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일기
정신이 맑아지는 대가는 무시무시했다.
정확히 15kg, 15kg만큼 내가 더 행복해진 거라고 해야 할까?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얻은 것은 평온만이 아니었다.
초반에 우울증인 줄 알고 일 년 넘게 약을 복용했을 때,
살은 '야금야금'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성실하게 불어났다.
정신 차려보니 15kg이 늘어 있었다.
우울의 극단에 있을 때는 밥알을 씹는 행위조차 거추장스러워 살이 빠지곤 했다.
하지만 약이 내 의욕을 돋우려는 것인지, 아니면 뇌의 호르몬을 건드린 것인지
입맛이 미친 듯이 돌기 시작했다.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자꾸 무언가를 집어 먹는 나를 발견할 때면 자괴감이 들었다.
커뮤니티에는 나와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결국 나는 '약 안 먹을래'라는 위험한 선택을 했다.
약을 놓자 살은 금방 빠졌다.
하지만 그 대가로 일상이 무너졌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숨이 막히는 공황이 찾아왔고, 예민해진 신경은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결국 다시 병원을 찾았고, 의사는 내게 물었다.
"왜 약을 안 드셨어요?"
"살이 찌는 게 너무 싫어서요."
의사는 잠깐 말을 멈췄고, 담담하게 살이 찌는 성분을 빼주겠다고 했다.
그 말은 내 살이 단순한 '의지 부족'이나 '게으름'의 결과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살찌는 약을 빼도 입맛은 여전했고, 오히려 내 상태가 악화되어 약이 추가됐다.
그리고 다시 입맛이 폭발했다.
1년간 꾸준히 PT를 받고 운동을 했지만, 결과는 5kg 증량이었다.
거울 속의 나는 낯설고 비대해졌으며, 옷장 속의 옷들은 하나둘씩 나를 거부했다.
담당 교수는 내게 비만 치료제인 '마운자로'를 권했다.
오죽하면 의사가 권했을까 싶어 남편에게 슬쩍 말을 꺼냈다.
"나 마운자로 좀 맞고 싶어."
돌아온 남편의 표정은 '이해 불가' 그 자체였다.
태생부터 마른 몸으로 살아온 그는 내 15kg의 무게를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운동하고 있는데 왜 주사를 맞아?"
냉소적인 질문 뒤에 이어진 대화는 더 가관이었다.
30만 원 정도 한다는 내 말에, 그는 70%는 내 용돈에서 부담하라고 선을 그었다.
순간 욱하는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내가 미용 목적으로 사치를 부리겠다는 게 아니었다.
그저 정상 체중으로, 건강하게 사람 구실을 하며 살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그동안 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던 말들을 그는 단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았던 걸까.
70%라는 숫자가 차갑게 치사했다. 기분이 완전히 상해버린 나는 입을 닫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 남편은 슬쩍 "그거 얼마라고 했지?"라며 태도를 바꿨지만, 나는 거절했다.
"됐어, 안 맞아."
"왜 갑자기 안 맞는데?" 이유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네가 나를 이해해주지 않아서~라는 주저리주저리 한 감정의 나열은
내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그의 말에도 나는 그저 알겠다고 답하고 넘겼다.
사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가슴 한구석이 서럽다.
살을 찌우고 빼는 것조차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이 병을,
평생 뚱뚱해본 적 없는 저 남자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야 평온해진 나는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정신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몸을 지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