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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시작 Apr 12. 2024

Day 8_2

제주 한 달 살기_2023. 08. 04.

사려니숲길


 

 사려니숲길의 입구와 비자림 입구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비자림의 경우는 주차장 공간을 따로 마련해 두었으며 본격적인 탐방 코스, 산책로가 나오기 전에 매표소를 포함한 이동 구간이 따로 있었던 것과는 달리 사려니숲길은 도로가에 주차구역이 일렬로 나 있고, 도로를 제외한 모든 공간이 숲이었다. 물론 매표소도 없었다. 또 다른 점은 비자림은 적토길인 반면, 사려니숲은 나무 데크로 땅 위에 또 다른 길을 만들어서 길지 않지만 휠체어나 유아차가 더 쉽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무장애 나눔길’이었다.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사려니숲길로 향했다. 유아차가 들어가지 못한대도 갈 수 있는 만큼 가보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한 터였다. 그러나 웬걸! 장애인과 같은 교통약자를 위한 길(무장애 나눔길)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보는 순간 비자림에 이어 사려니숲마저 사랑하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덜컹거리지 않았기에 우아한 공작부인이 된 것 마냥 유아차를 밀며 사려니숲길을 거닐기 시작했다. 비자림에서도 느낀 바지만 아무리 뜨거운 볕도 울창한 숲 안을 들어선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찌는 듯한 무더위는 사라지고 시원한 바람마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순간의 기분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황홀함’이었을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숲이라는 공간에서 힘들이지 않고 유아차와 함께 산책할 수 있는 이 순간, 바로 이 순간의 황홀함을 만끽하기 위해 어쩌면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다짐했는지도 모르겠다. 참 행복했다. 행복한 이 기분이 비자림에 이 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을까. 첫째가 말한다. “엄마, 왠지 엄마를 위해서 제주도에 온 것 같아.” 동시에 ‘나는 숲이 좋지 않아. 나는 바다에서 물놀이하는 게 더 좋은걸?’이라고 우회적으로 말하는 듯했다. 내심 생각했다. ‘너희들만 행복하면 되겠니? 엄마도 행복해야지?’ 그리고 이어 말했다. “그럴 리가. 여기 너무 좋지 않니? 엄마는 바람이 불어 덥지 않아 너무 좋은데?” 가벼운 우스갯소리를 나누며 걷고 또 걸었다. 길 중간에 나무로 된 선베드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키 큰 나무가 얼마나 울창한지 하늘이 좀체 보이지 않았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런 순간을 사랑하는 아이들과 나눌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행복한가.' 물론 아이들은 엄마만큼 즐겁진 않았겠지만 분명 행복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덩달아 아주 조금은 행복해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 5박 6일 동안 함께 하는 즐거움과 더불어 '배려의 여행'을 즐겼다면 앞으로의 여행은 '자유의 여행'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물론 오늘처럼 엄마의 의견이 전적으로 반영된 여행지가 아닌, 아이들의 의견을 수렴해 그때그때 원하는 여행지를 갈 수 있는 자유. 그 자유를 만끽하는 여행이 될 것이다. 그런 기대와 설렘이 더해져 사려니숲길에서의 시간은 30일간의 여행동안 유독 기억에 남는 한 순간으로 손꼽힌다. 유아차가 갈 수 있는 길은 다 걸었을까.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더 머물고 싶었지만 셋째의 수유 시간과 더불어 컨디션도 생각해야 했기에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발길을 돌렸다. 돌아가는 길목의 끝자락에서 한 여성 연주자가 버스킹 공연 하고 있었다. 함덕에서도 그러했듯이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는 자연과 더불어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예술가가 있었다.(검색해 보니 팬플룻 연주가 ‘서란영’님이셨다.) 사려니숲과 너무 어울리는 팬플룻 소리에 더 머물다 가고 싶었지만 숲길을 거니는 동안 듣게 된 것만으로도 오감이 풍족한 산책을 즐길 수 있었기에 이쯤에서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바다보다 산이 좋았다. 평야 지대에서 살았기에 가족과 함께 철마다 바다로 산으로 놀러 다녔다. 어쩐지 격포 해수욕장보다 부안 내소사 가는 길이 좋았고, 대천 해수욕장보다 진안 마이산 가는 길이 더 좋았다. 계절마다 변하는 산의 모습이 기했고, 볼거리가 많은 산에 더 마음이 끌렸다. 더욱이 한없이 이어지는 바다보다 시작과 끝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처럼 따뜻하게 품어주는 산이 더 좋았다. 아이들이 이런 산과 숲의 매력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함께한 사려니숲길이 었다. 비록 첫째에게 핀잔 아닌 핀잔을 들었던 일정이지만 훗날 엄마만큼 나이가 들어서 이 순간의 기분 좋은 추억을 잊지 않길 바라본다.

 더위에 지친 우리 가족은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샤워를 했다. 무더워진 여름 날씨만큼 샤워 후 상쾌해진 기분도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친구들 없이 맞이하는 첫날 저녁, 남은 저녁 시간 동안에는 보드게임을 하며  한 달 중 귀한 여덟 번째 날을 무사히 마무리다.


내일은 또 어떤 여행이 우리 가족을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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