 속 제주 이야기’. 말 그대로 그림책 속 제주 설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공연이었다. 제목부터 솔깃했고, 제주도에 와서 특색 있는 뮤지컬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여행 초반에 미리 예매해 두었던 것이다. 여행 열흘 차, 공연을 보기 위해 우리의 첫 서쪽 여행지가 그렇게 결정되었다. 셋째는 공연에 참석할 수 없는 관계로 아이들에게 충분한 설명과 동의를 구한 후 둘이서 보게 될 것임을 미리 일러두었다. 보호자 없이 공연을 보는 게 낯설 아이들이 과연 잘 볼 수 있을지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출발한 터였다. 사실 첫째의 반응은 처음부터 호의적이지 않았다. 엄마와 함께 볼 수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낯선 ‘제주 설화’라는 주제로 뮤지컬 공연을 한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 어르고 달래며 부지런히 공연장인 ‘제주관광대학교 컨벤션 홀(제주 제주시 애월읍 평화로 2715)’로 향했다. 섬이라고 얕봤다가(?) 큰코다칠 뻔했다. 가는 길이 멀기도 했지만 대학교 주변이라 꽤나 번잡하기까지 했다. 처음으로 여행지 운전을 하며 시간을 맞추느라 긴장한 일은 처음이었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목적지에 도착했고, 공연 시작 전,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으로 나와 아이들은 잠시나마 헤어지게 되었다. 나와 셋째는 공연장 밖 의자에서 기다렸다. 방학을 맞이한 뒤, 단 한순간도 떨어진 적 없던 우리 가족이 이렇게 처음으로 공연을 계기로 떨어지게 되었다. 뭔가 어색하면서도 설레는 이 기분...... 은 역시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무엇이 불편한지 셋째가 유아차에서 울기 시작했다. 유아차를 끌며 공연장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달래 봤지만 결국 눕고 싶다는 나름의 표현이었다. 평상과 같은 의자가 있어서 눕혔지만 많은 사람들이 앉지 않은 자리 탓인지 조금은 더러웠고, 셋째를 그곳에 눕히려니 조금 찝찝한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별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과 반대로 정신없이 셋째를 보던 와중에 공연은 끝이 났고, 미소를 머금은 채 다가오는 둘째와 달리 첫째는 역시나 심드렁해 보였다. 그런 첫째에게 물었다. “어땠어? 재미있었어? 부럽다! 엄마도 보고 싶었는데.(재밌음을 강요하는 반응)”라고 하니 돌아온 대답은 사춘기 소녀의 전형적인 대답 그 자체였다. “응. 볼만하네. 재미없을 줄 알았더니.” 휴. 한시름 놓았다. 둘만 보내놓고 재미없는 공연 보여줬다는 핀잔을 들으면 어쩌나 내심 걱정하고 있던 찰나에 재미있었다니. 고생하며(?) 기다린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함께 봤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이쯤에서 서로 만족하며 돌아서는 것으로 열흘차 첫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다음에는 다시 동쪽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함덕과 가까운 조촌. 조촌을 가는 이유는 제주도 한 달 살기 시작 전, 우석대학교 글쓰기 교수님(글쓰기 특강 때 우연히 한 번 뵈었다.)께서 제주 북동쪽에 간다면 ‘시인의 집(제주 제주시 조천읍 조천3길 27)’을 가보라며 추천해 주셨기 때문이었다. 손 세실리아 시인이 직접 운영하는 북카페라고 추천을 해주셔서 이 또한 처음으로 '제주 북카페'를 가게 된 것이다. (서쪽으로 간 김에 서쪽 그림책 북카페 인 ‘노란 우산 관광대점(제주 제주시 애월읍 평화로 2715 제주관광대학교 행복기숙사 2호관 2층 1호)’을 다녀오려고 했는데, 하필 일요일, 휴무일이라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책을 좋아하고, 커피를 좋아하는 내게 북카페는 일종의 유토피아 같은 곳이었다. 그런 환상을 품고 있는 장소에 우리 아이들과 함께 한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또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하는데.... 

내 품은 환상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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