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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Oct 13. 2019

네가 주는 벌이었을까.

02. 네가 주는 벌이었을까.     


지난해, 이른 여름 

대학원을 그만두고, 한참을 우울해하며 

집 밖을 나가지 못했었다.     


집 밖을 나가지 못했던 이유는

더 이상 나를 소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에게도 자신을 소개할 수 없다는 것은

너에게도 나를 소개할 수 없다는 말과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너를 만나기 두려웠다.

나는 더 이상 네게 의미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설득해야만 한다는 것이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왜 나는 아무 조건 없이

나의 존재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차라리 어떤 답을 줌으로써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납득시키는 편이 

더 빠르고 쉬운 길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나에게 꿈이라는 삶의 결론을 내놓으라며 윽박질렀던 것이었다.

그리고 대학원을 그만 둠과 동시에 그 협박은 다시 시작되었던 것뿐이었다.     


꿈이라는 결론으로

두려움을 막아 놓았던 기간이 길었던 만큼 부작용은 심했다


두려움은 우울함으로 계속 퍼져나갔다. 

그리고 다행히도 한편에 부끄러움이 물들었다.     


내가 네 앞에 자신 있게 설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가지는 꿈으로 인해서 나의 가치를 판단했고

그 가치의 우열로 인해서, 네 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당당함은 비열했다.

당당함은 너를 내려나 보는 시선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비겁했으며

너의 아름다움과 선한 모습을 질투했기에 위선적이었다.     

  

나는 내가 가지게 될 가치와

그 가치를 이루는 과정 속의 가치에 대해 산정하면서

너의 그것과의 차이만큼

네 앞에서 잘난 사람이 되거나

그 차이만큼

못난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나의 존재를 설득하기 위해서 너를 부정해왔던 것이다.

최소한 너보다는 내가 나은 사람이라며 구차하게 나를 설득했던 것이다.

설사, 내 입으로 말했던 나의 꿈이 숭고해 보였을 지라도

그것은 오로지 나의 자존감을 위해, 너의 자존감을 무너 뜨리려던

하찮은 거품이었던 것이다.     


나는 얼마나 많은 스스로를 속인 거짓말로

너를 속이며, 너의 꿈을 밟고 비웃어 왔던가.

또, 나는 얼마나 많이 너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현재의 나를 부정하며, 지금의 나를 무시해 왔던가.     


너에 대한 열등감 그리고 우월감 

그 둘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있을 줄 알았다.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여 만든 추진력과

너와의 비교에서 나온 열등감을 다르다고 믿었다.

보다 나은 내가 되는 것은, 너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둘 모두 불행했음을

불행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왜냐하면, 둘 모두 지금의 나를 부정하면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나를 부정하면서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너에 대해서도 똑같이 너를 부정할 수밖에는 없었다.  

   

나의 가치를 지금에서 찾을 수 없었고

너의 가치를 지금에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나는 끊임없이 네 앞에서 계산하여

나를 설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한 것일까.

너의 소식으로부터

진정으로 너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수 없었던 것은.

그리고 그것은

내가 그러한 방식으로 나를 설득했던 것에 대한 네가 주는 벌이었을까.    

      

너를 진정 친구로서 맞이하고 싶다.

이제 그 벌을 받고 싶지 않다.

이 찝찝함을 벗어나고 싶다.     


나는 답하길 포기했었던 그 질문을 다시 해야 한다.

정말로, 나는 아무 조건 없이 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일까.

너를 밟지 않고, 나를 밟지 않고 서 있을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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