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
엄살과 통증
통증은 환자가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파악하기 어렵고 의사, 환자 관계 및 상황에 따라 통증에 대한 평가는 매우 주관적일 수 있다. 때론 통증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여러 가지 설문지들이 통증의 정도를 대변해서 말해주곤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사건들에 의해 신체에 손상이 생기면 통증을 느낀다. 흔히 가벼운 상처에서부터 깊은 상처까지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하면 알 수 없는 것이 통증이다.
손가락이 칼이나 종이에 베이는 상처나 넘어져서 무릎의 살이 까지는 상처에서부터 골절로 인한 통증, 수술로 인한 통증까지 대표적인 생활 속 통증인 두통, 요통 등 다양한 통증을 겪고 치유하면서 살아간다.
그 통증의 자극이 컸다면, 통증의 기억은 꽤 오래 남을 수 있다. 나에게는 생활 속 통증이라 불리는 두통과 디스크로 인해 생긴 요통은 거의 친구 같은 존재이다. 이 두 가지의 통증이 올 때에는 나름의 환경조정 등 진통제를 먹으며 함께 살아간다. 이런 통증 말고도 나에게는 잊기 힘든 통증의 경험이 있었는데, 바로 수술 후 상처에서 느꼈던 통증이다. 살면서 입원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던 나는 첫째와 둘째를 제왕절개로 귀한 아들, 딸을 얻었다.
통증의 순위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순위를 말하자면 아래와 같다.
1위: 불에 타는 통증
2위: 손가락 혹은 발가락 절단
3위: 첫 출산
4위: 통증에 대비된 출산
5위: 준비 안 된 두 번째 출산
6위: 만성 요통(생리통 포함)
7위: 암에 의한 통증
8위: 환상통
9위: 대상포진에 의한 만성 신경통
10위: 타박상
11위: 치통
12위: 골절상
13위: 관절염
14위: 베임
15위: 일상생활의 작은 상처
16위: 염좌(삠)
나는 여기서 3,4,5,6,10,11,14,15,16위는 했으니 그래도 통증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첫째 출산의 경험은 24시간이 넘도록 산통을 느끼고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산모인 나는 열이 오르고 뱃속의 태아의 맥박이 약해진다는 의사의 판단하에 급하게 전신마취 후 정신없이 수술을 받게 되었다. 마취가 깨던 그 순간, 너무 춥고 배에서 느껴졌던 그 통증은 딱 잠을 자다가 갑작스럽게 차가운 칼이 배를 헤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아~ 흔히 영화에서나 보던 칼에 찔리면 이런 느낌인 것일까?
곁에 있는 남편에게 나는 너무 추워. 배가 너무 아파라는 말만 무한 반복하며 다른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이미 나의 몸은 소양증 등 신체에서 임신으로 인해 겪을 수 있는 모든 증상들은 거의 다했다고 보면 된다. 출산하면 끝이겠느니, 했지만 이건 뭐 더 하다. 어찌 이리 아플 수 있단 말인가.
정말 짜증이 났다.
짜증 다음... 눈물이 났다.
그 눈물은 그저 통증 때문에 흘린 눈물만은 분명 아니었다. 나는 나를 배 아파 낳은 엄마가 아닌, 아빠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났으며 미안한 마음과 함께 제왕절개의 통증을 느꼈다. 아빠는 잦은 시술과 큰 수술을 여러 번 하셨다. 속목동맥 스텐트, 심장 우회로 수술, 급성담낭염 수술과 식사를 입으로 하시지 못해 경피적내시경위조루술이라는 PEG 시술까지 받으셨다. 이 시술은 입으로 식사를 하시지 못하기 때문에 영양공급을 위해 내시경을 이용해 복벽과 위에 직접적으로 구멍을 내는 시술이다. 보통 한 번이면 되는 간단한 시술도 아빠는 여러 가지 합병증 등의 이유로 3번이나 했다.
엄살
엄살이라 하면, 아픔이나 괴로움 따위를 거짓으로 꾸미거나 실제보다 보태어서 나타내는 태도나 말을 말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엄살이 심한 아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엄살이 심해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그 아픔은 실제 컸기에 엄살이 아닐 수는 있다. 겁도 많은 아이였기에, 심적으로 더해서 나는 통증에 대한 역치가 낮은 아이였을 것이다. 지금은 출산 등의 통증을 겪은 후라 통증에 역치는 꽤나 높아졌을 것이다.(실제 지인 중 피부과 의사가 있는데, 여러 가지 시술 중 통증이 심한 시술은 산통을 겪은 엄마들이 잘 참고 아가씨들은 매우 힘들어한다는 말을 들었다.)
뇌졸중 후의 아빠는 잦은 시술과 수술 후에는 늘 24시간 간호가 필요하고 그때마다 나는 아빠를 보살폈다. 침상 환자의 간병 중에는 욕창 예방 등 체위변경이 굉장히 중요하다.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빠의 욕창 예방을 위해 아빠의 흉복부가 15센티나 개방한 수술 후에도 아빠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나름 조심한다고 했지만 체위변경에서는 정말 아빠의 사지를 막 들어 올리고 돌렸다.
그때마다, 아빠는 아프다며 말씀을 할 수 없으니, 그저 움직일 수 있는 한 손으로 통증을 호소하셨다.
엄살 좀 그만 부려 아빠!!
아빠를 간호한다는 나는 무엇을 할 것일까? 그때는 그런 수술 후 통증이 그렇게 아프다는 것을 몰랐었다. 실제로 겪어보지 못했으니 알리가 있을까? 그저 의사가 말하는 아마 많이 아프실 거예요. 진통제 추가로 주사할게요. 말만 듣고 밤새 시름시름 앓는 소리에 마음만 졸였는데, 그거와는 다르게 나의 행동은 진짜 쓸모없기 짝이 없었다.
제왕절개로 나도 15센티를 두 번이나 같은 자리를 개방했다. 제왕절개 출산 후기가 아닌 통증에 대해서만 말을 하자면 수술 후에는 사실 발가락 하나 까딱하기가 두렵다.
사람은 움직이기 전에는 core muscle이라는 중심부 근육 즉, 복근을 모두 사용하기 마련이다.
다리를 하나 들어 올리려고 해도 복근이 먼저 작동을 하게 되고 복근이 도와줘야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다. 다리뿐만 아니라 손을 뻗어 물건을 잡으려고 할 때도 복근이 먼저 작동한다. 특히 상체를 세울 때나 누울 때도 복근이 쓰이며 신체를 조절하고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만큼 복근이 중요하다.
보통 담낭염은 복강경으로 수술할 수 있지만 심장과 관련된 병력이 있었던 아빠에게는 해당사항이 되지 않았다. 의사의 말로는 가로로 절제하여 수술하기에 회복이 더 늦고 신경절단이 많아 통증이 더 심할 거라고 하셨다.
그런 환자를 체위변경이라는 이유로 맘대로 다리를 올리고 몸을 돌리고 했으니, 얼마나 아팠을까..... 내가 직접 수술을 하고 나서 몸을 움직여 보니 그때 아빠가 나에게 호소했던 통증은 엄살이 아닌, 수술보다 더 힘든 통증이었다. 그렇게 처음 겪는 제왕절개 수술 후 아빠가 느꼈던 비슷한 통증을 느끼며 나는 수술 후의 통증과 미안한 마음과 함께 한참을 울었다.
나는 이날 이후, 엄살이라는 단어를 자제한다. 실제 주관적인 통증은 심리적인 요소와 함께 나타나 더 아플 수도 있다. 우리가 가볍게 종이 등에 베이는 경우 아프지 않다가도 상처와 피를 보게 되면 그때부터 통증이 동반되는 경우 등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이라는 말이 있지만 통증은 되도록이면, 느끼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나는 이런 통증이란 대가로 얻은 것이 있으니, 타인의 통증과 아픔을 가볍게 보지 않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힘들겠다. 힘들었겠다.
우리가 흔히 하는 위로의 말도 나는 요즘 조심스럽게 한다. 내가 겪어본 비슷한 일이라 해도 나는 위로를 받는 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을 다 알지 못한다. 그 마음을 예상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내가 진정으로 그 사람을 위로하겠다는 마음을 가졌다면, 절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은 태도는 버려두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진심의 위로란, 말을 들어주되, 그 사람의 심정 모든 것을 아는 척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 지인들에게 내가 받은 위로 중 진심으로 위로가 되었던 말이다.
그랬구나.
너에게 그런 일이 있었는데
내가 모르고 있어,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