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불교 유적지 순례기 : 보드가야 편
2018.10.14~2018.10.16
이곳은 일찍부터 석존의 성도와 관련하여 ‘삼보디’, ‘마하 보디’등으로 불려왔다. 보드가야는 비하르 주의 가야시 남쪽 약 10km가 되는 지점에 있다.
불타의 세계, 나까무라 하지메
7시쯤 일어나, 2층의 법당에 기부금을 넣고 녹야원을 떠났다. 사르나트 근처에 가서, 올라를 불렀다. 올라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값도 쌌다. 평점 시스템과, 위험 상황에서 누를 수 있는 버튼 때문에 더욱 안심이 되었다. 동행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혼자 타더라도 중타는 쳤다. 다만 각 지역에서 릭샤나, 택시 조합에 의해서 올라와 우버가 이용 불가능 한 곳이 있었다.
사르나트에서 바라나시 역까지는 150루피였다. 7시 55분쯤 바라나시 역에 도착하니, 8시에 보드가야로 출발하는 기차가 있었다. 다행히 제너럴 티켓을 구해,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티켓 가격은 95루피였다. 원래는 7시 20분에 출발을 했어야 하는 기차가 연착되어 늦게 온 나도 탈 수 있었다. 하지만 기차는 1시간을 더 연착하여 9시가 넘어서 출발했다.
어쨌든 탈 수 있었으니, 이번엔 나에게 행운으로 작용한 연착이었다.
제너럴티켓은 예매를 하지 않고 구매한 티켓을 말한다. 창구에서 바로 살 수 있다. 예약된 좌석이 없기 때문에 첫째 칸이나, 마지막 칸에 마련된 제너럴 티켓 전용 칸에 타야 했다. 자리가 있으면 앉을 수 있고, 없으면 앉을 수 없었다. 열차 칸이 맨 앞일 수도 있고, 맨 뒷일 수도 있어서 일단 앞 쪽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열차가 도착을 하니, 나는 완전 반대편으로 가야 했다. 끝으로 이동을 하다, 기차가 출발을 해버릴까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일단 *슬리퍼칸 화장실 쪽에 몸을 실었다.
화장실 칸 옆에 배낭을 깔고 앉아 있으니, 다리가 불편하신 한 아저씨도 올라타셨다.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옷도 깔끔하게 입으셨고, 가방도 메고 계셨으니, 구걸을 하시는 분은 아니었다. 나처럼 자리를 구하시지 못한 듯 보였다. 그러다 화장실을 드나드시는 분들 중 한 분이 나에게 자신의 자리로 오길 권하셨다.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그 아저씨에게는 권하시지 않으셨다. 나도 2번 정도를 사양했지만, 다시 찾아오셔서 말하셔서, 자리를 옮겼다. 감사히 앉아 갈 수 있었다. 졸다 보니 가야 역에 도착을 했다. 시간은 약 오후 1시 반이었다. 그 아저씨는 내가 내릴 때까지도 그곳에서 앉아 계셨다.
*슬리퍼 : 인도의 기차의 등급 중 하나이다. SL은 가장 싼 칸이다.
가야 역에서 내린 후, 릭샤를 타기 위해 주차장 쪽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오기 전부터, 대기하고 있던 릭샤꾼들이 달라붙었다. 300루피부터 시작하는 가격을 흘려듣고 여기저기 협상을 하는 중에 레온을 만났다.
레온은 기차에서 만난 인도 친구와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도 그 그룹에 껴서, 셋이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협상가는 그 현지인 친구였다. 나는 150루피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에게 얘기하니 자기는 50루피 이하로만 탈 것이라고 선언했다. 처음에는 그게 가능할까? 생각이 들었지만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결국에는 한 명 당 50루피에 보드가야까지 갈 수 있었다. 단순히 쉐어의 문제를 넘어, 외국인은 넘지 못하는 가격의 선을 느꼈다.
레온과는 첫날 릭샤를 같이 타고 간 것뿐이었다. 나이는 모르지만, 세계 여행 중인 영국 청년이었다.
릭샤에서 내리자마자 헤어진 우리는, 사르나트에서 머문 3일 동안 정말 우연히, 이상한 길가에서 매일 마주쳤다. 한 날은 하루에 두 번을 마주친 적도 있었다. 마지막에 만날 때는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멀리서 보고 서로 폭소를 했다.
되도록 여행자와 현지인 분들과 연락처는 교환하지 않았다. 그쪽에서 요구하는 경우라면 그냥 줬지만, 내가 먼저 달라고 한 적은 거의 없었다. 이렇게 다시 우연히 만난다면 반갑겠지만, 연락을 이어나갈 흥미도 관심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레온의 경우는 내가 먼저 페이스북 아이디를 알려달라고 했다. 신기한 인연이었다.
레온은 보드가야에서 콜카타로 바로 이동하여, 방콕으로 향한다고 하였다. 물론 이후에 연락은 하지 않았다.
레온과 헤어지고 30분을 걸어 찾은 고려사에는 한국 스님도 없었고, 시설도 열악했다. 가격을 물어보니 1박에 800루피를 불렀다. 순간 벙쪘다. 3시 세끼를 다 준다고 해도 800루피는 과했다.
그래도 그분들 살림에 보탬이나 될까 해서, 밥을 먹지 않는 대신 500루피는 어떠냐고 물으니, 그래도 800루피라고 하셨다. 하루에 800루피를 숙소에는 쓸 수 없었다. 나중에 만난 스님에게 들을 말로는 고려사는 현지인에게 매각되어서, 더 이상 한국에서 오는 스님들은 없다는 것 같았다. 이제는 무늬만 한국 절인 셈이다.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와 다른 곳을 찾았다. 바로 옆의 미얀마 절에도 가봤지만, 미얀마 자국민들로 이미 방이 꽉 차있다고 하셨다. 하는 수 없이, 중앙 사원이 있는 곳까지 숙소를 찾으며 터벅터벅 걸어 기야 했다. 계속 걷던 중, 현지인 분들은 끊임없이 나에게 인사했다.
“고니찌와”
“메 꼬리아 쎄 아라아 홍(나 한국 사람이야.)”
“오 헬로 마이 쁘렌드 안뇽하쎼여. 쁘렌드 저스트 텔미 왓듀유 원트”
거의 자동응답기 수준이다. 이것도 처음이야 재미있지, 몇 번이 반복되면 지친다. 이런 식으로 먼저 다가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기를 동반하기 때문에 나도 거의 대응을 하지 않았었다.
몇 명을 지나치고 나서 나도 걷기에 지쳐, 무심코 방이 필요하다고 하소연했다. 나보고 얼마까지 낼 수 있느냐고 묻는다. 300을 부르니, 알았다며 오토바이 뒤에 타라고 한다. 타기 전에, 만약 마음에 안 들면 그곳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고 3번을 확인한 후 오토바이 뒤에 올라탔다.
5분 정도를 움직이니, 일본 절 근처의 소니 페밀리 게스트 하우스를 나를 데려갔다. 가격은 도착하니 350으로 올랐다. 하지만 방 상태도 깔끔해서 350에 콜을 외쳤다.
여권 복사를 위해서 1층 카운터 앞의 의자에서 쉬고 있었다. 나를 데려온 친구가 나에게 보드가야 관광을 도와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돈이 많으면 하겠지만, 없어서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알았다며 금방 그쳐, 놀랐다. 순간 “아 그래도, 애가 괜찮은 애구나”라고 생각을 했었다.
아무 말 없이 한 1분이 지나자, 휴대폰 속 사진을 내밀었다. 자신이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 중이라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한 여자와 아이들이 같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는, 자신의 여친이라고 소개했다. 정말 그럴듯하게 보였다. 그래서 그말을 믿었다. 이내 나에게 학교에 같이 가보자며 제안을 했다. 그래서 내가 거길 왜 가냐고 물으니, 가면 봉사도 하고 재미있다며 계속 나를 꼬드겼다.
일정이 바빠서 안 된다고 웃으며 거절했다. 그럼 쌀이라도 기부하면 어떻겠냐고 작전을 바꿨다. 계속된 거절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쌀은 얼마냐고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2,000 루피를 부른다. 내 표정을 보더니 가격을 또 슬그머니 내렸다. 1,000루피!
돈이 없다고 핑계를 대니, 돈이 왜 없냐며 갑자기 화를 냈다. 거기다 본인이 이렇게 싸고 좋은 방을 찾아 줬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나를 비난했다. 갑자기 짜증이 확 났다. 나도 정색을 빨며, 제발 꺼지라고 언성을 높였다, 표정이 굳은 그는 내일 보자며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속으로는 “내가 내일 너를 왜 봐”라고 외치며 배웅을 했다.
그가 굳은 표정으로 나간 뒤, 순간 내가 큰 잘못을 한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곧 이것이 사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죄책감까지 가 계획된 것이었다. 여권을 받고 밥을 먹으로 나가고 있는 와중에 자전거를 탄 한 청년이 또 나에게 와서 똑같은 인사를 했다.
“헬로 마쁘렌드, 웨어아류 쁘럼?”(안녕 친구, 어디서 왔어?)
“메 싸우스 코리아쎄 아라아 홍”(한국)
“오 싸우스 꼬리아! 아이 럽 꼬리아. 아이 헵 메니 꼬리아 프렌 컴 히어 씨”(오 한국, 나 거기 좋아해, 친구 많음, 친구 여기 와 봐)
가서 사진을 보니, 자기가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 중이라며 아까 봤던 사진을 똑같이 보여주었다. 심지어 그 여자친구라고 소개하면서 보여주는 여자와 아이들의 사진까지 똑같았다. 보드가야에 머무는 동안 같은 사진만 3번은 보았다.
상대방의 호의가 계속되면 마음이 조금씩 움직인다. 그리고 틈이 만들어진다. 사기의 고수들은 이런 틈을 이용한다. 더 큰 돈을 얻기 위해서 투자하고 참는 것이다. 그렇다고 오는 호의를 다 막을 필요는 없었다. 실제로 선의를 품고 오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최소한 5번 마음이 움직일 때까지는 마음을 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박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인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 건강이다. 5번 참는 사기꾼이 있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아직까지는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사기꾼이 5번 잘해줬으면, 한 번쯤은 알고도 속아 넘어가 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고생했으니까.
슈퍼에서, 감자칩과 콜라 하나를 사서 돌아가는 길이었다. 숙소와는 불과 50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부터 개들이 갑자기 짖기 시작했다. 내 앞에 있는 개가 짖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뒤에 있던 개들도 흥분을 해서 나를 향해 맹렬히 짖어댔다. 진퇴양난이었다.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몸은 굳었고, 앞의 개는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내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곁눈으로 현지인들이 있는 곳을 확인하고 뒤로 돌아 전속력으로 달리면서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개의 짖는 소리는 계속 가까워졌다.
다행히 현지인들이 달려 나와서 개들을 제지해줬다. 너무 놀라 다리에 힘이 풀렸다. 개는 여전히 나를 향해 짖고 있었다. 왜 나를 향해 짖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냄새로 이방인을 알아보는 것일까? 도와주셨던 분이 나를 숙소 앞까지 데려다주셨다. 아저씨가 옆에 있었지만 나를 쫓아오면서 계속 짖어댔다. 나는 이미 사냥감이었다. 숙소 문을 열고 달려 들어가면서 “다냐밧!(고마워요)”을 외쳤다. 내가 들어온 뒤로도, 그 개는 밖에 서서 짖고 있었다. 사모님에게 상황을 말하니, 현관문을 갑자기 여셨다. 그리고 주인집 개가 뛰쳐나가며 그 개놈을 쫓아냈다.
인도에서 가장 무서웠던 순간이었다. 짧은 시간은 길게 늘어나 그 짧은 50m의 추격전에서 머릿속에선 한국에도 2번은 다녀왔다. 개에게 뒷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두려움이 몸을 멋대로 움직였다.
가방 끈이 또 끊어졌다. 다람살라에서 350루피를 주고 산 가방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듯했다. 유적지에 들어가기 전에 가방을 고치기로 계획했다.
먼저 아침을 먹기 위해 티베트 음식점을 찾았다. 수제비 볶음 같은 것이었는데 쫄깃하고 담백하여 치즈를 먹는 것 같았다. 보드가야 주변으로는 여러 나라의 음식점과 길거리 음식들이 많았다. 4개의 중요한 유적지 중 하나이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오기 때문일 것이다. 음식과 숙소 모두 선택의 폭이 넓었다.
밥을 먹고 난 후, 유적지 울타리 바로 밖에 위치한 시장을 찾았다. 시장 중앙에는 *마 두르가 뿌자 준비가 한창이었다. 책방이 두 군데 있어 보드가야 관련 자료집을 구매하려고 했지만, 책을 팔지는 않았다.
수선집에는 아이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재봉사 친구가 성격이 좋은지, 아니면 친척들의 아이들인지는 모르겠지만 6명 정도의 어린아이들이 그 친구에게 매달려 있었다. 한 아이가 재봉틀 쥐에 숨어 있었는데, 다른 아이가 일부로 앞으로 꺼내 놓으려고 하니, 울면서 도망을 쳤다. 더 어린아이는 나를 보고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금방 시간이 갔다. 가격은 50루피였다. 가격은 약간 올려서 받은 듯했지만 괜찮았다.
* 마 두르가 : 힌두의 여신, 내면에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상징. 손이 되게 많다.
보드가야의 경우 따로 입장료는 없었지만, 카메라와 비디오카메라에 이용료가 있었다. 각, 100, 300루피였다. 입장료가 없으니 그래도 저 정도면 싼 편이었다.
휴대폰으로도 찍어볼까 생각은 했지만, 휴대폰도 맡겨야 했다. 또한 충전기, 보조배터리, 전서 모두 맡겨야 한다. 나는 충전기 없이 케이블만 있었는데도 퇴짜를 맞았다. 웬만하면 모든 전자기기는 숙소에 두거나 맡기는 것이 좋았다.
케이블 때문에 사물함으로 다시 가서 맡기려고 하니 팁을 요구하신다. 그분들도 국가에서 돈을 받겠지만, 이건 일종의 보너스였다. 10루피씩 20루피를 드렸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돈이 저절로 나왔다.
유적지 근처에는 *박시시라고 불리는 기부 문화가 있다. 매표소 주위의 나무를 거점으로 구걸하시는 분들이 포진해 있었다. 나도 미리 100루피 지폐를 동전으로 바꿔 놓았다.
짐을 맡기고 유적지 쪽으로 향하려고 하자, 아이들이 달려와 손을 내밀었다. 미리 바꿔 논 동전을 아이들에게 줬는데 순식간에 그 주위에 있던 15명 정도의 사람들이 나에게 몰려 손을 내밀었다. 미어캣처럼 나를 발견하고 일어선 사람들도 보였다. 어제 개에게 쫓기던 것처럼 무섭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서 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 만 같았다.
유적지 주변에 서있는 군인의 위치를 확인하고 바로 그곳으로 달려갔다. 나를 쫓아오다, 군인들이 있는 것을 보고 더 이상 가까이 오지 않았다. 이곳에서의 두 번째 추격전이었다. 내 마음 편하자고 주는 돈임을 알고 있지만, 이런 소란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돈을 주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들어봤지만, 그래도 되도록 드리려고 노력을 하면서 여행을 했다. 그 돈이 좋지 않게 쓰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또 내 욕심에 드린 돈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되도록 적은 돈이라도 드리고 싶다. 사실 큰돈은 나도 줄 생각도 여유도 없었다. 다만, 어딜 가나 나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을 계속 외면하는 내가 불편했다. 손을 내밀면, 내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서도 적은 돈을 주려고 분주히 움직이는 그 손가락들이 괜히 미웠다. 그럴 때는 그냥 괘씸해서 반대로 행동했다.
*박시시 : 여기서는 돈을 기부할 기회를 주는 것이므로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다.
탑돌이를 하고 보리수가 만든 그늘 아래에 앉아 관련 자료를 읽었다. 한 20분이 지나자 허리도 아프고 잠이 왔다. 내 앞에는 백인 분들 한 무리가 주황색 단체 티셔츠를 입고 앉아 계셨었다.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지구본 위에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이곳에 온다고 생각하니 신기했다. 그리고 그들의 진지한 얼굴을 보니 졸고 있는 내가 부끄러웠다.
몇몇 분들은 보리수의 죽인 잎을 뜯다가 상주하시는 스님에게 혼줄이 났다. 나도 탐이 났지만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았다. 다시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상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석가족의 왕자로서 돈, 권력, 여자 모든 것을 가진 왕자의 지위를 누리다 29살에 출가를 하신 후, 6년 동안 떠돌며 명상과 고행을 한다. 그리고 그 고행을 포기한다. 그 내용을 일부 발췌해왔다.
악기웻사나여.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비유가 내게 떠올랐다. 젖은 생나무 토막이 물 위에 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불을 피우고 열을 내리라.’라고 생각하면서 부시 막대를 가지고 왔다고 하자. 악기웻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은 젖은 생나무 토막에다 부시 막대를 비벼서 불을 지피고 열을 낼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왜냐하면 그것은 젖은 생나무 토막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사람은 지치고 짜증나게 될 것입니다.
악기웻사나여. 그와 같이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감각적 욕망들을 멀리 떨쳐버리지 않고 머물거나, 혹은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를 제거하지 않고 가라앉히지 않는 자들이 있다. 그 사문과 바라문들은 비록 혹독하고 사무친 느낌을 느끼더라도 앎과 봄과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없고, 비록 느낌을 느끼지 않더라도 그들은 앎과 봄과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즉시 떠오른 비유이다.
...
악기웻사나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어떤 혹독하고 사무친 고행을 했다고 하더라도 나보다도 지독한 고행은 없었다. 미래의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어떤 혹독하고 사무친 고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나보다도 지독한 고행은 없을 것이다. 현재의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어떤 혹독하고 사무친 고행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보다 지독한 고행은 없다. 이런 극심한 고행으로 나는 인간의 법을 초월하지 못했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앎과 봄의 특별한 지혜를 얻지 못했다. 깨달음을 얻는 다른 길이 없을까?
삿짜까 긴 경, 마지마니까야, 대림스님
* 사문 : 바라문의 권력을 부정하며 나타난 사상가, 철학자라고도 생각됨.
** 바라문 : 제사장과 비슷함. 바라문 계급이 따로 존재, 종교인이라고 생각됨.
고행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 수행자는 수자타라는 장군의 딸에게 우유죽을 *공양 받았다. 그리고 체력을 회복한 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보리수 아래에 앉는다. 그리고 태어남에 기대어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보살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아아, 참으로 가엾은 일이로다. 이 세상의 존재들은 태어나서 늙고 죽어서 세상을 떠났다가 다시 태어난다. 그러면서도 이처럼 커다란 고뇌의 덩어리, 다시 말해 늙음과 병과 죽음에서 벗어날 줄을 모른다. 벗어날 방법을 찾지 않고 있다.“
그때 보살은 또 이렇게 생각한다. ‘무엇으로 인해 늙음과 죽음이라는 것이 있을까. 도대체 무엇을 원인으로 늙음과 죽음이 있단 말인가. 태어남을 원인으로 해서 늙음과 죽음이 있다.
그러면 무엇으로 인해 태어날까. 생존으로 말미암아 태어난다.
그러면 무엇으로 인해 생존하는 것일까. 집착으로 말미암아 생존한다.
무엇으로 인해 집착하는 것일까. 갈망으로 말미암아 집착한다.
무엇으로 인해 갈망이 생길까. 감수로 말미암아 갈망이 생긴다.
무엇으로 인해 감수가 생기는가. 접촉으로 말미암아 감수가 생긴다.
무엇으로 인해 접촉이 생기는가. 여섯 가지 감각으로 말미암아 접촉이 생긴다.
무엇으로 인해 여섯 가지 감각이 생기는가. 모양과 물체로 말미암아
여섯 가지 감각이 생긴다.
무엇으로 인해 모양과 물체가 생기는가. 인식으로 말미암아 모양과 물체가 생긴다.
무엇으로 인해 인식이 생기는가. 현상으로 말미암아 인식이 생긴다.
그러면 무엇으로 인해 현상이 생기는가. 무명으로 말미암아 현상이 생긴다.
이와 같이 인간 고뇌의 원인을 잇따라 차례차례 거슬러 올라가서 살핀 결과. 모든 것의 근원에는 ***‘무명’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불타 석가모니, 와타나베 쇼코, 법정 옮김
*공양 : 음식을 받음.
**보살 : 깨닫고 있는 자.
***무명 : 빛이 없음, 알지 못함
꿈을 가지고 난 후, 내가 해야 할 것들은 명확히 보였다. 미래의 행복한 모습의 나와 지금의 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구분하는 것이다. 가져야 할 것들과 버려야 할 것들을 정하고, 얻어야 할 것은 얻고 버려야 할 것들은 버리면 됐다. 그렇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의 내가 얻어야 할 것은 영어와 전공지식이었고, 빼야 할 것은 잠이었다. 내가 동원할 수 있는 가능한 수단을 통해 이 둘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학교의 식물 사전과 지도를 만들어보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어떻게 된 밖으로 나가 영어를 배웠다. 잠은 어쩔 수 없이 줄었다.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 집은 행복하지 않았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복은 잠이었으니까.
다이어트처럼, 쪄야 할 것은 쪘고, 빼야 할 곳은 빠졌다. 내가 그린 나의 미래의 모양에 점점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가 그린 그림 안에서 늘어가는 건 불안뿐이었다.
열등감. 사람들 모두가 느끼는 저 감정을 나는 심하게 느끼는 것일까? 열등감을 통해 과거의 나 자신보다 분명히 나아진다고 해서, 나의 열등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열등감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아주 짧은 우월감뿐이었다. 나 말고, 너보다 나아졌다는. 갑자기 구토감이 밀려왔다.
뭐 아무래도, 내 옆에 있는 사람보다 잘하면 된다며 불안을 죽여 봤지만, 그 꼴이 웃겼다. 나보다 못한다고 하는 사람 옆에서 안도감을 느끼며 같잖은 위로를 던지는 내가 역겨웠다. 나는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며 찌질한 행복을 느끼는 댓가로서, 나 스스로를 누구보다 못한 사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벌을 받고 있었다. 결국 그 같잖은 위로를 내가 받은 것이다.
오감은 쉽게 만족해버린다. 화장실의 고약한 악취 속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후각이 무뎌지는 것처럼, 단 것을 먹고난 후, 더 단 것을 먹어야 단 맛이 느껴지는 것처럼, 행복을 느끼는 나의 마음 역시 쉽게 만족해버린다. 새로운 종류의 자극에 금세 행복해버리지만, 이내 행복하지 않게 된다.
내가 원했던 행복 역시도 애초에 이런 것이 아니었나 되짚어 본다. 항상 행복하길 바라지만, 애초에 그것으로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은 정해져 있다. 결국, 과거의 나와 비교하거나, 내 옆에 있는 사람과 비교하여 생각되는 그 차이만큼의 자극은 강하게 전달되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된다.
열등감과 우월감으로부터 나온 행복감은 밀당의 달인이다. 거의 대부분 당기고, 아주 조금 밀어준다. 우월한 열등감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이제 이 노력할 힘을 내기 싫다. 이런 노력 해봤자 결국 반복될 수밖에 없으니까. 내 일기장 속, 낮아지는 자존감처럼.
머릿속에 그려지는 강력한 꿈이라는 이미지는 나를 변화시킬 힘을 주었다. 꿈에 대한 이미지가 선명해질수록 이 힘은 강해졌다.
이 힘은 태생적으로 불행했다. 이 힘은 결핍과 부정 위에서 태어났다, 이 결핍은 돼야 될 나를 기준으로 자기 자신을 부정해 오면서 나오는 동력이다.
그렇기에, 내가 그리는 꿈이라는 그림에는 절대 도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상대적인 결핍을 기반으로 무엇인가 되려고 노력하는 나는 언제나 상대적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부정하며 당긴 활시위로부터 발사된 화살은 머리 돌아 사수의 등에 꽂힐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전제부터가 잘못되었었다. 조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행복은 모두 조건에 의해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내일이라는 조건 속에서, 지금의 행복은 발생할 수 없다.
엄마는 나보고 좋은 일, 돈 많이 버는 일, 편한 일을 하라고 하신다. 그런데 그렇게 수식어를 붙여서 내가 무언가 실제로 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나는 그 역겨움과 열등감을 안고 가야 할 것이다.
‘더 나은’ 곳에 내가 있다면 나는 ‘더’ 불행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 나은’ 곳에 있기 위해서 나는 ‘더 낮은’ 곳에 있는 나를 봐야 했고, ‘그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안도해야 했으니까.
내가 더 노오오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느꼈던 걸까? 생각이 들지만 이미 수많은 구토를 하고 난 이후였다.