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이란 손님
아빠가 쓰러지신 후 나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제일 큰 삶의 변화를 느낀 사람은 엄마일 것이다. 간병생활 중 도망도 가고 별의별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누가 뭐래도 나의 엄마는 최고였다. 그런 엄마에게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으니, 우울이란 손님이다. 이제야 온 것이 신기할 따름이지, 우울증이란 것이 엄마에게 이상하게 다가오진 않았을 것이다.
나의 엄마는 매우 낙천적이며 긍정적인 사람이다. 아는 게 없어 그런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 그런 엄마를 나는 많이 닮았다.
나는 결혼을 하고 첫 애를 출산하고, 육아와 공부, 일을 핑계로 엄마에게 아빠를 전적으로 맡겨놓았다. 나는 결혼 후 나의 관심사가 아빠에서 남편, 자식으로 이동하고 있는 나를 지극히 정상으로 생각하고 나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했다.
엄마는 잠이 오지 않는다며 나에게 불면증을 자주 호소하셨으며, 불면증을 해결하기 위해 한잔 두 잔 하던 소주잔의 결과는 나의 몫이었다. 나의 엄마는 육아와 일로 지쳐있는 딸에게 늦은 시간 전화해 술주정도 통쾌하게 하는 그런 엄마였다.
친정을 오랜만에 찾은 나는 두툼한 엄마의 약봉지를 보며 물었다. 엄마는 통 잠을 자지 못해 불면증을 해결하기 위한 약을 처방받으셨다고 하셨다. 어디서 받았는지는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복용방법을 설명 들었겠지 싶었으며 나는 대수롭지 않게 그렇게 넘어갔다.
나의 엄마는 제목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일 때가 많았다. 수면제를 처방받긴 했지만, 이 약이 본인에게 어떠한 결과를 줄지까지는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중에 확인한 처방전에서는 졸피뎀이라는 수면제였다. 이미 졸피뎀은 유명 연예인 사건부터 다양한 부작용이 있는 약물이다. 처방전을 보고 나서야 엄마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우울이란 손님은 엄마의 잠부터 뺏어가면서 불면증이 오게 되었다. 소주 한잔, 두 잔 술기운에 잠을 자는 것도 힘드셨는지 수면제를 처방받았었으니 꽤나 힘드셨나 보다.
졸피뎀의 부작용으로는 복용 후 전 날의 기억을 못 하는 기억장애 등 장기간 복용 시 환각 증상 등을 일으킨다.
사건은 일어났다. 사건이 일어난 후 한참 지나서야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정말 큰 일 날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 엄마는 그 수면제를 먹고 나서부터 기억나지 않는 일들이 있었다고 했다. 분명 수면제를 먹고 잤는데, 일어나 보면 된장찌개가 보기 좋게 뚝배기에 끓여져 있다던지, 보리차를 끓여두었다던지, 청소나 빨래 등 엄마가 평소에 하던 활동들이 되어있었다고 했다. 아마도 환각 상태에 본인도 기억하지 못하는 일 들을 자동적으로 했던 것일 거다.
친정 아파트는 복도식 아파트이다. 오래된 이웃들이 거주하기에 바로 옆 집 아주머니와 엄마는 친하게 지내셨다. 엄마는 환각 상태에 집 안 현관문 앞에서 문 열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셨단다. 놀란 옆집 아주머니가 왜 그러냐고 묻고 했지만, 계속 소리를 지르고 문을 두드렸단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엄마가 술을 드셨나 싶기도 하고, 들어가고 싶어도 열쇠도 없고, 방법이 없으니 기다리셨는데, 다행히 그러다 조용해졌다고 한다.
다음날 엄마는 눈을 떠보니 현관문 앞에서 잠을 자고 있었으며, 집 안 현관문은 칼자국으로 찍혀있었다고 한다. 나중에야 그 자국을 보고 물어보니 그때의 일을 말씀해주셔서 알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아빠가 너무 걱정이 되었다. 분명 아빠는 아무런 표현도 못하고 누워서 엄마의 그 이상행동을 다 지켜보았을 것이다. 아빠에게 해가 되는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아빠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얼마나 힘들어하셨을까? 싶은 마음에 매우 가슴이 아팠다.
만약 그때 문이라도 열리게 되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찔하고 소름 끼치는 사건이 아닐 수가 없다. 그 사건 이후 엄마는 의지로 우울을 이겨내고, 생활환경을 조금씩 바꿔가며 불면증을 해결하셨다.
그 이후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이대로 계속되다가는 엄마와 아빠 모두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함께 엄마의 건강한 생활을 위해 아빠를 요양병원에 모시기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아빠를 요양병원에 모신 후 엄마는 나의 집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지금도 친정엄마는 딸네 집에서 5분 거리에 살고 계신다.
사실 아빠를 요양병원에 모셨기에 엄마의 생활은 빠르게 바로 잡아졌을지는 모르나, 아빠의 생활은 반대였을 것이다. 요양병원으로 모신 후 나의 아빠는 하루빨리 강을 건너 쉬고 싶으셨을 것이다.
딸이 무언가 결정해야 했던 그 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과 결정의 순간이 늘 따른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선택과 결정의 순간, 해피엔딩의 결과를 예상하기 마련이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죽는 방법과 시기도 정해져 있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선택 장애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사람들은 본인이 직접 선택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무언가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물론, 내가 아버지를 버린 것은 아니지만 나는 엄마에게 몰래 찾아온 우울이라는 손님을 핑계로 엄마를 먼저 구해야 했다. 선택할 순간에는 올바른 선택인지 고민되지만, 우리는 곧 무거운 마음과 고민을 버리고 그 현실에 적응하며 곧 잘 살아간다.
무거운 마음도 살아가기 위한 힘이 된다. 오늘도 우리는 무언가를 선택했을 것이며, 그 선택으로 인해 무언가는 버려졌을 것이다. 무거운 마음이 오늘 하루도, 내일도 앞으로의 삶에 큰 힘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