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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시작 Jun 14. 2024

Day9_2

2023. 08. 05._제주 한 달 살기

세화 해수욕장, 세화민속오일시장, 구좌농협 하나로 마트, 다이소 제주 세화점



아니나 다를까 급하게 도착한 시장은 이미 정리로 분주해 있었다. 심지어 대부분의 가게들은 정리를 마치고 장사가 마감된 상태였다. 우리 가족은 주전부리가 필요했기에 시장 내부를 정신없이 둘러보았다. 다행히 와플 장사를 하고 계시던 사장님은 뒤늦게 찾아온 손님 덕에 여전히 장사를 하고 계셨고 나도 마지막 손님 대열에 합류해 와플과 붕어빵을 샀다. 저녁거리가 될 만한 음식은 아니었지만 큰 아이들이 실망하지 않을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계산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시장을 나서기 직전에 감귤을 사기 위해 둘러보았는데, 트럭에 귤을 한가득 채우고 판매하시던 사장님들도 역시 정리를 하고 계셨다. 귤 장사를 하시던 분들은 대부분 세화민속오일시장 입구에 계셨는데, 우리 가족이 입장하자마자 한 사장님이 내게 판촉 활동을 다. 나는 사장님께 "들어가 구경하고 나와서 사 갈게요."라고 말했다. 약속한 대로 사장님께 다가가 “사장님, 귤 만원 어치만 싸 주세요.”라고 말했다. 사장님은 거의 정리가 다 된 참인데 다행이라며 흰 비닐봉지에 귤을 담아주셨다. 그리고는 유아차에 타고 있던 셋째를 보며 한마디 하셨다. “애기가 아픈가 봐요.” 나는 내심 화들짝 놀랐다. 왜냐하면 셋째는 겉으로 봐서는 장애아라는 것을 쉽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답하지 못한 채 잠시 머뭇거리는데 사장님이 이어 말씀하셨다. “저희 아이도 아파요. 이미 다 커서 지금은 시설에 들어가 있고요.” 당혹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애써 “그러셨구나.”라며 가볍게 대응했다. 사장님은 이어 “덥고 힘들 텐데 애들 데리고 여행 왔나 봐요. 즐거운 여행 되세요.”라며 다정한 말도 잊지 않으셨다. 의외의 만남에 잠시 당혹스러웠지만 발달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로서의 동질감도 느껴져 한편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사장님의 말씀, 그것은 바로 ‘아이가 성인이 되어 홀로 시설에 있다는 것’.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셋째와의 이별이었다. '과연 사장님은 아이와 이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마음들에 생채기가 났을까' 하는 생각에 내 심경은 너무나 복잡했다. 생각해 보았다. '지금은 너무 어린아이지만 나중에 성인의 나이가 되어 셋째를 감당하지 못하면 어쩌지? 그땐 나도 귤 장사하시던 사장님처럼 자연스럽게 시설에 보내게 되는 것일까?'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인 것 같아서, 혹은 그러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 애써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 뒤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구좌농협 하나로 마트(제주 제주시 구좌읍 세평항로 13)’에 들러 첫째가 필요한 간식거리 하나와 물을 사고 숙소로 돌아왔다. 첫째는 앞서 동녘 도서관 옆에 있던 ‘다이소(제주 제주시 일주동로 3126, 다이소 제주 세화점)’에 들러 아이스크림 틀을 사 와 하나로 마트에서 산 간식을 이용해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둘째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보며 아홉째 날 하루를 마무리했다.  

    




 훗날 드라마 <무빙>의 한 장면이 오늘의 일을 떠올리게 했다. 엄마 역할로 나온 한효주 배우(이하 엄마)가 돈가스에 쓸 돼지고기를 사기 위해 제법 큰 사내아이를 업고 정육점에 갔는데 정육점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업고 다니기에 아가 너무 큰 거 아이가? 아가 어디가 장애가 있는가?” 장애란 말 한마디와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엄마는 발끈한다. 그때 사장님의 발달 장애를 가진 아들이 돼지고기를 업고 정육점에 들어선다. 사장님 역시 장애가 있는 아이와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다 큰 아이를 업던 엄마에게 그렇게 물었던 것이다. 엄마는 정육점 사장님에게 죄송하다며 꾸벅 고개숙인다. 그리고 사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보기엔 아가 업혀 있는 게 좀 많이 답답해 보이가 안 그랬나. 몰랐나. 아 키우느라 거울도 못 봤나. 아만 그 카나. 엄마도 힘들다.” 물론 나는 발끈하지 않았다. 귤 사장님의 눈빛이 이상하지도, 애가 아프냐는 물음에 대한 답이 거짓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장애를 키우는 엄마들이 나누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장애 엄마들 사이에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배려해 주는 사회가 되면 어떨까. 

무심코 묻는 경솔한 말 한마디에 장애아 엄마들의 마음은 오늘도 무너져 내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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