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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녀ㅣ이혜진OT Sep 28. 2019

벌거벗은 임금님

아빠 몸이 제일 멋있어.

  어릴 적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 동화의 내용과는 다르지만, 나의 아빠는 벌거벗은 임금님이셨다.


아빠는 임금님. 엄마는 여왕님. 난 공주.

 누워만 지내는 침상 환자에게 옷 입기란?

체온조절을 위해서?

벌거벗기에는 보기 싫어서?

더워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는 옷을 입지는 않는다. 흔히 병원에서 입는 환자복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원피스 형태의 산부인과 환자복에서부터  수술 시 입는 환자복까지... 그러나 우리는 환자복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입원실 환자복을 떠올릴 것이다. 큰 단추로 마무리되며, 하의는 고무줄로 자신의 신체 사이즈보다 한참은 큰 사이즈의 환자복을 선택하게 된다.


자신의 신체 사이즈보다 한참은 큰 사이즈의 환자복


  이러한, 환자복은 기본적인 의복의 형태를 띠면서, 가장 케어하기 쉬운 형태의 옷을 고안해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침상 환자에게는 일반 환자복이 일상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선, 큰 사이즈의 환자복은 옷이 커지면서 겹쳐지게 되는데, 이때 생기는 주름 등이 환자 피부에 장시간의 압력을 가하게 되고 이로 인해, 욕창의 위험도 따르게 된다. 실제 큰 사이즈의 상의 환자복을 입고 잔 다음날, 체위변경을 위해 다음날 옆으로 몸을 돌리면 확인할 수 있다. 옷의 겹쳐져 있는 부분의 압력으로 등 쪽 피부는 알 수 없는  모양으로 선이 그어져 있다. 압력이 가해진 부분의 색은 검붉은 색을 띠게 되며, 아플 것만  같은 자국을 만져주지만 그 자국은 꽤나 오래 지속된다.


아플 것만 같은 자국

 

  침상 환자의 대소변은 침상에서만 이루어진다. 기저귀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기저귀의 솜 자국 역시 엉덩이 부분 어딘가에 압력이 가해지고, 검붉을 색을 띠면서 자국이 생긴다. 침상 환자의 에스테틱이란 주제의 글을 본다면, 환자의 보호자가 왜 이리도 이런 자국에 대해 예민한 것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기저귀에 소변이 묻게 되면, 바로 갈아주는 게 원칙이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환자들은 언제 소변을 봤는지 알 수 없다. 지속적으로 확인을 해야 한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아빠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셨다. 엄마의 긴 간병 경험으로 아빠는 제 몸보다 한참 큰 환자복은 입지 않았다.


  상의는 항상 얇은 내의를 입고, 땀 흡수력이 뛰어난 면 제품을 이용하였다. 하의는 입지 않았다. 기저귀도 하지 않았다. 간병의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기저귀도 채우지 않았다는 것에 놀랄 수도 있을 것이다.


  성인의 기저귀는 아기 기저귀처럼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다. 밴드형의 겉기저귀와 속기저귀, 위생용 패드가 필요하다. 가격은 기능성에 따라 다양하다.  겉기저귀에 속기저귀를 깔고, 대변을 볼 시 운이 좋으면 겉기저귀에는 대변이 묻지 않는다. 속기저귀보다는 겉기저귀가 상대적으로 비싸기 때문에, 웬만하면 겉기저귀를 오래 사용하는 것이 실용적이다.  


겉기저귀, 속기저귀

  남자와 여자의 대소변 케어는 생식기 구조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르게 적용된다. 대변의 경우에는 크게 달라지는 게 없지만, 소변 케어는 매우 다르다. 대소변 케어는 각 개인의 특성과 케어자의 경험 등에 따라 충분히 바뀔 수 있는 부분이다.


  아빠는 아빠의 중요부위를 항상 속기저귀로 감싸고 그 위에 새지 않도록 위생팩(일회용 비닐)을 씌우게 했다. 엄마가 바로 고안한 방법이다. 겉기저귀는 외출 시만 사용하고 항상 속기저귀만 항문부위에 깔고, 중요부위를 감쌌다. 때, 위생용 패드가 필요하다. 침대를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넓은 사이즈로 시트 위 엉덩이가 위치할 부분에 깔고, 그 위에 속기저귀를 깔아 환자를 눕히게 된다. 한동안 이 방법을 유지했지만, 금세 엄마는 속기저귀까지 아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고안해냈다.


  바로 10cm 지름의 돌돌 말려져 있는 롱 비닐을 중요부위를 넣고, 그 위에 찍찍이 밴드를 말아 고정시키는 방법이다.


유레카

유레카

  롱 비닐은 실제 의료기 판매소에 판매하고 있었으며, 건너 건너 들은 정보를 실제 적용해 보니, 매우 실용적이었다. 특히, 더운 여름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이었다.


  온몸에 강직이 심한 아빠는 말 그대로 몸이 통나무처럼 뻣뻣한 상태셨다. 이렇게 강직이 심한 환자의 기저귀를 교환하려면, 보통 두 명의 케어자가 환자를 좌우로 돌리며 케어해야 한다. 강직으로 인해 환자도 통증을 호소하고, 대소변이기에 빠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급하게 하다 보니, 깨끗하게 케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욕창이 두려워 상의는 최대한 간단히 입히고, 효과적인 대소변 케어를 위해 애쓰다 보니, 아빠는 항상 벌거벗은 몸으로 얇은 이불 하나에 의지해 있으셨다. 손님이 찾아온다 할 때에는 환자복 상의로 아랫도리를 가렸는데, 팔이 들어가는 부분을 다리에 넣고 상의의 등판을 아랫도리를 가리는 방법으로 옷을 입혔다. 지극히, 이러한 케어 방법은 아빠의 의사를 묻기보다는 엄마인 보호자 위주의 대소변 케어였지만, 나도 시행했던 케어 중에서도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께, 기저귀 값도 매우 절약할 수 있었다.


  나의 아빠는 쓰러진 직후, 의식이 돌아오기 전에도 딸인 내가 간병할 때에는 대변을 보지 않으셨다. 꼭 참고 있다가 엄마가 오시면 대변을 보셨다. 우리는 웃으면서 아빠가 의식이 없어도 다 아는가 보다고 말하며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괜찮으니 편하게 봐.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일찍 아빠의 기저귀를 갈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빠와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를 보살피는 삶을 살았었다. 나에게 두 자녀가 생긴 후 애들을 보살피다 보니 확실해졌다.

나의 아빠는 딸인 나에게 보살핌을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아빠를 보살필 수 있었던 그 귀한 시간을  나는 잊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고, 내 인생에서 제일 빛나던 순간이라는 것을 나의 자녀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 오늘도 그날의 기억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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